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전문 주부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주부도 경력이 인정되어야 함을 이야기하고, 주부의 일들이 당연하고 쉬운 노동만이 아님을 뜻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과 취중진담을 좋아한다. 아이들과 야식을 먹거나 외식을 하며 술을 앞에 두고 한 잔씩 하며 이야기하는 시간을 좋아한다. 아이들 교육상 나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늘 장난칠 줄만 아는 경상도 엄마가 아이들 앞에서 조금 더 진지해지는 순간이다.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닌데 맨 정신엔 뭐가 그리 바쁜지, 아님 대화법을 모르는 것인지 두 아이의 말을 다 들어주기가 힘들 때가 많다.
맥주 한 잔과 함께 앉으면 아이들도 맛있는 먹거리가 있고 엄마랑 하염없이 대화하며 살짝 풀어지는 그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고 믿는다.
요즘 책상에 앉아 자판 두들기는 일이 자주 있다 보니 아이들이 “엄마 뭐 해?”라고 물어보면, “엄마 일 하는 중이야”, “엄마 글 쓰고 있어”라고 이야기한다. 그래서인지 식탁에 앉아 노트북이나 아이패드를 두들기고 있으면 엄마가 글을 쓰고 있다고 생각하며 슬며시 옆에 와서 지켜본다. 본인 이야기가 나오면 어떻게 써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때론 잘 썼다고 칭찬도 하고 사진이 이쁘다며 치켜세워주기도.
외출했다 돌아오는 길 집에 가서 저녁 차리기엔 촉박한 시간이고 이럴 땐 외식이 답이다. 동네 치킨집에 앉아 아이들 좋아하는 치킨을 주문하고 생맥주와 함께 우리의 대화는 또 시작되었다.
대뜸 9살 아들이 “우리 엄마는 전문 엄마야, 전문으로 사랑해주는 엄마” 이 말을 듣는데 웃음이 났다. 엄마의 감정과 감성을 잘 건드리는 이 아이가 나를 또 들었다 놨다 하는구나. 어디서 이런 말을 배웠을까? 진심일까? 엄마 기분 좋으라고 하는 소리일까?
아들이 했던 말을 잊어버릴까 얼른 카카오톡 나에게 채팅으로 보냈다. 이상하게 속 썩이거나 나쁜 감정들은 가슴에 콕 박혀 사라지라고 소리쳐도 그곳에 온전한데 이쁜 순간들은 왜 더 휘발되는 걸까?
날을 잡은 건지 진지하게 이야기를 계속 쏟아내는데 “엄마가 좋은 글을 써서 사람들한테 좋은 숙세미로 남으면 좋을 것 같아, 엄마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숙세미로 남으면 좋겠어.” 모든 순간이 정지되는 것 같았다.
“응? 음.. 어.. 엄마 꼭 그럴게..”
쓰는 글들이 블로그에 리뷰나 일상 포스팅, 인스타그램 몇 줄, 가끔 아주 가끔 브런치에 쓰는 글인데 아들 눈에는 엄마가 글 쓰는 사람, 글쟁이로 인식되어 있었다. 아들 눈에 ‘무언가’를 하는 엄마로 비쳤음에 감사했다.
큰 소리를 내고 눈에 힘을 주어 이야기할 때를 부끄럽게 만드는 아들의 말들. 대단한 삶을 사는 것도 아닌데 기다려주지 못하고 왜 빨리빨리만을 외치고 살고 있을까? 너무나 평범하고 보통인 엄마도 멋지게 전문직으로 만들어 주는 걸 보면 조금 더 천천히 흘러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상냥하고 풍족하고 해 달라는 거 다 해주는 엄마 몇 만 명이 있어도 바꾸지 않을 거란다. 바꾸면 우리의 추억이 모두 없어지는 거라고. 추억이 없어져도 상관없냐고 되려 눈물을 글썽인다. 이럴 땐 요 작은 것이 나를 키우려고 세상에 태어났구나, 라는 생각을 한다.
등교 길 학교 근처까지 가서도 비가 온다고 다시 집으로 우산을 가지러 온 아들. 아마 새 우산을 쓰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바로 학교로 가면 될 것을 집으로 돌아왔다 생각하니 답답했지만 아들의 마음을 헤아려주기로 한다. 나는 전문 엄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