브런치 시-작
2021. 01. 15
지나간 것들에 대해 더 자주 생각한다.
학창시절 늘 함께 시간을 보냈던 포르투갈에서 온 뽀글머리 친구, 독서모임 때 내 옆자리에 앉아 선하게 웃던 안경 쓴 언니, 인턴시절 내 기사 링크를 꼬박꼬박 보내던 내가 좋아했던 오빠, 몇 달 전 헤어진 그 남자, 세상을 사랑이라는 프레임을 가지고 바라본다던 어떤 면접관 선생님. 다들 지금 어디서 무얼하고 있을까?
경의선 숲길의 여름 새벽 공기, 단골 카페에 앉아 고뇌에 머리를 뜯던 시간들, 학보 마감일 늦은 새벽 기사를 모두 검토하고 집으로 가던 길, 고된 하루로 천근처럼 느껴지던 나의 몸과 마음의 무게 같은 것. 그렇게 조용히 혹은 시끄럽게 내 삶을 지나간 것들.
그 많은 사랑과 눈물, 성취와 좌절, 활력과 무력을 거쳐 2021년으로 건너왔는데, 스스로가 자꾸만 초라하게 느껴진다.
연초부터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원인 모를 두드러기가 다리를 뒤덮었고, 넘어진 적도 없는데 자꾸만 한쪽 발목이 말썽이었다. 몇일 전에는 출근 준비를 하다가 눈썹칼에 중지 손가락을 크게 베여 피를 쏟기도 했다. 겨우 지혈한 손가락이 내내 아프더니, 며칠이 지난 지금도 벌어진 상처가 그대로다.
벌어진 상처를 볼 때마다 그 아이 얼굴이 떠오른다. 울지 못 할 정도로 온 몸이 아파 쥐죽은 듯 가만히 있었다는 그 아이. 일 센치 벌어진 상처도 너무 아파 약을 바르고 반창고를 붙여야 하는데, 상처가 회복될 겨를도 없이 또 다른 상처를 떠안아야 했던 정인이. 손가락에 붙은 반창고를 교체하러 떼어낼 때마다 나는 벌어진 상처를 보고, 그 아이를 떠올린다. 얼마나 아팠을까. 나의 상상력은 끝끝내 그 아이의 고통에 도달하지 못한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18/0004829236?sid=102
아침에 뉴스창을 켜면 새로운 말들이 쏟아져 나온다. 오늘 아침에는 그 아이의 겨드랑이 급소에서 상처가 발견됐다는 기사를 읽었다. 팔로 가는 모든 신경 다발이 있는 곳이기 때문에 그 부위를 강타당하면 그냥 넘어질 수 밖에 없다고 법의학과 교수는 덧붙였다. '억'소리가 나올 수도 없을 만큼 아파 그저 까무러칠 수 밖에 없다는 전문가의 말. 울컥 눈물이 쏟아지는 말들. 잔인함에 있어 인간의 한계는 도대체 어디일까. 잔인함의 한계가 없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이 세상이 눈물나게 무섭고 서글프다.
그 잔인함에 분노하고 누군가의 아픔에 공감하며 잊지 않기 위해 꾸준히 기록하고 싶다. 내가 할 수 있는건 그게 전부인 것 같아 자꾸만 스스로가 초라하게 느껴지는 걸까. 내가 좋은 사람이 되면 단 1%라도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글을 쓰며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지금, 여기서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