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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블 소피아 Dec 10. 2023

불편한 오벨리스크


이탈리아 곳곳에 놀랄 정도로 오벨리스크를 많이 발견한다. 성 베드로 대성당에 있는 오벨리스크는 기원전 30~19세기 이집트 제12왕조 세소시디스(Sesosidis)의 아들인 넨코레우스(Nencoreus)가 헬리오폴리스(태양신에게 바쳐진 도시)에 세운 것이다. 넨코레우스가 누구인지 의견이 분분한데 유력한 후보로는 아메넴헤트 1세와 아메넴헤트 3세가 있다고 한다. 기원전 1세기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명을 받은 이집트 총독 코르넬리우스 갈루스가 이 오벨리스크를 알렉산드리아 포룸 율리움(Forum Julium)으로 옮겼으며, 이후 서기 37년 칼리굴라 황제가 로마시 테베레강 서안에 마련한 개인용 전차 경기장에 옮겼다. 그리고 서로마제국 멸망 후 옛 성당 옆에 방치되었다. 버려져 있던 오벨리스크를 1500년 뒤 교황 식스토 5세의 명령에 의해 복원하게 되면서 지금의 위치로 옮기게 된다. 오벨리스크 기단부 4면과 상단부에 라틴어로 이교 신앙에 대한 그리스도의 승리를 적어 놓고 있다고 한다. 이 오벨리스크 꼭대기엔 십자가가 놓여 있다. 



판테온 앞 광장의 분수 위에도 오벨리스크가 있다. 이 오벨리스크는 고대 이집트 제19 왕조의 람세스 2세를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기원전 1278년부터 1213년까지 만들어졌고 헬리오폴리스 앞의 한쌍의 오벨리스크중 하나를 로마로 가져왔다고 한다. 오벨리스크에 새겨진 글씨는 태양신 라와 파라오의 관계를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로마는 이집트를 정복하기 훨씬 전에 일부 로마인들이 이집트 신 이시스 세라피스를 섬겼는데, 이 신전을 꾸미기 위해 이것을 가져와서 신전에 가져다 두었다가 지금의 위치로 다시 옮겼다고 한다. 그리고 오벨리스크 위에 1711년 이탈리아 조각가 필리포 바리고오니가 십자가를 설치했다. 



판테온 앞 로톤다 광장의 오벨리스크

 포폴로 광장 중앙에는 플라미니오 오벨리스크가 있는데 이집트에서 가져온 최초의 오벨리스크라고 한다. 이것도 기원전 1300년에 제작되어 원래 헬리오폴리스의 태양신 라 신전에 1000년 있다가 로마의 이집트 정복에 성공한 아우구스투스가 로마로 가져왔다.

포폴로 광장의 오벨리스크



아우구스투스는 길이 약 20미터 정도인 몬테시토리오 오벨리스크도 가져왔다. 기원전 595년과 589년 사이 통치한 프삼티크 2세 때 만들어진 것으로 아우구스투스를 기리는 글귀가 새겨진 지지대를 만들었다.


 이것은 모두 전리품이다. 물론 이집트에서 친선관계의 징표의 선물로 준 오벨리스크도 있다. 프랑스 콩코드 광장의 오벨리스크가 대표적이다. 그것은 무함마드 알리가 루이 필리프 1세에게 선물로 준 것이고 프랑스는 답례품으로 대형 기계식 시계를 이집트에 선물로 주었다.


하지만 유독 이탈리아에서 보이는 오벨리스크 위에는 십자가가 쾅 박혀있었다. 이집트의 고대 기술을 약탈하듯 가져와서 보란 듯이 본인들 신의 상징을 박아 놓고 도시 곳곳에 전시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도대체 이것으로 세계 사람들에게 무엇을 자랑하고 싶어 하는 건지 도무지 모르게 된다.  로마라는 나라가 오벨리스크를 만들 수 있는 정도 기술을 가진 이집트 보다 위에 있음을 상징하는 것인가? 아니면 가톨릭이라는 종교가 어느 종교들보다 위에 있음을 상징하려고 하는 것일까? 살인을 하지 말라던 종교가 아닌가? 그런데 다른 나라를 피로 물들인 전쟁을 치르고 전리품으로 이것을 가져와 놓고 자랑스럽게 전시해 놓는 것이 과연 자랑할 만한 일인 것일까? 부끄러워해야 하는 것 아닌가? 말로는 평화, 평화하지만 사실 오래전부터 힘의 논리가 인간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 순리이자 이치였던 것이라 새삼스러워할 필요도 없어야 하는 것일까?

나는 이 조형물 앞에 서면 감탄사가 나오지 않고, 기분이 영 찜찜하다. 어찌 대해야 할지 참 난감하다. 이것을 보고 있으면  마치 힘이 젤 센 초등학생 아이가 최신형 디자인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있는 힘없고 약한 아이의 운동화를 뺏어 신고 다른 친구들에게 자랑하는 그런 모습이 생각난다. 그래서 이 멋진 인간의 조각품 앞에서 쓴웃음만 짓게 된다. 오벨리스크를 보면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 건가? 

나는 내 감정을 윌에게 이야기하며 그에게 물어봤다. 


“너는 오벨리스크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들어?”

“나는 너처럼 감정이입이 돼서 씁쓸하다는 생각은 별로 없고 그냥 또 다른 하나의 유물이라는 생각이 들어. 유물을 그렇게 하나하나 예전 나라의 소유로 따지고 들면 소유권이 불분명한 게 많아. 어떻게 보면 오벨리스크는 이집트 국민의 것이 아니라 이집트 왕이 노예들에게 하여금 만들게 한 왕의 소유물이었을 것이고, 이집트는 또 여러 나라의 식민지였기도 하고, 만약 그런 식으로 유물을 지금 국경이 만들어진 나라가 가져야 한다고 정리하면 복잡해질 것 같은데? 그럼, 튀르키예 셀축에서 우리가 봤던 고대 로마 도시는 해마다 관광객들로부터 많은 수입을 받아들이잖아. 튀르키예 자신들의 작품도 아닌 고대 로마 건축물인데 말이야. 로마에게 수입을 주지 않지. 그건 괜찮아? 그리고 독일에서 박물관에도 다른 나라 유물이 전시되어 있었잖아. 그 유물들이 독일에 전시되어 있는 건 괜찮았어?”

나는 말문이 막혔다. 내가 한반도라는 단일 민족의 국가에서 2000년이 넘는 세월 간 조상들이 물려준 우리 땅, 우리 민족이라는 틀에 살면서 이 환경에 너무 익숙해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1300년경 아나톨리아 전역을 정복한 오스만튀르크 제국이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하고 여러 나라로 갈라졌는데 만약 지금 오스만튀르크 제국의 유물이 발굴된다면 어느 나라의 소유라 해야 하나? 

그리스의 에레크테이온 신전의 여인상도 마찬가지이다. 신전을 받치고 있는 '카리아티드'라 불리는 6개의 여인상이 있는데 실제 신전에 있는 여인상은 모조품이고, 원본 5개는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에 있고 1개는 대영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영국의 엘긴 경 T. 브루스가 1801~1903년에 걸쳐 카리아티드의 여인상 및 파르테논 신전 외벽 조각들을 모조리 뜯어 갔고 ‘엘긴 마블’이란 이름으로 대영 박물관에 전시했다. 그리스에서 문화재 반환해 달라고 끊임없이 요청했지만, 오스만튀르크 제국의 허가를 받아 합법적으로 가져갔다며 영국은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고 지금 카리아티드 여인상은 영국에 가야 볼 수 있다. 신라시대 금귀걸이도 대영박물관에 있는데 1938년 일제강점기 때 일본을 통해 합법적으로 구매하였다고 한다. 


핀초언덕 위의 오벨리스크


윌이 하는 말도 일리가 있고, 합법적으로 구매했다고 하지만 강대국들이 뺏아간 유물을 보면서 슬퍼지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약자여서 슬픈가 보다’라는 생각도 들었다. 

개인적으로 가진 것도 없고 힘도 없어서 더 감정이입이 되나 보다.


여행을 할수록 더 느낀다. 

항상 세상은 강자가 지배하고 

항상 세상은 불공평하고 

항상 인간은 이기적이다.


이것이 사실이지만 이렇게만 생각하면 세상은 살기 너무 각박하다. 이 세상이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어야, 그래서 살아갈만한 가치가 있다고 믿을 수 있어야 살 힘이 나지 않겠나. 그래서 씁쓸한 진실의 틈 사이를 비집어보고 샅샅이 뒤져 사랑을 찾고, 믿음과 희망을 찾으며 오늘도 우리는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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