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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어리랏다 Apr 06. 2023

가난과 아픔의 조화로운 순환

명확한 인과가  있다는 것의 안도감

1. 

"가난은 죄인가?"


내가 어렸을 때에도, 성인이 된 지금에도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화려한 논쟁거리다. 우리나라의 경제상황이 좋던, 좋아지고 있던, 정체가 오든지 말든지 이 질문은 사회 곳곳에, 그리고 내 마음 한편에 굳건히 자리 잡고 있다. 남들은 모르겠다. 일단 내 마음속에는 이 질문이 둥둥 떠다닌다. 이리저리 둥실둥실 떠다니고 있기에 눈치채지 못하다가 문득 고개 들어 시야에 들어오면 그때부터 괜히 고민하는 것이다.


2. 

가난은 죄인가? 서른을 넘어 마흔을 향해 열심히 달려가고 있는 나의 대답은 "그래 보인다"이다. 어렸을 때는 죄가 아니라 생각했다. 내가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닌데, 태어나보니 그런 집인 것을 어찌하리. 지금 와서 유년기의 나를 다시 떠올려 보아도, 그때는 단호하게 '아닙니다!'라고 외칠 듯 싶다. 그리고 남들은 이제 열매를 슬슬 맺어야 한다고 말하는 시기에 떠 밀려온, 널브러져 있는 현재의 나는 이 모든 것이 내 잘못만 같다. 유튜브를 켜도, 신문을 봐도, 서점을 슬슬 둘러보아도 내 눈에는 내 나이 또래, 또는 훨씬 어린 사람들의 성공비급서가 즐비하니 말이다. 그것들을 보고 있노라면, 나라는 사람은 떠먹여 줘도 못 먹는 덜 떨어진 인간인가 싶다. 그래도 나름대로 노력했는데.


3.

컨디션이 너무 좋지 않아서 병원에 갔다. 담낭 쪽에 뭔가 있단다. 대학병원이나 큰 병원을 가보아야 할 것 같다 하기에, 열심히 좋은 병원을 찾아서 전화를 걸었다. 12월 17일이 예약일로 잡혔다. 참고로 예약한 일자는 3월 6일이다. 일단 좋은 병원은 예약해두었고 일단 가까운 대학병원에 여차저차 빈 시간을 비집고 들어가 진료를 받았다. 담낭 쪽에 뭔가 있긴 있어서 조금 더 보자고 하는데, 일단 문제는 신장 쪽에 혹과 돌이 있어서 이것부터 보자고 했다. 진풍경. 가관이다.


4. 

가난한 곳에 오래 있다 보면, 그 안에서 경험을 통해 얻는 명확한 인과관계들이 몇 개 있다. 그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가난과 아픔의 끝없는 순환고리다. 가난하면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 되기 때문에 남들이 기피하거나 단순반복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하게 된다. 미래를 준비하던, 훗날을 기약하던 어쨌거나 오늘내일 입구멍에 무어라도 넣어야 하니 당장 시켜주는 일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일들을 오랫동안 하다 보면 몸이 곯는다. 아직 오지 않은 광명한 미래를 준비하며 일한다면 더더욱 곯는 것이다. 몸이라는 것도 참 소중한 자원인지라 한정적이고 희소가치가 있다. 쓰면 쓸수록 정직하게 닳는다. 순환의 고리작용이 돌아가기 전에 약간의 경제적 사다리를 올라갈 수 있다면 그나마 성공. 아니면 이제 열심히 산 대가를 조금씩 지불하는 거지 뭐.


5. 

몸이 아파서 가난하다. 가난해서 몸이 아프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몸 건강히, 정확하게 그게 뭔지는 모르지만 조금 더 행복해지려고 가난 속에서 열심히 준비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중에 바라던 빛을 발하기 전에 몸이 먼저 닳는 경우 또한 많다. 가난할수록 더 열심히 살게 되고, 요령 없이 열심히 살다 보니, 그 노력으로 인정받은 대가는 그 단순한 일마저도 잘할 수 없는 쇄약함과 빌리면 이상하게 빌릴 수 있는 치료비 부채가 차곡차곡 쌓인다. 아프면 가난해지고, 가난해지니 더 아프고, 그러니 더 가난해지고. 쳇바퀴 돌 듯이 핑그르르 도는 세상이다.


6. 

가난과 아픔, 아픔과 가난. 이 두 가지는 인과가 명확한 것 같다. 물론 예외 케이스는 있겠으나, 내가 듣고, 경험한 것들은 모두 이 둘은 강한 상호관계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땅으로 하강하는 토네이도 같은 순환. 한 번 들어가면 그 궤도에서 쉽게 나오기 어려운 순환관계. 나는 지금 그 흐름에 나도 모르게 타고 있는 것이 아닐까. 바람 불어 시원한 줄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땅을 향해 떨어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나의 번영을 누구보다 믿고 확신하는 나지만, 오늘은 날씨 때문인지 평소보다 더 궁상맞다. 초라하고 꾀죄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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