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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블 소피아 Jan 01. 2024

사막에서 떠도는 아이

사하라 사막을 막 떠나 다음 목적지로 향해 달리고 있을 때였다. 차가 쌩쌩 달리는 도로 옆에  8살 정도 되어 보이는 꼬마 아이가 물통을 흔들며 서 있었다. 우리는 영문을 몰랐지만 무스타파는 곧바로 차를 세우고 방금 출발하기 전에 본인이 마시려고 산 1.5리터 물 한 통을 그 아이에게 건넸다. 나는 아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도로는 180도의 황량한 지평선으로 둘러 쌓여 있었고 멀리 바위산 정도만 앞에 덜렁 하나 있을 뿐 사람 눈으로 볼 수 있는 집은 그 어디에도 찾을 수 없었다. 왼쪽을 봐도, 오른쪽을 봐도 메마른 땅과 하늘뿐이었다. 이 아이가 도로를 떠나 본인의 집을 찾으러 내 눈에 안 보일 때까지 걸어가는데만 몇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이 아이는 도대체 어디서 왔다는 말인가? 



“저 아이는 노매드(Nomad)의 자식 일 거야. 집은 아마 아주 멀리 있을 거고 이런 곳에서 물을 구하기 힘드니까 절박할 때는 가끔 저렇게 도로 쪽으로 와서 물을 구걸하곤 해. 그걸 보면 지나칠 수가 없어. 물이 없으면 그 아이는 집까지 돌아가기 힘들 테니까."


무스타파가 설명해 주었다. 노매드(Nomad)란 유목민이라는 라틴어이다. 현대 사회의 우리에게는 디지털 노매드(Digital Nomad)라는 용어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디지털 노매드란 디지털 기기를 가지고 다니면서 시간이나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유목민처럼 자유롭게 사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나는 노매드 아이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 보았다. 단 1분도 서있기 힘든 사막의 여름, 한낮의 이 사악한 태양열 아래 그늘 하나 없는 곳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한 발짝 한 발짝 걸어 머나먼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 나는 반사적으로 아이가 너무 걱정되었다. 

노매드의 삶이란 어떤 것일까? 그들은 수시로 옮겨 다니며 임시 텐트를 치고 살거나 바위의 절벽 틈, 동굴 같은 곳에서 최소의 필요한 용품과 음식과 물만 가지고 살아간다. 가끔 차를 타고 가다 황량하고 메마른 땅 위에 노매드의 텐트가 보인다. 나뭇가지로 대충 틀을 세우고 여러 가지 누더기 천으로 하늘을 대충 덮어 놓아 바람이라도 세게 불면 날아갈 것처럼 생긴 것이 그것이었다. 어도비 슬라브로 지은 집도 있다. 진흙으로 만든 집인데 그런 집을 지어 살다가도 때가 되면 집을 비우고 떠난다. 그들은 자녀에게 도시에서 제공해 줄 수 있는 교육은 전혀 시켜줄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은 다른 것을 가르친다. 그들은 알람소리가 아니라 아침 햇살에 눈을 뜨고 하루를 시작한다. 한두 시간 정도 차를 마시고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이야기하고 준비한다. 아이들에게 별, 바람, 사구를 읽고 해석하는 법, 양을 치는 법, 당나귀를 돌보는 법 등을 가르친다. 염소나 양에서 젖을 짜는 법을 가르친다. 아버지는 물이 있는 곳을 찾고, 엄마는 텐트를 고치고 아이들을 돌보고 음식을 준비한다. 해가 저물면 다시 차를 마시며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다. 사막에 그 어떤 소리도 없다. 가축들은 울타리로 돌아가고 식구들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이들에게 조상들로부터 전해져 오는 이야기를 건네준다. 밤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별들이 쏟아져 내리는데 전기가 없으니, 그들은 매일매일 이런 별들을 보고 산다. 무스타파에 따르면 노매드는 모로코 정부에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그래서 집세, 자동차세, 물세, 전기세 등등 각종 세금으로부터 자유롭다. 그들은 도시로 돌아가는 것을 거부한다고 한다. 조상들로부터 내려져 오는 이런 삶의 방식을 지키며 살고 싶어 한다고 했다.

지구 종말이 온다면 도시인들보다 그들이 더 생존할 가능성이 높을 것 같다. 사실 내 입장에서 바라봤을 때 모든 것이 불편할 것 같고 아이가 불쌍해 보이고 안타까웠지만 그 아이에게 내 생활을 이야기해 준다면 오히려 그 아이가 나를 불쌍해  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무스타파가 말했다.


“노매드의 삶이 세금도 내지 않고 자연과 함께 마음대로 사는 것 같아 도시의 삶보다 차라리 속편해 보일지 모르지만 그들도 한 가지 힘든 점이 있어. 끊임없이 물과 먹을 것을 찾아다녀야 한다는 점이야. 그리고 그들이 도시의 삶이 싫다면서 거부하는 것처럼 보여도 그들은 도시 없이 살 수도 없어. 도시에 한 번씩 와서 양, 염소젖이나 치즈, 고기등을 시장에서 음식과 물과 바꿔서 가야 하거든. 이런 삶이 힘들다고 포기하고 도시에 들어갈 수도 없어. 교육을 받지 않아 일자리가 마땅하지 않기 때문에 도시에서도 살아가기 힘들거든. 결국 조상들 대대로 내려오는 방법으로 살 수밖에 없지. 노매드로 태어났으면 노매드로 살 수밖에 없을 거야.”

 무스타파의 의견도 일리가 있었다. 어디서 태어났느냐에 따라서 그들의 인생이 결정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이 살아가는데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조상들이 물려준 방식대로 그대로 살 수도 있고, 그 방식이 답답해서 그곳을 떠나서 살 수도 있다. 아프리카에서부터 전 세계로 퍼져나간 호모사피엔스이다. 하지만 어떤 방식대로 살던지 어려움은 있다. 남에 떡이 더 커 보이는 것처럼 다른 사람의 삶이 좋아 보여도 막상 그렇게 살다 보면 맞이하게 될 또 다른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어떻게 살아가든 정답은 없다. 그래서 본인이 생각하기에 옳은 방식대로, 살고 싶은 방식대로 살면 된다.

그리고 우린 곧이어 여행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무스타파, 너는 가이드를 하면 전 세계 여행자들을 정말 많이 만나겠다. 너는 다른 나라로 여행 가본 적이 있어?"

“아니 가본 적이 없어."

“그럼 혹시 간다면 어디에 제일가보고 싶어?"

“난 스페인에 가보고 싶어."

“스페인 너무 멋질 것 같은데! 한번 도전해 봐!"

“사실 한번 가려고 했던 적 이 있어. 그런데 비자가 거절되었지 뭐야. 사막에서 스페인에 관광비자를 받으러 가려면 비자를 준비하는 비용이 500달러 정도 들어. 이렇게 마음먹고 큰돈을 준비해서 카사블랑카에 있는 스페인 대사관에 가야 하지. 카사블랑카의 스페인 대사관이 멀어서 그곳에서 하루 묶고 면접을 봐야 해. 가는데 오는데 비용도 만만치 않아. 하지만 난 가고 싶어서 그 비용을 모두 들여 카사블랑카에 면접을 보러 갔었어. 하지만 거절당했어."

“왜? 그 스페인에서 관광 좀 하겠다는데 왜 거절시켰데? 그들이 이유는 가르쳐 줬어?"

“그 이유는 스페인에 와서 모로코로 돌아갈 것 같지 않다는 이유였어.” 

“……”


 무스타파는 사막에서 태어났고 사막에서 자랐다. 무스타파가 어느 날 페즈(Fes)에 간 적이 있는데  이삼일도 있기가 힘들었다고 한다. 내가 물었다. 

"뭐가 그렇게 힘들었어?"

“그곳에 이 삼일 정도만 있었는데도 나는 내 고향 사막의 고요함이 그리웠어."

나는 무스타파가 스페인에 갔어도 스페인 이민관의 의견과 달리 그는 사막으로 돌아갔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스페인 사람들이 바쁘게 사는 모습을 보며 ‘고요한 사막이 더 멋지군.'이라고 생각하며 사막으로 돌아가는 무스타파를 상상해 보았다. 


사실 비자가 거절되는 이 기분을 알 것 같았다. 나도 경험이 있다. 2006년쯤이었나? 미국과 한국에 90일 무비자가 체결되지 않았을 때 미국에 놀러 가고 싶어서 서울에 있는 미국 대사관에 관광비자 서류를 준비하여 면접을 보러 간 적이 있었다. ‘너희 나라로 돌아갈 것 같지 않다’라는 이유로 비자가 거절되지 않으려고 재직증명서 통장의 잔고증명서 여러 가지 철저하게 준비했는데도 면접관 앞에서 바들바들 떨었었다. 다행히 내 비자는 승인을 받았지만 항상 비자를 준비하거나 입국할 때 면접을 보면 선진국일 때 준비도 많이 했고 잘못한 것도 없는데 혹시나 입국거부 될 까봐 심장이 벌렁벌렁 했다. 발리에 여행했을 때 해변에서 한 커플을 만나서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캐나다인 여자와 인도네시아 남자인 커플이었는데 그들이 결혼하고 인도네시아 남자가 캐나다로 이민을 신청했었는데 너무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캐나다 이민국은 어떤 서류가 불충분하고 재산이 여유롭지 않다는 등의 이유로 서류를 보류시켰고 이민하는데 3년이 넘게 걸렸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보통 결혼 이민을 신청하면 1년 정도 걸린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남성이 속한 국가가 인도네시아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일들을 겪거나 이야기를 들으면 내가 대한민국에서 일제강점기가 아니고, 6.25 전쟁도 아니고, 박정희, 전두환 정권 시대도 아닌 현대 시대에 태어난 걸 감사하게 된다. 다양한 나라와 도시를 별문제 없이 다니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수없이 많은 것들을 눈에 담고 가슴에 담는다. 이 소중한 경험들을 할 수 있게 되어 너무나 감사하다. 너무 편하게 살고았다 보니 내가 자만을 넘어 교만했었다고 느껴질 정도이다. 한국에서 다람쥐 쳇바퀴 돌며 살아가는 일상이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동안 불평했던 일들, 지루했던 삶 모든 것들이 새롭게 느껴졌다.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내 삶의 하나하나가, 한순간 한순간들이 매우 아름답고 소중하게 느껴졌다.


여행을 하다 보면 그런 여러 가지 살아가는 방법을 어깨 너머 슬쩍 훔쳐보고 내 생활과 비교도 해보고 왜 이렇게 사는지 골똘히 생각해 보고 가르침도 얻는다. 사막에서 떠도는 아이를 보며, 무스타파의 삶을 보며 나와 비교해 본다. 일상을 살며 안주하게 되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나태함과 자만심을 없애고, 여행을 통해 얻는 배움으로 내 삶을 더 풍요롭고 가치 있게 만들 수 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놓고 ‘내방식 대로 살면 된다’라고 말했지만 그렇다면 어떤 것이 내 방식인가?를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여행은 바로 그것을 나에게 가르쳐 주는 도구가 될 수 있다. 마치 수능 치기 전 모의고사를 보는 것처럼 여행이라는 떠남과 돌아옴이 있는 짧은 인생을 맛보며 그때 하게 되는 선택과 그에 따른 결과로 인한 교훈이 앞으로 장기적인 나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방향을 잡는데 도움을 주는 것이다. 20대 때 하는 여행이 다르고, 30대, 40대 때 하는 여행이 다르다. 내가 변하기 때문이다. 나는 20대 때는 좀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고,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도 궁금하고 한국과 다른 풍경을 보고 싶었다. 30대 때는 바쁜 일상을 잊게 해 주는 쉬는 여행을 하고 싶었고 해변가에 칵테일을 마시며 느긋하게 독서하는 여행이 좋았다. 그러나 40대가 되니 삶의 가치를 찾는 그런 여행을 하고 싶었고 하고 있다. 그러니 변하는 세상 속에 변하는 나 자신이 누군지 모르겠을 때, 내가 잠깐 방향을 잃은 것 같을 때, 어떤 스텝으로 어떤 속도로 가야 할지 막막할 때 나는 짐을 쌀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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