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한장

포토에세이. 우주의 도움

by 로파이


참 유별난 성격이다.


정작 내가 사는 이 집구석은 정리되지 않은 많은 부분들이 많다.

먼지털이 그거 한번 손에 드는 게 뭐가 어려운지 퇴적층처럼 쌓여가는 먼지 친구

깨작깨작 읽고 탑처럼 쌓아놓은 책더미들과 시간 될 때 정리해야지 생각만 몇 주째하고 있는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옷가지들 몇 주째 읽지 못하고 있는 재활용을 앞둔 신문


이 모든 것들을 정리하려면 꼬박 하루가 필요할 정도이다.


하지만 이상하게 매장에서 일만 하기 시작하면 눈에 보이는 곳이 든 보이지 않는 곳이든 무조건 닦아야만 직성이 풀린다. 온통 다 달콤하고 끈적거리는 것 투성이인 매장이지만 손에 묻어 끈적함을 느낄 때마다 꼭 손을 씻어내고 그 끈적거림의 이유를 씻고 닦아야만 속이 후련하다.


내 냉장고는 정리되지 않아도 매장 냉장고가 정리되지 않은 꼴을 못 봐 손에 자주 닿는 것 자주 닿지 않는 것의 위치를 구분하고 매번 닦아야 개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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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팀장님 집은 엄청 깔끔하시죠?

"아뇨?? 전혀요. 그렇게 보여요?


- 이렇게 쓸고 닦으시는데 집이 안 깔끔하시다고요?

"예. 저는 집에 가면 아무것도 안 해요.."


- 거짓말하지 마세요~

"수건 접어두는 거도 귀찮아서 딱 일주일치만 쓰고 세탁 후 말린 상태로 일주일 쓰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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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얼음이 생산되는 제빙기라는 친구가 유독 하루 종일 거슬리는 날이었다.

"저거 오늘 기필코 내가 마감 때 다 닦으리.."


퇴근 전 매장 청소가 모두 끝나고 집에 가려는 순간 잠시 잊고 있던 제빙기가 보였다.

"그래. 저거 닦아버리고 가자"


어휴 더러워 어휴 더러워를 연신 구시렁거리며 손이 보이지 않는 속도로 빠르게 닦아내기 시작했다.

순간 내 엄지손톱 밑으로 무언가 빠르게 스쳐가는 이질적 느낌 이런 고통은 정말 살면서 몇 번 겪지 못했던 고통이다.


어딜 다쳤는지도 아직 잘 모르겠다.
그저 엄지손가락을 부여잡고 발을 동동 거리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시다가 일본 순사에게 붙잡혀 생 손톱을 뽑히셨을 독립운동가 분들의

1/10 정도의 고통일까..?


나는 과거 이런 고통을 당했더라면 모두 다 불고도 남았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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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망했다.. 뭐지? 어딜 다친 거지?"

엄지손톱 사이로 뭔가 빠르게 지나갔는데 실은 아직도 어디를 어떻게 다쳤는지 명확하지 않은 상태다.


때마침 마무리하지 못했던 재고 조사가 생각이나 왼손에는 종이 오른손에는 펜을 쥐려 했지만 결국 무리라는 생각에 핸드폰을 켜서 재고 상황을 영상으로 찍어 육성으로 녹음하는 방법을 사용해 조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


"그래 그렇게 불만을 토하며 할 때부터 알아봤다.. 에라이.. 누구를 탓하겠냐 입도 마음도 좀 곱게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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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13년 만에 내 생 마지막으로 대회를 한번 다시 나가볼까 하는 마음에 지원했던 대회에 덜컥 서류가 통과되어 시연을 며칠 남기지 않은 상태였다.


내 직업에 있어 엄지손톱의 부상은 꽤나 큰 대미지라고 볼 수 있는데


예전처럼 대회를 준비할 시간도 도움을 줄 팀도 없었으며 도무지 시연의 시작점과 구성을 찾지 못했던 상황이라 삐그덕 대며 늙어버린 몸뚱이와 돌지 못하는 두뇌로는 이제 그만하는 게 맞을까? 아니야.. 그래도 준비되지 않았어도 시연은 해보는 게 좋을까? 심리적 고민이 많았던 찰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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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 봐라 그거 네가 12년도 대회 때 그렇게 얘기했잖아"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그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고"

"너 그렇게.. 고민하고 용기 내지 못하더니만.."

"그렇게 간절했어? 그 내적 소망이 결국 몸을 다치게 해 한턴을 쉬게 했나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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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승 무대에서 여러분을 만나 뵙게 되어 진심으로 영광입니다.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그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고 합니다.

제가 준비한 짧은 시연이 여러분들과 또 저에게 의미 있는 추억이 되기를 제가 준비한 이 커피가 우리들에게

오랫동안 기억 되기를 소망합니다.


2012년 대회 멘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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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을 준비해 보겠습니다..

물론 다시 서류를 통과하게 된다면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