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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밍키 Oct 21. 2021

동생이 남극에 갔다

낯선 곳을 향한 항해


동생이 남극에 갔다. 새하얀 설레임과 기대를 잔뜩 안고서. 얼음을 가르는 쇄빙선 아라온호를 타고 70일간 바다 위를 항해한다고 했다. 긴 여정의 1차 정박지는 뉴질랜드인데, 그곳에서 항해에 필요한 짐들을 싣고 다시 남극으로 출발한다고 한다. 나는 동생에게 주워들은 파편 같은 정보들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빙하와 눈으로 덮인 땅이 펼쳐진 새하얀 세상 그리고 그 위를 유유히 지나다니는 펭귄들. 마치 내 일인 것처럼 가슴이 뛰었다. 동생에게는 유투브로 떼돈을 벌어야 하므로 최대한 영상을 많이 찍어오라고 당부했지만, 유투브를 핑계로 동생의 카메라를 통해 남극을 훔쳐보고 싶은 나의 욕심이 담긴 당부였는지도 모르겠다.


동생은 해외여행을 몇 번 가본 적은 있지만, 이렇게 길게 집을 나와 해외에서 살아본 적은 없었다. 배를 타기 전에 동생은 ‘떨린다’고 말했다. 단순한 여행이 아닌 두 달간 배 위에서의 삶 그리고 최종 목적지 ‘남극’. 떨림은 고스란히 나에게 전해졌다. 다른 삶을 위해 낯선 땅에 첫 발을 디디던 그 떨림을 나도 아직까지 생생하게 기억하기 때문에.

  

동생과는 다르게 나는 학창 시절의 거의 절반을 해외에서 보냈다. 어렸을 때부터 해외에 막연한 동경을 가지고 있던 나는 부모님의 도움으로 중학교 3학년 때부터 홀로 미국 유학을 시작했다. 부모님과 처음으로 떨어지는데도, 공항에서 나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나는 만 14세의 어린 나이였다. 당시 항공사에서는 보호자 없이 비행기를 타는 어린 탑승객에게 에스코트를 해주는 서비스 같은 게 있었는데, 나는 어린 탑승객에 속했으므로 에스코트 태그를 목에 걸고 비행기에 탑승했다. 내가 떠난 뒤 공항에서 엄마가 우셨다는 건 나중에야 알았다. 설레임에 부푼 철없는 딸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출국 심사장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미국에 대한 환상과 기대를 가득 안고 나는 인생 첫 비행을 시작했다.

 

내가 고국을 떠나 처음으로 발 디딘 낯선 땅은 엘에이 공항이었다. 내가 다닐 학교는 워싱턴 주에 있었지만, 학기를 시작하기 전 한 달간 어학연수를 캘리포니아 주에서 받았기 때문이다. 나는 입국장에서 내 이름을 들고 있는 한 남자를 발견했다. 어학연수를 주최하는 메리마운트 대학교 소속 직원이었다. 나는 그의 차를 타고 목적지로 출발했다. 나는 뒷좌석에 앉아 달리는 차창 밖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형형색색의 엘에이 주택가를 지나가는데, 나는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모든 집을 내 카메라에 담아내고 말겠다는 듯이. 운전석에 앉은 그는 그런 나를 백미러로 흘끔 보고 피식 웃었던 거 같다. 내가 찍은 수많은 흔들린 사진에는 진한 분홍색 집도, 노오란 개나리색 집도, 하늘색 집도 있었다. 새하얀 아파트가 빼곡히 들어선 동네에서 일생을 살았던 나에게는 너무나 생경한 풍경이었다. 앞마당에 잔디가 깔린 이층짜리 형형색색의 주택은 어느 곳에나 있었다. 낯선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가는 차창 밖을 바라보며 내 가슴은 그 어느 때보다 두근거렸다.


동생의 남극행이 확정된 후 나는 부럽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남극이라는 곳은 특수한 상황이 아니면 절대 갈 수 없는 장소여서 막연한 동경이 깔릴 수 밖엔 없겠지만, 나는 동생이 남극에 첫 발을 디디는 순간 느낄 그 두근거림이 특히 부러웠다. 동생은 출발 전에 몇 장의 사진을 보내줬는데, 앞이 훤히 보이는 큰 창이 달린 아라온호의 선실 사진이 있었다. 나는 그 창을 통해 얼음으로 뒤덮인 하얀 세상을 처음 마주할 순간을 상상해봤다. 동생이 남극과 마침내 처음 만나게 될 그 순간을. 그 설레임과 벅차오름이 나는 눈물 나게 부러웠다.


그래서 나는 동생의 남극행을 마치 제일처럼 떠벌리고 다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떨리는 마음으로 디뎠던 낯선 곳을 향한 발걸음을 자꾸 상기시키고 싶어서. 동생의 항해는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나의 지난 항해를  기억 속으로 다시 불러들여왔다.


평범함을 포기한 대가가 늘 아름다운 추억으로 돌아오는 것만은 아니다. 새로운 세상은 그만큼 새로운 에너지를 요구한다. 낯선 환경에서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은 고통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어쩌면 어렵게 시작한 항해를 포기하고 싶어 질지도 모른다. 나도 낯선 방에 누워 한국에 두고 온 사람들의 얼굴을 그리며 엉엉 울었던 어두운 밤 몇 개가 떠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십 년이 넘게 흐른 지금, 외로움과 눈물, 우울과 침잠이 아니라 ‘처음을 향한 설레임’을 가장 먼저 기억한다는 건, 낯선 곳으로 떠나는 항해의 가치를 설명하기에 충분하다. 어쩌면 평범한 일상에 순응한 현실의 나를 살게 하는 원동력은, 낯선 곳을 거침없이 표류하던 과거의 나일지도 모른다. 부디 동생은 내가 느낀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의 몇 겹을 더 느끼고 돌아오기를. 우리의 막연한 상상 속에 하얗게 빛나고 있는 남극은 그 힘이 있다고 믿는다.


어느 날 갑자기 남극으로 떠난 동생의 항해를 응원하며, 이렇게 나도 나의 작은 바다 위에서 또 한 번 항해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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