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하며 배우다.
소극장에서 뮤지컬을 봤을 때 일이다.
공연 중에 배우 분이 관객에게 도와줄 어린이 없냐고 물었다. 몇몇 아이들이 손을 번쩍 들며, 서로 먼저 하겠다며 아우성이었다.
“아들, 손들어~너도 해 봐!”
나는 아들의 옆구리를 콕콕 찔렀고, 아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들이 팔짱을 끼며 절대로 손을 들지 않겠다는 자세를 취했다. 귓속말로 레고를 사주겠다고 유혹하자, 아들은 귀를 막았다. 내가 부추길수록 아들의 얼굴은 찌푸려졌다. 끝내는 아들이 절대로 하지 않겠다는 듯, 석고상이 되었다. 내 욕심이 과했다. 아들이 즐기고 있는 뮤지컬을 그만 망칠 것 같았다. 그래, 공연을 보러 왔지, 장기자랑에 온 것은 아니잖아. 공연을 즐기자. 아들아, 미안하다.
아들이 수줍음이 많고 낯선 곳에서는 움츠러드는 편이다. 아들이 좀 더 적극적이며 대범해지길 바라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아들을 부추겼다. 내 생각에는, 딱 한 번만 도전해 보면, 별 일 아니구나 하고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항상 결과는 같았다. 한 번 해 봐! 나는 조르고 아들은 뒷걸음질 쳤다. 나는 닦달하고 아들은 도망쳤다. 나는 그런 아들이 답답하고, 아들은 그런 아빠 때문에 마음이 상했다.
집 근처에 있는 인형극장에서 축제가 있었다.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인형극이 있어서, 아들과 함께 보러 갔다. 인형극 역시 공연의 흥을 돋우고자, 관객의 참여를 유도했다. 배우의 손에 이끌려서 춤을 추는 사람, 노래를 부르는 사람, 잠깐 배우가 되는 사람, 연극의 한 장면에 참여하신 분들 덕분에 하하 호호 즐거웠다. 나는 민망해서 도저히 손을 들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빠는 왜 안 해요?”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들에게 항상 해보라며 권하는 아빠가, 정작 본인이 참여할 수 있는 상황이 되면 뒷짐 지고 앉아 있었다. 굉장히 모순적이었다. 그래, 그렇구나. 나도 망설여지는 일인데, 아들은 오죽했을까. 아빠가 석고상이니, 아들도 석고상이었다. 한 번 해보라고 아들의 등을 떠밀 것이 아니라, 아빠가 적극적이고 대범한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다음에는 꼭 아빠가 해볼게! 애써 대답했다.
덥지도 않고 시원한 어느 날, 아들이 밖에서 놀기에 딱 좋았다.
아들이 넓은 잔디 마당에서 뛰어놀며, 자전거를 타고 싶다고 했다. 간식거리를 챙겨서 트렁크에 자전거를 실었다. 주말에는 사람이 많은 곳이지만, 평일에는 적을 것 같아서 애니메이션 박물관으로 향했다. 그런데 입구에서부터 주차요원이 주차 안내를 하는 게 아닌가? 커피 페스티벌 축제가 진행되고 있었다. 주차를 하고 잔디 공원 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제 잠시 후, 커피 퀴즈 대회가 열릴 예정입니다. 풍성한 상품이 준비되어 있으니, 시민 여러분들께서는 많은 참여 부탁드리겠습니다.”
찬스가 왔다. 아들의 등을 떠미는 아빠가 아니라, 도전하는 아빠의 모습을 보여줄 기회. 평소에 커피를 즐겼기 때문에, 자신감도 넘쳤다. 손을 번쩍 들고 참여했다. 적극적인 아빠의 모습에 아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내도 갑자기 오빠가 이걸 한다고? 어안이 벙벙했다.
생각보다 퀴즈는 어렵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런 퀴즈가 그냥 진행될 리가 없다. 사회자가 행사의 흥을 돋우기 위해서 참여자들을 요리했다. 사회자의 말을 따라서 손을 흔들고 몸을 흔들었다. 음악에 맞춰서 춤도 춰야 했고, 개인기도 부려야 했다. 내 인생에 다시없을 몹쓸 몸짓이었다. 그렇지만, 아빠가 퀴즈를 맞히며, 참여하는 모습 때문에 아들이 신이 나서 방방 뛰었다. 그래. 아들이 좋아하니까 열심해해 보자.
결과는 3등, 상품은 커피 텀블러였다. 아빠가 텀블러 하나 받아온 것뿐인데, 아들이 포켓몬 브이 맥스 카드를 뽑았을 때 보다 더 신났다. ‘우리 아빠, 커피 퀴즈 3등 했어요.' 현수막이라도 걸 태세다. 아들은 잠이 들 때까지, 아빠의 기행에 재잘거렸다.
아들의 등을 떠밀면, 아들과 멀어질 뿐이었다. 내가 아들의 등을 떠밀었으니까.
아들의 등을 떠밀기 전에, 내 등을 떠밀어야 했다. 내 등을 떠밀면, 아들과 가까워졌다.
아들에게 바라는 모습이 있다면, 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