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하게 늙어갈 수 없을지라도
열아홉 살 겨울이었다. 박완서의 단편 소설에서 어떤 구절을 읽고 간담이 서늘해졌다. '나이 들어 세 가지 즐거움이라면 마음 맞는 친구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남의 험담을 하는 것이다.' (정확한 문장은 기억나지 않는데, 마침 제목도 기억나지 않아서 인용 부호도 쓰기 못하겠다.) 큰 충격과 더불어 어쩐지 후련한 마음, 그리고 양심의 가책까지 동시에 안겨 주는 내용이었다. 어른이 된다는 건 심술이 느는 것인가, 한동안 의문과 걱정이 뒤섞인 불편한 감정에 시달렸다.
삼십 년쯤 더 살았더니 박 선생님 말씀이 참 옳은 걸 알겠다.
젊을 땐 친구는 있는데 돈이 없어서 맛있는 걸 못 먹고, 늙어서는 비싼 음식 시킬 돈이 있어도 마음 맞는 친구가 남아있지 않다. 그러니 노인이 돼서 돈도 많고 친구도 많아 근사한 식당에서 귀한 거 먹고 마시며 남 욕을 실컷 할 수 있다면 최고로 팔자 좋은 인생이겠다. 그래서 이런 행운을 차지하지 못한 우리가 언제나 꾸준히 할 수 있는 것은 험담밖에 없다. 그다지 잘못한 것 없는 우리들끼리 아늑하고 안전하게 공유하는 작은 악의(말이다)
<실례지만 이 책이 시급합니다, 이수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