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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항해 안내자 Jul 31. 2021

대안학교 교사가 되다

시골 아이들과의 만남

아버지가 사주신 '오토리버스가 되는' 워크맨과 이어폰. 그 신물물의 시대가 끝나가던 즈음  대학을 졸업하고 시골로 이동했습니다. 대안학교 교사가 되려고 마음을 먹었기 때문입니다. 도시는 디지털 시대를 향해 질주할 즈음 이곳의 아이들은 들판을 향해 질주했습니다. 아이들을 만나려면 근방의 산으로 가야 했습니다. 교실보다는 야외에서 찾는것이 빨랐죠.



하루는 교문앞 논두렁아래 몸을 숨기고 있는 아이들을 발견했습니다. 시선은 모두 다른 방향이었는데 뭔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더욱 의아했던 것은 이들이 어깨에 하나씩 둘러맨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그것은...... 옷걸이였습니다. 세탁소에서 옷찾을 때 공짜로 주는, 가는 철사에 하얀 비닐을 씌운 옷걸이! 이것을 하나씩 팔에 끼고 숨을 죽이고 있었습니다. '쟤들이 뭐하는 걸까?' 아무리 봐도 알 수가 없는데, 다들 정말 진지한 표정입니다.


이들이 열중하고 있었던 것은 사냥이었습니다. 옷걸이는 활이었고요. 자신들을 로빈훗이나 리틀 존 또는 칭기스칸이라고 상상했던 것 같았습니다. 아무튼 대여섯명의 어린이들은 현실과 상상을 교묘하게 섞어가며 역할극과 스포츠를 결함한 놀이를 하고 있었고 얼굴은 순진함과 순수함, 몰입의 기쁨으로 빛났습니다.


그 장면에서 저의 어릴 적을 보았습니다. 그때는 가고 싶은 모든 곳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되고 싶은 모든 것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불로 타이머신을 만들었고, 안드로메다에 갔고, 인디언이 되었고, 님프와 놀았습니다. 놀이가 사라지는 도시, 아이들이 없는 놀이터. 지금은 볼 수 없는 광경들. 확신했습니다. 인류가 망하지 않으려면 교육은 이런 환경에서 이렇게 시작되어야 한다고 말이지요.



본격적인 수업에서, 아이들은 스스로 질서를 짜고 조직을 만들었습니다. 힘을 모아서 미션을 수행했습니다. 세상에서는 듣도 보도 못한 주제를 만났죠. <나의 내일의 역사>를 만들어야 했고, <살맛나는 새로운 세상>을 창조해야 했습니다. 놀라운 상상력과 함께 어른들이 감히 흉내내지 못할 팀워크로 과제를 수행해나갔습니다. 사실 교사인 제가 해야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은 섣불리 개입하여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문제해결능력에 있어서 만큼은 아이들이 저를 앞서가곤 했습니다. 왜냐면, 아이들이 사이에 생긴 문제는 그자체가 곧 과제가 되었고 어떤 형태로건 해결하는 훈련을 받았으니까요.  아이들은 성장해갔습니다. 자신에 대한 이해와 세상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습니다. 그 시선은 더할 나위 없이 따스했습니다.




학교도 아프고 힘든 시간을 거치며 세련되어졌습니다. 제일 고통스러운 것은 재정문제였습니다. 학교를 운영하기 위해 별의별 농사를 다 지어봤습니다. 고추, 야콘, 고구마, 옥수수, 사과, 수박, 매실... 그러나, 성공한 것은 없고 거의 다 망했습니다. 옆집 할머니한테 욕만 바가지로 먹었지요. "뭐하노. 그기 농사라 뭐로. 그 칼라만 하지 마라 고마."

 

마지막으로 시도해본다고 했던 것이 닭을 치는 것이었습니다. 첨엔 수익생각은 없었고 우리가 먹으려고 키웠습니다. 그런데, 직접 길러서 받아서 먹어보니 확실히 다르더군요. 닭은 먹은대로 내어주었습니다. 수박을 주면 수박향이 나는 달걀, 게를 주면 게맛이 구수한 달걀, 풀을 주면 풀향이 나는 달걀. 도시에서 살았던 교사들은 처음으로 제대로 된 닭과 달걀을 경험했고 흥분했습니다. 이걸 팝시다! 이걸 팔면 대박을 칠꺼에요.  

그렇게 우리는 달걀 대박을 향해서 돌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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