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30대 궁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살어리랏다 Jan 10. 2024

문득 거울 속에 불안함이 있다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자아성찰

2024.01.10


1. 

빈 마음에 불안함이 조금씩 차오른다.


12월 중순 가게 정리가 끝나고, 12월 말부로 잠깐 아르바이트처럼 도와주던 일을 끝냈다. 저번 주 가게 정리 및 양도를 마치고, 완전히 쉬는 이번 주. 3일이 지났다. 나름 최선을 다해 살아왔고 앞으로 살 날이 많이 남았다고 자부하기에 엄청난 좌절감이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불안함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나 보다.


내가 한 선택들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후회해 봤자 변하는 것은 일절 없기 때문이다. 나름의 고민 끝에 선택한 과거의 선택들과 그 선택들을 한 나를 존중하고 믿는다. "'하지 말았어야 할 선택'이라는 것이 있었을까?"라는 마음도 길 걷다 문득 들기도 하나, 끊임없이 나에게로 왔다 멀어지는 시간을 맞이하는 입장에선 별로 의미 있는 질문은 아니다. 


물이 많은 곳에서 없는 곳으로 떨어지듯, 살짝 금이 간 진공관에 공기가 들어가듯 내 마음속에도 불안함이 슬금슬금 채워지고 있다. 오늘 느끼는 정도는 발등 정도까지 차올라 걸을 때 그 존재를 알 수 있는 정도. 가끔은 물 표면 장력과 무거워진 신발 때문에 걸리적거린다는 느낌이 들 정도. 딱 그 정도 넘실대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에 대한 불안함인가?


미래에 대한 불안함인가? 그렇다면 어떤 미래에 대한 불안함인가?

경제생활을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안함인가?

사회적 지위가 이보다 더 낮아질 수 있다는 것에서 오는 불안함인가?

막상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그리 대단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 대한 막연한 불안함인가?

조금 더 구체적으로, 혼자 고립될 수도 있다는 불안함인가?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을 찾아 혼자가 되었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결국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될까봐 불안일까?


바닥이 보이지 않는 바다가 더 심한 공포와 좌절감을 주듯이 나의 불안함은 정확한 실체가 없기에 나를 더 힘들게 한다. 정확히 어떤 것에 대한 불안함인지 안다면 해결을 위해 마음을 다 잡고 계획을 세울 수 있으련만, 지금 가진 불안함은 막연하다.



2. 

나의 불안함은 무기력과 함께 왔다.


불안한 감정으로 인해 행동기저가 강박적으로 바뀔 수도 있다. 두 번 확인하던 것을 열 번 넘게 확인하고, 의미 없이 반복적인 행동을 한다. 그 안에는 자기 자신을 못 믿는 것도 또 하나의 이유로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반대로 불안함은 행동에 대한 의욕을 없애 무기력과 함께 올 수도 있다. 이 후자가 현재 내 상태다.


고군분투하며 살았던 삶의 과정을 다시 한번, 전보다 밀도 있게 해야 한다는 사실이 버거운 것을 넘어 살아감의 의욕을 멀끔하게 지운다. 과정을 모르고 새로운 것을 도전하는 상황이라면 돌아온 길보다는 당장 앞을 개척해야 하기에 정신없이 달려갈 수 있지만 이미 걸어왔던 길을 다시 예상하며 가는 것은 지루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웃으며 지나온 길이 아닌 눈물과 고통이 동반된 길이라면 시작하는 것 자체가 엄청난 에너지 소모가 될 수 있음을 여실히 깨닫고 있다. 남들은 20대 청춘으로 돌아가고 싶다 하지만 나는 정말 돌아가고 싶지 않다. 너무 힘들었으니까. 마음이 찢겨도 웃으며 살아가고자 노력한 가여운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3.

이런 내 모습이 참 낯설다.


당장 어제 쓴 글에서는 열심히 살아가야겠다고 일필휘지로 써 내려갔던 내가 하루도 안되어 다시 불안함 속에서 빌빌대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내가 정한 해야 할 일들을 하나씩 해결해 갔던 내가 이렇게 불안해하며, 다가오지도 않는 미래의 실패를 지레 겁먹고 있다는 것이 참 낯설고 새롭다. 나란 사람은 생각보다 약했고, 결국은 어쩔 수 없는 사람이었나 보다.


정말 시간 단위, 분 단위로 마음속 내면에서 두 가지 감정이 휘몰아치고 있는데, 이런 식이다.

- 할 것도 없는데 운동이라도 가서 땀을 빼야 한다 <> 가기 싫다

- 이제 앞으로 어떻게 내 한 몸 먹여 살릴지 빠르고 밀도 있게 고민하고 실행해야 한다 <> 하기 싫다

- 지난 실패를 복기하고 다시 똑같은 실패를 하지 말아야 한다. 의지를 갖고 성공을 믿어야 한다 <> 두렵다

- 멈추지 않는다면 실패는 없고 과정일 뿐이다. 고통 속에서 끝없이 밀고 나가야 한다 <> 지친다, 쉬고 싶다.

- 방 정리를 해야 한다. 주변을 정리하고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 누워 있고 싶다.

- 지나가는 시간을 잡아야 한다 <> 이대로 시간을 흘려보내고 싶다

- 사람들과 만나며 이야기하고 에너지를 주고받아야 한다 <> 그 누구와도 접촉하고 싶지 않다.

...


뭐 이런 생각과 다짐, 감정과 태도, 행동들이 뒤죽박죽 내 일상들을 채우고 있는데 이런 카오스를 잠재우기 위해 내 몸이 무의식적으로 선택한 행동은 바로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보기다. 순간의 쾌락이 잠시나마 답 없는 고민을 잊게 해 주니까. 이쁘게 염료 된 식탁보가 다 썩은 음식물들을 일시적으로 덮은 것임을 알고 있으나, 알면서도 그대로 둔다. 그러다 갑자기 뉴런 신경이 터지듯 가끔 각성의 순간이 오면 SNS 어플들을 핸드폰에서 삭제하기도 한다. 설치하고 지우고 다시 보고 삭제하고. 일련의 국면들이 재빠르게 전환된다. 현재는 어플을 지운 상태. 그래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왜? 그럼에도 나는 아주 잘! 살고 싶으니까.



4.

아무것도 없는 상태는 곧 그 어떤 것도 할 수 있는 상태임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지금 너무나 힘들어도 어떻게든 정신을 부여잡고 있는 것이다. 한 번뿐인 삶. 인생의 굴레가 생각보다 너무 역동적이라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데 어찌 보면 그래서 더 재밌다. 나의 선택들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지 전혀 모르기 때문에.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계획 없이 쉬어본 적이 없던 내가 인생의 나침반이 고장 나 우왕좌왕하고 있는 모습이... 참 불쌍하다. 나약한 모습이 보기 싫고 회피하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는다. 현재 불안함 속에 있는 내가 아직 과거 속에서 못 헤어 나와 스스로 고통받고 있지는 않는 건지, 몸집은 커졌는데 아직 너무나 작은 방 안에 갇혀 답답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 건지 걱정된다. 


지금까지 지나온 여러 고통의 터널과 같이 언젠가 그 길 끝에는 빛이 있을 것이고, 나중에 다시 뒤돌아보면 재밌을지도 모르겠으나 현재는 그 시선이 철저히 나에게로 고정되어 있다. 안쓰럽다.



5.

그럼에도 살아야지.


그래도 나아가야 된다, 이겨낸다.

밥은 챙겨 먹고, 규칙적인 습관은 이 악물고 지켜낸다.

언제 올지 모르는 기회의 순간을 잡기 위해 실력을 키워야 한다.


몸은 무기력함에 쓰러져 있을지라도, 눈은 총기를 머금고 다가오는 시간을 정면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이 또한 내가 걸어가고 있는 나만의 인생길이니까.. 누구도 대신 살아줄 수도 없고 감히 온전히 공감한다 말할 수도 없는 나만의 길이니까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비둘기가 더 즐겁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