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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숙세미 Nov 09. 2021

엄마라는 직업

우리 엄마는 전문 엄마야

요즘 전문 주부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주부도 경력이 인정되어야 함을 이야기하고, 주부의 일들이 당연하고 쉬운 노동만이 아님을 뜻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과 취중진담을 좋아한다. 아이들과 야식을 먹거나 외식을 하며 술을 앞에 두고 한 잔씩 하며 이야기하는 시간을 좋아한다. 아이들 교육상 나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늘 장난칠 줄만 아는 경상도 엄마가 아이들 앞에서 조금 더 진지해지는 순간이다.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닌데 맨 정신엔 뭐가 그리 바쁜지, 아님 대화법을 모르는 것인지 두 아이의 말을 다 들어주기가 힘들 때가 많다.

맥주 한 잔과 함께 앉으면 아이들도 맛있는 먹거리가 있고 엄마랑 하염없이 대화하며 살짝 풀어지는 그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고 믿는다.


요즘 책상에 앉아 자판 두들기는 일이 자주 있다 보니 아이들이 “엄마 뭐 해?”라고 물어보면, “엄마 일 하는 중이야”, “엄마 글 쓰고 있어”라고 이야기한다. 그래서인지 식탁에 앉아 노트북이나 아이패드를 두들기고 있으면 엄마가 글을 쓰고 있다고 생각하며 슬며시 옆에 와서 지켜본다. 본인 이야기가 나오면 어떻게 써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때론 잘 썼다고 칭찬도 하고 사진이 이쁘다며 치켜세워주기도.

외출했다 돌아오는 길 집에 가서 저녁 차리기엔 촉박한 시간이고 이럴 땐 외식이 답이다. 동네 치킨집에 앉아 아이들 좋아하는 치킨을 주문하고 생맥주와 함께 우리의 대화는 또 시작되었다.

대뜸 9살 아들이 “우리 엄마는 전문 엄마야, 전문으로 사랑해주는 엄마” 이 말을 듣는데 웃음이 났다. 엄마의 감정과 감성을 잘 건드리는 이 아이가 나를 또 들었다 놨다 하는구나. 어디서 이런 말을 배웠을까? 진심일까? 엄마 기분 좋으라고 하는 소리일까?

아들이 했던 말을 잊어버릴까 얼른 카카오톡 나에게 채팅으로 보냈다. 이상하 속 썩이거나 나쁜 감정들은 가슴에 콕 박혀 사라지라고 소리쳐도 그곳에 온전한데 이쁜 순간들은 왜 더 휘발되는 걸까?


날을 잡은 건지 진지하게 이야기를 계속 쏟아내는데 “엄마가 좋은 글을 써서 사람들한테 좋은 숙세미로 남으면 좋을 것 같아, 엄마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숙세미로 남으면 좋겠어.” 모든 순간이 정지되는 것 같았다.

“응? 음.. 어.. 엄마 꼭 그럴게..”

쓰는 글들이 블로그에 리뷰나 일상 포스팅, 인스타그램 몇 줄, 가끔 아주 가끔 브런치에 쓰는 글인데 아들 눈에는 엄마가 글 쓰는 사람, 글쟁이로 인식되어 있었다. 아들 눈에 ‘무언가’를 하는 엄마로 비쳤음에 감사했다.


큰 소리를 내고 눈에 힘을 주어 이야기할 때를 부끄럽게 만드는 아들의 말들. 대단한 삶을 사는 것도 아닌데 기다려주지 못하고 왜 빨리빨리만을 외치고 살고 있을까? 너무나 평범하고 보통인 엄마도 멋지게 전문직으로 만들어 주는 걸 보면 조금 더 천천히 흘러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상냥하고 풍족하고 해 달라는 거 다 해주는 엄마 몇 만 명이 있어도 바꾸지 않을 거란다. 바꾸면 우리의 추억이 모두 없어지는 거라고. 추억이 없어져도 상관없냐고 되려 눈물을 글썽인다. 이럴 땐 요 작은 것이 나를 키우려고 세상에 태어났구나, 라는 생각을 한다.


등교 길 학교 근처까지 가서도 비가 온다고 다시 집으로 우산을 가지러 온 아들. 아마 새 우산을 쓰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바로 학교로 가면 될 것을 집으로 돌아왔다 생각하니 답답했지만 아들의 마음을 헤아려주기로 한다. 나는 전문 엄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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