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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숙세미 Jan 07. 2023

엄마 내 꿈 살래?

오늘도 뜯겨본다

겨울 방학이 시작되었음이 느껴지는 온도, 기상시간, 흐트러짐. 학교에 가지 않는 주말이면 새벽부터 일어나는 아이가 방학임에도 늦잠을 맛있게도 잔다. 누나 졸업식이라고 연말이라고 먹고 마시는 어른들 덕에 며칠 동안 피곤했을 테니까 사진 한 장 남기며 웃어넘겨본다.

꼼지락거리며 눈을 뜨고는 마치 몇 시간 전에 일어난 듯 또랑 한 목소리로 "엄마, 내 꿈 살래?" 아침부터 흥정태세를 갖춘다. 학교 가는 평일이었다면 그럴 시간 없다며 학교 갈 준비나 하라 했을 나지만, 방학이라는 핑계로 속아줄 자세를 취해본다. "어떤 꿈이었길래? 1000원에 살게!" "그건 너무 싱거운데? 2천 원에 팔게!" 한 살 더 먹은 지 이틀 만에 금방 머리가 커질 줄이야.


가끔 아이들이 무서운 꿈을 꾼단다. 누군가가 죽어서 슬펐다거나 불에 다 타버렸다거나. 아이들에게는 무서운 악몽이 될법한 꿈들은 어른들이 말하는 흔히 대박 꿈들이다. 어쩌면 무서운 마음을 달래려고 길몽이라 말하는 옛 어른들의 지혜는 아닐는지. 나 또한 아이들을 다독이려 좋은 꿈이니 다른 사람 말고 엄마에게 팔라고 흥정하는 것처럼.


그렇게 500원에 샀던 꿈이 이벤트 당첨이 되었던 날이 있다. 물론 큰 이벤트는 아니었다. 500원으로 산 꿈이 몇 배에 달하는 커피 쿠폰으로 돌아왔다. 이후로 아이들은 무서운 꿈들이 진짜 악몽이 아님을 굳게 믿고 있는 것 같다.


평소보다 비싼 꿈을 샀던 날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대박 나진 않았지만 그저 평범했던 하루가 선물이었을까. 아님 엄마에게 팔았던 꿈돈 2000원을 들고 다니다 결국 엄마 지갑으로 다시 돌아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일까? 아직 아이는 모르는 눈치다.


꿈을 사고파는 일 덕분에 아이의 이야기 짓기 실력은 점점 늘어 가는 것 같다. 엄마가 정말 믿는지 믿지 않는지 눈치를 본다. 호응이 좋으면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간다. 내가 꾼 꿈이 아니므로 진실은 아이만 알 뿐이다. 


아침부터 꿈을 핑계로 돈을 뜯겨도 기분이 나쁘지 않다. 오히려 하루를 기대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살 수 있다. 작은 일에도 꿈 덕분이라고 할 수 있는 감사한 마음도 생긴다. 아이는 아이대로 돈도 벌고 엄마에게 기쁜 하루를 선물했다 생각할 것이다.


앞으로 아이에게 몇 번의 꿈을 더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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