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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진 Aug 10. 2023

죄책감을 받아들이는 연습

비효율적임에도 돌아가는 것이 마땅한 세상이 되길 바란다

동물을 키울 권리, 다룰 권리는 누가 누구에게 쥐어주는가



몇살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언젠가, 강아지를 처음 안아봤을 때, 그 온기와 새근 새근 내쉬는 숨이 너무 귀했다. 나는 그때부터 동물이 너무 좋았다. 내쉬는 숨이, 나랑 다르게 생긴 몸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뭐가 그렇게 바쁜지 제각각 뽈뽈 돌아다니며 뭔가를 하는 모습들이 그저 사랑스러웠다. 그런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나와 같은 생명체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누리기 바람을 시작으로 내 꿈은 수의사가 되었다.


어린 내가 생각한 마땅한 권리라는 것은 “행복해질 권리.” 였다. 동물이 어디까지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지 모르는 어린 마음에는 그저 내가 부모님께 사랑을 받을 때, 뭔가를 하고서 칭찬받을 때, 맛있는 것을 먹었을 때 내가 느낀 행복을 똑같이 느끼기를 바랬다.


그러나 내가 생각한 이 말이 적용되는 동물의 범위는 누가 정하며, 그 가치는 어디까지 적용될 수 있는걸까.

인간은 보다 이성적인 존재라는 이유로, 도구를 사용할 수 있기에 먹이사슬의 최상위에 올라간 존재로써 동물을 이용하고, 먹고, 유흥거리로 소비한다. 이런 상황에서 반려동물, 야생동물, 산업동물, 실험동물 모두에게 ‘행복해질 권리’를 찾을 수 있을까.

 

반려동물을 기르면서, 소고기, 양 도가니, 닭 목뼈 이런 동물을 사용한 식사나 간식을 먹이고,

야생동물구조센터에서 봉사활동을 했을 당시 병아리, 메추리, 쥐 같은 동물들을 센터에 계류하는 동물들한테 먹이고,

젖소 목장 집 딸로써, 우유같은 것 또한 젖소를 끊임없이 임신시키고 송아지를 생이별 시키며 생산된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것들을 소비하고,

실험동물의 희생을 통해 만들어진 약품, 의류등을 사용하고,

또, 농장동물을 소비하기도 한다.


위 중, 행복할 권리가 있는 동물은 누구일까.

사람과 동물들의 목숨의 경중을 따지지 말아달라고 수십번 했던 캠페인에서 그렇게 외쳤으면서, 나는 동물들 간에서도 경중을 나누고 있는 꼴이기에,

먹이사슬을 이유로 들면 내 맘이 좀 편하지 않을까 싶다가도 인간이란 이유로 그들에게 도망칠 권리조차 제공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나를 또 답답하게 만든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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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할 권리는 모두에게 있었으나, 사람들은 어느새 동물을 다룸으로써 그들이 행복할 권리를 본인의 손에 거머쥐었고, 쉽사리 돌려주지 않는다.




‘동물권’이란 단어가 그저 단어하나가 아닌 괴로운 단어로 느껴지길 바란다.

동물을 기르고 이용하고 있는 사람이란 존재가 동물권이란 말을 받아들이기 시작함으로써 동물도 행복해야할 대상으로 두었기 때문에, 잇따라 본인이 저지르고 있는 일들에 죄책감을 느끼고 고통받기 때문이다. 야생동물의 야생성 유지를 위한 작은 동물들의 희생은 차치하더라도, 먹이사슬 최상위 존재로써 누려도 될 이득, 반려동물의 즐거움같이 듣기 좋은 말들로 자위했으나 사실은 마음 한켠에 머무는 죄책감이 있을 것이다. 나는  이런 죄책감을 그 자체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는 중에 있다.

희생된 동물들에겐 하등 쓸모없을 죄책감이 그 동물들을 위로할 수는 없겠지만, 언젠간 동물들에게 우리의 죄책감으로부터 시작되어 많은 것이 변했다고 말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



‘동물권’이란 말을 수용함으로써 부끄러움이 많은 세상이 되길 .


생명이 아닌 것들로 대체될 수 있는 것은 대체되고,

필요하지 않은 유흥은 거센 비난에 의해 사라지고,

변화중임에도 여전히 이용해야하는 동물들에겐 살아있는 동안 최선의 환경이 주어지길.


이익만을 쫓던 마음이 죄책감에 삼켜져 약간은 돌아가더라도 마땅히 그러하길.





메모장에만 있던 글이 아닌 누군가가 읽을 수 있다는 생각에 글의 결론이 있어야한다는 생각이 부담으로 다가와 메모장의 글들을 꺼낼 수가 없었다. 책 한권 읽은 사람이 신념을 가지면 무섭다라는 말을 듣거나, 글을 쓰면 쓸수록 비루한 지식이 드러날까 두려워 망설였지만, 지금 내가 뱉는 모든 말과 질문들은 앞으로도 내 스스로 만족할만한 결론을 얻을 때까지 끊임없이 고민할 것이기에

내가 수의사로써 성장하는 동안의 고민을 그대로 써 내비치려 한다.

작가의 이전글 있어야 할 그 자리에 있는 수의사가 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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