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올라 내려다보면 내가 사는 도시의 형세가 보이고, 동네의 모양이 보이고 , 자주 다니는 길들 과 건물들과 그리고 우리 집이 어디쯤 있는지 보게 된다. 직선으로 곧은길이라고 생각했던 길이 완만한 곡선으로 굽어져 있는 길이었다는 사실도 보게 되고, 자세히는 아니더라도 이러저러한 길들 과 집들에서 나와 내게 속한 것들이 저런 모양과 형태로 자리를 잡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익숙한 세계가 새롭게 보이고 다양한 것들 속에 하나인 나를 생각하게 된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있음에 대한 연민과 고마움도 밀려온다. 높은 조망이 내게 주는 가치이다. 그럴 때마다 남긴 사진들이 인스타그램에 남아 있는지 산에 올라가서 조망하는 사진이 대부분이라고 누군가가 이야기했다. 이런 마음을 사진 한 장으로 남기고 싶었나 보다.
인생수업은 내게 그런 책이다.
이 책을 쓴 엘리자베스 퀴블로 로스는 호스피스 활동을 통해 죽음의 자리에서 바라본 인생을 이야기한다. 수많은 사람들의 생의 마지막 길을 도우며, 그들이 후회했거나 아쉬워하거나, 감사하거나, 미안해하는 것들이 무엇이었는지 우리에게 들려준다. 그녀는 인생의 뷰 포인트로 죽음의 자리를 발견한 것이다. 그녀가 전하는 이야기는 죽음의 이야기를 넘어선 삶의 이야기이다.
사실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와 읽은 시기는 다르다. 동생의 책장에 꽂혀 있었는데, 결혼을 하고 한참에서야 남편의 서재에 있는 이 책을 펴 들었다. 모든 책이 그러하듯 책을 만날 만한 때 만난 것이다.
그 시절, 사실 나는 세상이 정해놓은 성공에 여전히 목말라 있었다. 스무 살에 덜컥 방송국 공채 탤런트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수많은 인생 질문들이 쏟아졌다. 생각이 많고 걷기를 시작한 것도 그 무렵부터였다.
나름의 노력과 열심에 진이 빠져서 곁에 누가 있어도 늘 외로웠고, 일하고 있어도 갈급했고 쉬고 있음에도 분주했다. 열심이 부족하다고 자신을 책망하며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있었다. 삶의 균형이나 삶 뒤에 있는 더 큰 그림을 잊어버리고 살았던 것이다.
책을 읽고 나면, 인간이 예측할 수 없는 수많은 죽음 앞에 코의 호흡과 인생의 연한이 신께 있음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고 나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태양과 그 머무는 길이로 변화하는 자연과 그 마디마디 옷을 바꿔 입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이 기적처럼 베풀어진 것들임을 받아들이게 된다. 사실 우리들이 노력해서 얻은 것보다 노력하지 않았음에도 주어진 것들이 훨씬 많지 않은가? 그것을 인지하게 되고 받아들이자 주어진 상황들과 일어나는 사건들 그리고 주변의 다양한 사람들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 밀려들었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듯 인생이 조망되니 주변이 새롭게 보이고 자기 연민과 피해의식의 비늘이 눈에서 벗겨진 것이다. 심지어 아픈 과거와 상처도 말이다. 그러자 책의 제목이 인생을 가르쳐주는 수업이 아니라 인생이 하나의 수업과 같다고 표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을 감사의 눈으로 보게 된 것이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왜 일찍 이 책을 만나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내가 만약 일찍 알았다면 나는 그녀의 진실한 눈동자와 생생한 음성을 직접 뵙고 담았을 것이다. 책의 겉표지가 해질 만큼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북 튜버로 책을 소개할 때 이 책을 가장 먼저 나누었다.
책을 여러 권 사서 주변 소중한 사람들에게 선물을 하고 이제 20대를 막 시작한 이에게 추천도 하였다. 그러나 그들도 나와 마찬가지 일 것이다. 만날 만한 때, 읽을 만한 때가 되면 만나게 될 것이다. 조급해하거나 서두를 필요가 없다.
엘리자베스 퀴블로 로스 와 마더 테레사
계절이 바뀔 때마다 다시 펴 든 책은 그 사이 달라진 나를 발견하게 한다. 분노와 아픔, 상처가 어느새 메워져 있었고, 그런 감정에서 자유로워져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인생에서 상실, 아픔, 분노, 증오, 눈물이 없을 수 없고 그것들이 나보다 더 큰 존재의 섭리 속에서 진행되는 인생수업이라는 관점을 가지게 된 것이다.
나를 포함한 인생들을 조망하니 가빠지는 호흡이 편안해지고 그토록 어렵던 인내가 한결 쉬워진다. 내게 주어진 것들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달라져있다. 긍정도 부정도 그리고 그 변곡점도 모두 끝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