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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이 Jun 06. 2021

황신혜의 똥배를 뒷담화하던 이모들의 행복한 웃음

우아하게 늙어갈 수 없을지라도


집안일을 하면서 때때로 유튜브를 틀어놓고 혼자 하는 무료함을 달랠 때가 있다. 유튜버들의 이런저런 다양한 이야기들은 다 아는 것 같으면서도 내 인생을 한 번씩 들여다보고 점검하게 한다.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 것인가.

살아온 세월이 반 백 년이 가까워 옴에도 여전히 삶을 대하는 자세는 쉽지 않다.

흘러가는 세월만큼 연륜도 쌓이고 지혜도 쌓이고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나잇값이라는 게 있다면 내 나이만큼은 괜찮아진 사람으로 살고 있어야 하는데 여전히 어린 자아가 툭하면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나를 마주할 때마다 당황스럽다.

나이 들수록 우아해지려면, 근사한 여자들의 특징, 교양 있는 여자로 늙어가는 법 등......

나잇값을 하는 좀 더 괜찮은 사람이 되기 위한 강의를 하는  유튜버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공통적으로 그들의 지적은 뒷담화를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뒷담화로 남을 깎아내리는 행위 자체가 실은 본인의 품위를 손상시키고 결국은 자신을 향한 욕이며 심지어는 인생이 망한다고까지 한다.

그래, 맞는 거 같아. 고개를 끄덕이면서 <나도 이제부터  뒷담화를 내 인생에서 없애볼까> 이런 성인 같은 다짐을 해보다가도 이내 난 부처님도 예수님도 아닌 그냥 사람인데 이런 거룩함을 굳이 갖고 살아야 하나, 아니 살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뒷담화는 인류가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진화된 존재라는 것을 증명하는 하나의 방편이라고 들었다.



나에게는 신앙심이 좋아 모이면 예배를 드리는 이모들이 다섯 있다. 그녀들이 중년이 된 어느 날부터 엄마까지 여섯 자매들은 툭하면 돌아가면서 각각의 집에서  무슨 정기적인 계모임이 있는 것처럼 시시때때로 모였다. 사는 곳이 서울부터 충청도까지 제각각 흩어져 있었지만 거의 한 달에 한 번은 종교집회를 하듯 모여서 예배도 드리고 맛있는 음식도 해 먹으며 하루를 신명 나게 보냈다.

마치 한 달 동안 속세에서 뺏겨버린 기를 보충이라도 하듯 그 하루의 모임은 이모들에게 절대적인 시간처럼 보였다.

내가 고등학생 때였나 이모들이 하두 자주 모이니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하여튼 그날은 우리 집에 모여 안방을 차지하고 앉아 한바탕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표현하자면 앉아 있지 않았다. 이모들은 모두 한 몸매 하는 퉁퉁한 분들이라 각자 한 자리씩 차지하고 누워서는 인사를 하러 방문을 열고 들어간 나를 향해 일제히

"이리 와서 너도 누워. 힘든데 서있지 말고." 하며 손을 흔들며 나를 부르더니 내가 자리에 앉기도 전에 하던 이야기를 계속한다.

"어제 황신혜 쇼프로에 나온 거 봤어? 황신혜도 배 나왔더라. 어떻게 걔가 다 배가 나오니? 하하하. 난 황신혜는 배 안 나올 줄 알았는데 말이야. "

"어머나, 진짜야? 황신혜가 배가 나왔어?"

"그렇더라니까. 딱 붙는 드레스를 입었는데 똥배가 나왔더라구. 깔깔깔."

난 그 순간 겉으로 터져 나올 뻔한 웃음을 참느라 힘들어 죽는 줄 알았다. 다른 사람도 아닌 저 뚱띵이 이모 다섯 명이 황신혜 배 나온 걸 흉보고 있다니. 그러면서 좋아 어쩔 줄을 모른다.

어디 가당키나 한가. 천하의 황신혜가 티가 날 듯 말 듯 똥배 나온 걸 늘 배가 임산부 같은 이모들의 입에서 흉 거리로 씹힐 줄이야.

난 그날 알았다.

뒷담화는 중년 여성들이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활력소라는 것을. 내 상태야 어떻든 남은 완벽해야 한다는 게 인간들의 모자란 지론 아니던가. 인격의 빈틈이 숭숭 뚫려버린 인간들의 집합소. 이래서 사람 사는 세상은 재미나다.

큰 이모부터 막내 이모까지의 나이 차이는 무려 스무 살에 가깝다. 하지만 그녀들은 자매 이기전에 인생의 희로애락을 함께 나누는 친구처럼 보인다. 난 어렸을 때부터 이모들 사이에 끼여 그녀들의 수다를 듣는 재미를 알게 되었다.

늘 예배가 빠지지 않는 거룩한 그녀들의 모임이었지만 그녀들은 고해성사처럼 한 달 동안 묵은 이야기들을 서로 나누며 공감도 저런 공감이 없구나 싶게 서로에게 위안을 주었다. 어쩌다 급한 용무가 있어 한 명의 이모가 불참한 날이면 그렇게 친하다가도 없는 자리를 뒷담화로 채웠다. 그 자리에 없는 이모 흉을 보기도 하고 때로는 이모부나 이종사촌들이 안주처럼 입에 오르내리며 그 자리를 풍성하게 했다. 하지만 난 이모들이 한 번도 뒷담화를 옮겨 싸움을 하거나 기분이 언짢아하는 걸 본 적이 없다. 그저 수많은 인간들의 대화 방식에 뒷담화가 활력소가 되듯이 중년에서 노년으로 자연스레 늙어가는 이모들에게 뒷담화는 대화의 일종일 뿐이었다.



열아홉 살 겨울이었다. 박완서의 단편 소설에서 어떤 구절을 읽고 간담이 서늘해졌다. '나이 들어 세 가지 즐거움이라면 마음 맞는 친구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남의 험담을 하는 것이다.' (정확한 문장은 기억나지 않는데, 마침 제목도 기억나지 않아서 인용 부호도 쓰기 못하겠다.) 큰 충격과 더불어 어쩐지 후련한 마음, 그리고 양심의 가책까지 동시에 안겨 주는 내용이었다. 어른이 된다는 건 심술이 느는 것인가, 한동안 의문과 걱정이 뒤섞인 불편한 감정에 시달렸다.
삼십 년쯤 더 살았더니 박 선생님 말씀이 참 옳은 걸 알겠다.
젊을 땐 친구는 있는데 돈이 없어서 맛있는 걸 못 먹고, 늙어서는 비싼 음식 시킬 돈이 있어도 마음 맞는 친구가 남아있지 않다. 그러니 노인이 돼서 돈도 많고 친구도 많아 근사한 식당에서 귀한 거 먹고 마시며 남 욕을 실컷 할 수 있다면 최고로 팔자 좋은 인생이겠다. 그래서 이런 행운을 차지하지 못한 우리가 언제나 꾸준히 할 수 있는 것은 험담밖에 없다. 그다지 잘못한 것 없는 우리들끼리 아늑하고 안전하게 공유하는 작은 악의(말이다)

<실례지만 이 책이 시급합니다, 이수은> 중에서



어린 시절엔 누구 흉을 보는 게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청소년기의 뒷담화는 친구들 사이에서 절교를 하게 하는 요인을 만들기도 했다. 우린 뒷담화를 시작하는 첫말 머리나 끄트머리에서 "이거 누구한테 절대 말하지 마."라는 되지도 않는 다짐을 받아내는 걸로 스스로가 하는 말이 마치 거룩한 비밀이라도 되는 듯 여겼지만 종내엔 여기저기 바람이 소문을 냈는지 여린 청소년기의 소녀들의 가슴을 후볐던 건 사실이다.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의 숫자가 점차 줄어드는 나이가 되어가면서부터 여전히 내 곁을 지키고 있는 친구에게는 부부싸움을 비롯해 내 허물을 드러낼만한 이야기를 해도 이해받을 수 있는 우정으로 굳어졌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내가 살아온 과정을 보아온 친구에게는 내 마음을 탈탈 털어도 흉이 되지 않았다.

이수은이란 작가가 박완서의 단편소설을 인용하며 하고자 했던 말은 '나이 들어 누구 험담을 하며 사는 게 행복이다'에 초점을 맞춘 게 아닌 이렇게 나의 밑바닥에 깔린 인간의 저급한 본능마저도 다 내보일 수 있는 친구들을 가진 노년의 행복에 대해 쓰고자 했던 게 아닌가 싶다.

이런 친구가 나에게는 몇 명이나 있을까? 한국을 떠나온 세월이 하도 길어서 어릴 적 친구들의 숫자는 많이 줄었지만 외국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세월만큼 켜켜이 쌓인 친구들은 감사하게도 여전히 내 영혼의 곁을 머물고 있다.

때때로 내가 남편과 자식 때문에 "내 팔자야!" 하며 신세 한탄을 해도 나를 가엾게 여기며 내 마음이 덜 힘들기를 바라는 친구들, 오늘도 여전히 내 안위를 걱정해주며 잘 살기를 바라 주는 친구들 덕분에 난 노후가 외로울까 하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니 행복한 인생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우아하게 늙어가기 위해서 "다른 이들의 뒷담화를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는 필수 조건이 들어간다면 난 아마도 "우아한"은 빼고 그냥 사람다운 사람으로 나이들어 가는 길을 선택해야 할 것 같다. 마흔이 훌쩍 넘은 지금도 이모들이 황신혜의 똥배를 뒷담화하며 정말 행복해하던 웃음을 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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