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만' 젊은 엄마
내 꿈은 젊은 엄마였다. 세대차이가 적게 날수록 그들의 문화를 잘 받아들이고, 대화가 잘 통하는 멋진 엄마가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결론은 나이'만' 젊은 엄마가 된 듯하다.
대화에 뒤쳐지지 않고 서로 나눌 이야기가 많은 엄마이고 싶었다. 현재도 마찬가지. 교복을 수선한다거나 예쁜 화장을 한다고 해도 적극적으로 말리지는 않을 생각이다. 올해 처음 맞춘 교복이 요즘 아이들답지 않게 예쁘지 않아 "수선집에 가서 예쁘게 줄이자"라고 먼저 제안했을 정도니까.
얼마 전 아이들이 애용하는 쇼핑몰 앱에서 선글라스를 두 개 산단다. 본인 용돈으로 사는 것이라 말릴 이유도 없었다. 요즘 스타일처럼 힙해 보이기도 했으니까. 사실 보면 똥파리 안경 같아 보이기도 하지만 힙한 언니들이 많이 쓰는 핫템같아 보이기도 했다.
빠르게 도착한 똥파리 선글라스는 우리 모녀 사이에 불씨가 되었다. 가족 단톡방에 사진으로 자랑을 하기에 쓰고 나가라고 했더니, 내일 쓰겠단다. 그러려니 했다. 내일 '언제' 쓸지가 합의가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설마 학교에 쓰고 갈 거라는 생각을 1초도 하지 않은 건 내가 센스가 없었던 탓일까?
학교 등굣길에 쓰고 가겠다는 당당한 아이를 보고 당황스러워 처음엔 말문이 턱 막혔다. 엄마한테 장난치는 거겠지, 놀리는 거겠지 싶었는데 농담 하나 없는 진담이었던 것이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꼰대력이 급상승해오는 것을 간신히 막고 어떻게 조리 있게 아이를 설득할까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이해해 보려고 노력했지만 선글라스를 끼고 걸어가는 아이의 모습과 아이를 쳐다볼 다른 학생들의 시선이 자꾸 떠올라 실패했다. 흔히 말하는 노는 언니야들한테 찍히지 않을까?라는 생각까지 빠르게 스며들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인 것이냐부터 시작해서 관심받고 싶은 것인지, 예뻐 보이고 싶은 것인지? 그러다 교문에서 잡힌다. 중학교는 초등학교랑 다르다. 주말에 어울리는 예쁜 옷 입고 쓰는 게 낫지 않겠냐, 교복이랑은 어울리지 않는다 까지.. 설득이라 말하고 랩을 했다는 편이 맞는 표현일지도.
<10대의 뇌> 중에는 10대의 뇌는 새로움을 추구하고, 위험을 감수하는 기계라는 사실을 명심하자.라는 글이 있다. 책을 읽는 동안에 지금 한참 충동성이 커질 때이고, 무조건적인 반대는 반항심만 키울 뿐이라는 것을 수도 없이 읽고 또 읽어왔다. 책은 책일 뿐, 현실에서 먹히지 않았다.
'법을 어기는 일이나 어른에 버릇없는 행동이 아니라면 최대한 수용해 주고 이해해 주자'는 교육관을 가지고 살자 다짐했는데 너무나 어이없게 또 쉽게 무너진 순간이었다. 결국 아이는 학교에 선글라스를 '쓰지 않고' 가지고 갔고 쉬는 시간에 꺼내 들고 놀다가 인싸가 되었단다. 다른 반 친구들도 빌려가서 사진을 찍고 놀며 선글라스 패션의 시초가 되었다고.
지나고 보면 참 별 일 아니라 머쓱하지만 지금은 엄마 그때 참 꼰대 같았다며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만약 학교에서 선생님께 한소리 들었다면 나는 더 퍼부었겠지.. 그럼 이 글도 세상에 없었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