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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숙세미 Oct 15. 2021

힘들기만 한데 나를 왜 낳았어?

오늘도 엄마는 무너집니다

우리 둘째는 감정표현에 솔직한 아이이다. 기본 고집도 있고 그때마다 기분 표현도 아주 탁월하게 한다.

집으로 손 잡고 걸어오는 길.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이야기한다. 지극히 본인 시점에서 말이다.

걸러가며 이야기를 들어야 하기에 집중도가 떨어지고 있는 중 “엄마, 화내지 말고 들어야 해. 진~~~~~짜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야.”

“응, 알겠어. 뭔데?” “힘들기만 한데 애를 왜 낳아? 그럴 거면 안 낳으면 되잖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지금 무슨 이야기를 들은 거지? ‘우리 아이한테 이렇게 순진한 얼굴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나는 아무것도 몰라요’라는 표정을 가득 채운 채 물어본다는 말이 저거였다니.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는 말이 이럴 때 쓰라고 생겨난 말임이 틀림없다. 황당하고 너무 놀랐지만 아이가 물어보는 이유를 얼른 들어야 했다.

학교에서 이런 이야기를 다룬 수업이 있었다거나 드라마 이야기를 들었다거나 이유를 알아야 그에 맞는 설명을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왜? 왜 그렇게 물어보는 거야? 누가 그렇게 이야기를 해? 어디서 무슨 말을 들은 거야?”

“아니~ 그냥 진짜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야. 힘든데 왜 낳아? 안 낳으면 편하게 살잖아.

아이의 눈은 나를 향한 것이었고 물음의 대답도 내가 해야 하는 것이었다. 아이는 진심으로 엄마에게 궁금해서 물어본 말이다. 설마 하며 다른 곳에서 이유를 찾고 싶었는데 실패했다.

“엄마는 힘든 것도 있지만 행복할 때도 엄청 많은데? 웃는 일도 엄청 많잖아? 엄마가 힘들기만 했으면 누나를 낳고 너를 왜 낳았겠어? 힘든 것보다 좋은 게 더 많으니까 또 너를 낳았겠지.”

“아~~~ 그래? 그렇네~”

어쩐지 아이의 눈이 슬퍼 보였다. 엄마의 말을 이해해서가 아니라 엄마의 변명에 이해하려고 노력해본다는 것 같았다.


엄하게 목소리가 커질 때도 있지만 대체로 우리 가족은 재미있는 편이다. 함께하는 시간도 많고 서로 장난도 많다. 그런데 왜 이런 소리를 듣 된 거지?

이후로 아이의 재잘거림이 귀에 닿지 않는다. 가슴 철렁하게 만든 그 말의 이유를 찾아야 했다.


생각해보니 아이에게 ‘엄마 힘들어, 엄마 아파서 쉴게.’라는 말을 자주 했던 것 같다. 혼자 편하게 있을 수 있는 최고의 방법으로 사용했던 것이다.

아이들이 학교와 학원을 다니며 집에 있는 시간이 길지 않는데도 아이들이 오면 금방 혼이 쏙 빠지는 경험을 한다. 아이들이 어려 손이 많이 가는 것도 아닌데 아이들의 큰 목소리와 싸우는 소리 그리고 구구절절 말 많은 아이들이라 에너지를 빼앗기는 기분이 든다.

그럴 때는 아이들이랑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그럴 때 꼭 쓰는 말 중 하나가 “엄마 힘들어서 좀 쉬고 나올게”라는 말이다. 힘들어 죽겠는 표정과 함께.


둘째는 타인의 감정에도 예민한 아이이다. 그래서 나의 힘듦이 아이에게도 분명히 전달됐을 것.

평소 장난기도 많지만 누구보다 가족이 아프거나 슬퍼하면 함께 짐을 덜어가는 아이인 것을 잊고 있었다. 나의 힘듦을 ‘ 때문에’라고 느끼게는 하지 말았어야 했다.


아이가 왜 그런 생각을 갖게 된 건지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건지 대화를 할 기회를 만들어야겠다. 엄마 때문이라면 미안하다는 말도 꼭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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