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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블 소피아 Jan 01. 2024

치명적인 아름다움, 사하라 사막

해가 뉘엿뉘엿 질 때쯤 그토록 보고 싶었던 사하라 사막에 다다를 수 있었다.

가이드가 사하라 사막의 모래언덕(Dune)이 산처럼 보이는 곳에 차를 세워주며 전망을 감상하게 해 주었다. 곳곳에 듬성듬성 식물이 보였다. 내가 사막에 홀로 서있는 나무를 가리키며 신기하다고 하자, 가이드는 이 나뭇잎은 낙타가 먹으면 죽고 사람이 만지면 눈이 머는 독초이니 절대로 만지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다. 그렇게 독한 나무여서 그런지 주변에 자기 혼자 말고 아무도 없었다.

 ‘사람이나 나무나 독하면 주위에 아무도 없는 건 똑같네.'

 그래도 악착같이 살아남으려고 독을 뿜어내며 모래와 뜨거운 태양 이외에 아무것도 없는 야생에 홀로 버티고 서 있는 그 나무를 보니 어쩐지 안쓰러운 마음도 들었다. 뜨거운 생명력도 느껴졌다. 노을에 반짝이고 있는 핑크빛 모래산이 어쩐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사막에 홀로 서있던 나무


우리는 다시 차를 타고 멀리서 보던 모래언덕에 조금 더 가까이 갔다. 그리고 진흙으로 지어진 낮은 건물로 들어갔다. 그곳은 숙소는 아니었고 카페처럼 보였는데 그곳에서 우리는 사하라 사막 액티비티에 동의한다는 동의서를 작성했고 나와 윌은 페즈에서 미리 사온 모로코 전통 의상인 젤라바로 갈아입은 뒤 스카프를 머리에 둘렀다. 여태껏 우리를 태우고 달려준 사륜구동 지프차로 모래언덕까지 가는 것은 무리였기 때문에 여기서부터는 낙타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우리 짐은 여행사 직원들이 숙소인 캠프로 옮겨 주었고, 우리는 여기서 낙타를 타고 사막 안쪽으로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가기로 했다. 카페 앞에 낙타 네 마리가 무릎을 꿇고 앉아서 끔뻑끔뻑 큰 눈을 깜빡이며 본인 코와 입을 감싸고 있는 단단 핫 밧줄 고삐를 요리조리 씹고 있었다. 나는 낙타를 이렇게 가까이서 본 것은 처음이다. 그의 속눈썹은 모래바람을 막아주기 위해 아주 길고 풍성하게 나있었고 귀도 털들로 수북이 덮여있었다. 발도 내 손바닥 두 개는 합쳐진 것같이 넓적하게 생겨 걸을 때 모래바닥으로 푹푹 빠지는 것을 막아주었다. 이런 척박한 환경에 적응해서 살 수 있게끔 진화된 생물이 경이롭게 느껴졌다. 낙타를 탄다고 상상하면 꽤 신날지 모르지만 실제로 타고 가는 동안은 너무 불편했다. 낙타의 높이가 꽤 높아서 타고 내릴 때 좀 무섭기도 했고 낙타가 움직일 때마다 사람이 편하게 앉아서 갈 수 있게 만들어 놓은 안장과 나의 사타구니가 쓸려서 어쩔 줄 몰랐다. 사막에서 낙타 외에 뾰족한 교통수단이 없을 텐데 이렇게 불편한 걸 몇 시간씩 어떻게 타고 다녔을까?


 낙타를 천천히 타고 가다가 근방에서 보이던 모래언덕 중 가장 높은 곳 앞에 섰다. 우린 이곳에서 내려 모래언덕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발이 모랫속으로 푹푹 빠져서 걷기가 힘들고 가파를 사구를 오를 때 산을 탈 때처럼 숨이 가빠졌다. 그리고 바람이 아주 거세게 불어 함께 갔던 스페인 여인의 모자가 바람에 날아갔다. 뜨거운 태양을 가리려고 모자를 쓰고 왔지만 사막의 모래 바람 때문에 모자는 무용지물이 되었다. 곱디고운 모래가 눈에도 들어가고 카메라에도 들어갔다.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었다. 따가운 모래 바람을 맞으며 바람이 이보다 더 강하다면 피부가 다 벗겨질지도 모르겠다는 끔찍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모로코 현지인들처럼 머리에 두른 스카프 끝자락을 귀에 고정시켜 얼굴을 다 가렸다. 이렇게 옷을 입는 데는 이유가 있구나. 통풍이 잘 되는 젤레바는 햇볕을 가려주면서도 시원했고, 스카프가 얼굴로 불어오는 모래를 막아주었으며 흐르는 땀까지 자동으로 흡수해 주었다.



우리는 높은 사구의 끝에 걸터앉아 모래를 손으로 만져보았다. 한 줌 쥐어 바람에 날려 보냈다. 어쩌면 이렇게 곱고 아름다운지……. 보통 해변에서 볼 수 있는 모래보다 훨씬 곱다. 밀가루만큼 고왔다. 모래는 노을에 빛나 금빛으로 반짝거렸고 촉감이 아주 건조해 손가락 사이로 먼지를 일으키며 빠져나갔다. 모래언덕 중턱 정도 앉아서 이 대지를 뜨겁게 달구다 장렬하게 지구 반대편으로 넘어가는 태양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온통 모래뿐인 세상이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이곳에서 길을 잃으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토록 멀리 있을 것 같은 죽음이 바로 내 눈앞에 성큼 와있는 느낌이 들었다.


저녁에 캠프로 돌아올 때 해가 저물었다. 어둑어둑한 사막에 네 사람이 낙타에 타고 한 명의 가이드가 낙타 앞에서 걸어가며 우리들을 숙소로 이끌고 있었는데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우리들 그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고 스르륵스르륵 빠지는 낙타의 발소리 마저 신비스러울 만큼 고요하여 완벽한 적막으로 둘러 쌓인 채 한참을 가게 되었다. 내가 이렇게 무서울 정도로 아무 소리도 없는 환경에 노출되어 본 적이 있었을까? 사막의 적막에 기분이 묘해졌다.  투어를 예약할 때 숙소는 사막의 캠프(desert camp)라고만 되어있어서 나는 바람을 겨우 막아주는 허름한 텐트에 화장실 이용도 마음껏 할 수 없을 상황까지 각오하고 왔는데 휘황찬란한 럭셔리 캠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녁식사도 훌륭했고 식사가 끝나자 모닥불을 피우고 직원들은 아프리카 전통악기를 두들기며 공연을 펼쳤다. 공연이 끝나자 그들이 말했다.

“자, 이제 우리가 너희들에게 줄 선물이 있어.”

그들은 캠프에 켜져 있던 모든 불을 소등하였고 순식간에 하늘은 수도 없는 별들로 뒤덮였다. 높은 건물이 없으니 그야말로 땅 끝에서 180도 방향으로 땅 끝까지 모두 별이었다. 

 그날은 내가 살면서 최고로 멋진 별을 본 경험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때는 캐나다에서 처럼 철학적인 깨달음도 없었고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이 별들의 아름다움을 한없이 눈에 담으려 노력했다. 우리는 너무 아름다운 것을 볼 때는 말이 없어지는 것 같다. 난 그저 입을 벌리고선 하염없이 하늘만 바라보았다. 이렇게 별이 잘 보이는 곳에 사는 사람들은 계절마다 움직이고 다시 돌아오는 별들을 연구할 수밖에 없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캠프에서는 아니었지만 나와 윌은 사막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이 극한 환경의 더위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까? 사막에서 어떻게 살아가나?

왜 사람들은 생명의 희망조차 보이지 않는 사막을 열망하는가? 왜 떠나지 않는가?

왜 사막은 치명적이게 아름다운가?


“ Don’t worry, death will save you. 걱정하지 마 죽음이 널 구해줄 거야.”

요즘 실존주의 철학에 빠져있는 윌이 알베르 카뮈의 말을 인용하며 재미난 이야기를 해 주었다.

알베르카뮈(Albert Camus 1913 ~1960)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우리에게는 소설 ‘페스트’로 친숙한 프랑스의 작가이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고 마른 전투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청각장애 어머니와 가난하게 살다 알제 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지만 그의 병인 결핵으로 교수가 될 것을 단념하고 신문기자가 되었다. 1942년 프랑스가 독일에 점령당할 당시 그는 소설 ‘이방인’을 발표하였고 ‘시지프스의 신화’도 발표하였다. 사람들은 그를 실존주의자로 보았지만 그는 ‘나는 실존주의가 끝나는데서 출발한다’며 그것을 부정하였다.



윌이 이야기했다.

“Albert Camus said that the only true philosophical question is whether or not to commit suicide.”

알베르 카뮈가 말했어, “단 하나 진정한 철학적 질문은 자살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이다."라고.


윌에 따르면 내일이라도 당장 내 손으로 직접 삶을 마감할 수 있는 여지가 항상 있는데 왜 우리는 죽지 않고 살아가는가에 대한 질문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살고 싶은 만큼 죽고 싶어 하는 욕망도 크다고 한다. 죽음은 항상 가까이에 있고 한 줌에 재가 되어 대지로 돌아가려는 욕망은 어머니의 자궁 속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욕망과 비슷한 감정이라는 것이다. 어머니의 자궁이란 태아가 느끼는 가장 편안한 상태의 환경이고, 삶이 너무 고달프고 힘들 때 자살 감정을 느끼고 죽고 싶어 하는 생각을 해보는 심정 자체가 바로 이 죽음이 주는 편안할 것 같은 욕망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것이다. 이 말대로라면 누구나 죽음의 욕망을 품고 있는데 나는 왜 죽지 않고 살아가는가?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옛날 속담이 있다. 

이승, 저세상이 아니라 내가 속한 이 세상. 

삶이 고단하고 힘들지라도 내가 굳이 이승에 살아가는 이유와 목적은 무엇이란 말인가? 이 문장은 우리 삶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사막이 이렇게도 치명적이게 죽음으로 우리를 유혹하고 있는데, 내 손으로 생을 마감하지 않고 치열하게도 우리는 견뎌낸다.


아마도 사막 아름다운 이유는 죽음을 가장 가까이서 느끼게 해 주어 편하게 살아가고 있는 오늘날 간접적인 죽음을 경험하게 함으로써 내가 살고 있는 오늘 삶을 다시 보게 해주는 힘이 있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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