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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푸름 Nov 20. 2023

결혼을 준비하려고 합니다

늦지 않았을까 고민하면서 준비하는 '결혼'에 대한 생각

30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여자친구도 생겼다.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여자친구와 만난 지 3년이 넘어간다. 3번의 사계절을 보냈다. 누구는 여자(혹은 남자)는 사계절을 다 겪어봐야 그 사람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있다고 만남에 대한 신중함을 이야기했고 누구는 최대한 많은 사람을 만나서 이성에 대한 경험을 많이 해보고 내 미래를 함께할 사람을 고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여자친구와 만나기 전 나는 이성과의 만남은 나에게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성격도 적극적이지 않고 외모도 잘난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결정적인 건 자존감이 굉장히 낮아서 내가 누군가에게 사랑받을 만한 사람인가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 일이 있을까?' 그것이야말로 주변에서는 존재의 흔적은 보이지만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신화 속의 용 같은 무엇인가였다.


그래서 지금의 여자친구를 만난 건 깨지지 않을 것 같던 부정적인 생각의 틀 속에서 벗어난 기적 같은 일이다. 몇 개월간 고심 끝에 여자친구에게 내가 먼저 만나보자고 이야기했고 (사실은 만나보자라는 직접적인 말이 아니라 '잘해보자'라고 에둘러서 말한 것이긴 하지만) 다행히 거절당하지 않아서 극적인 만남이 성사되었다. 그런 일들을 지나 현재에 이르렀다. 나는 여자친구를 정말로 사랑하니까 여자친구를 절대 울리지 않고 나 또한 울 일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사람일이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었다. 노력했지만 어쨌든 나는 부족한 부분이 있었고 그런 부분에서 서로 상처를 받거나 오해를 해서 분위기가 싸늘해지고 입을 다물게 되는 경우가 있었다. 우리는 답답한 감정의 표출을 화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꾹꾹 쌓여있던 감정의 물통이 넘쳐흘러 뚝뚝 흐르는 눈물로 표현했다. 그럴 때마다 물통을 시원하게 뒤엎어버리고 다음엔 같은 일을 겪지 않게 할 거라 다짐했다.


감정의 변화가 제법 있었던 우리 관계처럼 주변의 상황도 많이 바뀌어 갔다. 우리보다 나이가 있는 형, 누나들은 대부분 결혼을 했고 우리 나이 또래들에게서 오는 청첩장 발송 알림이 점점 많아졌다. 직장 경력이 쌓여가면서 인맥이 많아지는 직종에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주변에 남아있는 지인들은 소수였다. 그 지인들이 결혼 소식을 전하기 시작하니 결혼한 사람들이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보다 점점 많아지기 시작하고 3년 넘게 만난 우리도 얼른 준비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결혼준비를 위해 제일 중요하게 생각했던 직장이 아직 불안정한 상태여서 온전하게 이직을 하고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조금 더 있다가, 빨리 준비해서 이직하고'라는 시간의 조건을 붙이면서 결혼에 대한 생각을 조금씩 미뤘었다. 


올해 10월 넘어서 여자친구가 고민하다가 어렵게 입을 떼면서 나에게 이야기를 했다. 내가 결혼 이야기를 주도해서 서로의 생각을 나눴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결혼에 대해 아무런 말이 없는 나에게서 이 사람이 본인과 계속 함께할 생각이 있는 건지 확실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결혼이라는 것이 단기간에 준비되는 것이 아니니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조율해가야 하는데 그런 이야기를 할 낌새가 안보이니 답답했을 것이다. 여자친구는 내가 이직 준비에 집중해야 하니 본인이 주도해야 하나라는 생각까지 했다고 했다. 이런 인생의 큰 문제를 누구 한 명이 다 맡아서 하는 건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오래 만났으니까 말하지 않아도 내 생각을 느낌으로 알 거라는 섣부른 생각을 하지 않기로 다짐했는데 여자친구가 내 상황을 배려하느라 내 생각을 감히 묻지 못하고 혼자 고민에 빠지게 한 것 같아 너무 미안해졌다.


못난 사람이라는 자책을 빨리 벗어던지고 내가 앞으로 해야 할 것에 대한 방향을 고민했다. 

결혼식 준비? 집 마련? 양가 가족들 간의 관계 유지방법? 결혼 예산 마련? 

별별 생각이 떠올랐지만 근본적인 건 '내가 생각하는 결혼이란?'이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내리는 것이었다.


닮은 사람들끼리 만났다는 말을 주변에서 많이 들었다. 하지만 깊게 보면 우리는 다른 점도 많았다. 생활 방식이라던지 가지고 있는 에너지, 현실적인지 이상적인지 등등. 서로의 다른 점이 '결혼,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모이면 해결되는 그런 쉬운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여러 방송매체나 SNS를 통해서 보는 부부의 모습들 중에서는 마라맛 같이 맵고 자극적인 부분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아서 현실적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남들이 보기엔 사소한 이유로 틀어지는 사람들도 분명 주변에서 볼 수 있었다.


퍼즐을 처음 시작하는 기분은 막막하지만 채워갈 수록 점점 쉬워진다. 정해진 답이 있기 때문이다.


들어갈 모양이 비슷해 보여서 끼웠더니 미묘하게 맞지 않는 수천 개의 퍼즐조각이 들어갈 장소는 각각 단 한 곳이다. 결혼도 퍼즐처럼 우리의 관계가 모든 면에서 완벽하게 서로 들어맞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도 한 때는 했었지만 생각해보면 퍼즐은 변하지 않으니 답이 정해져 있다. 사람은 내가 지금 싫은 것이 좋아질 수도 있고 좋은 것이 싫어질 수 있는 변화무쌍한 존재다. 오늘 맞았던 곳이 내일 안 들어갈 수도 있다. 그래서 사랑이라는 울타리 안에 나의 어떠한 변화를 포용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 그리고 상대방의 변화 또한 내가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결혼의 시작이 아닐까 생각했다. 결혼에서 '양보, 배려, 존중'은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 아닌 평생을 함께할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필수적으로 보인다.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는 것 같지만 전혀 아니다. 이건 내가 결혼이라는 단어를 생각할 때 항상 중요하게 생각하기로 다짐한 삶의 태도다.


사실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결혼에 대해서 정의를 내리려니 머리가 아프다. 겪어보지 않았는데 어찌 '결혼은 OO이다!'라고 외칠 수 있을까. 무겁기만 한 정의보다 어떠한 사람과 미래를 함께하고 싶은지에 대한 가치관을 이야기 하는 것이 편할 것 같다. 그냥 '내가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어떤 일이 있어도 손 잡고 평생 함께 하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이면 숨도 쉬지 않고 '네!'라고 할 수 있다. 어려운 일이 있어도 이 사람과 함께라면 어느 때 우리가 주고받았던 편지 내용처럼 '웃으면서 같은 곳을 바라보고 걸어 나갈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여자친구만 생각하면 힘이 나고 행복해지는 건 사실이다. 단순한 감정의 지배가 아닌 저 먼 미래까지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은 확신. 나는 이것으로 결혼을 준비해보려고 한다. 내가 그리고 있는 미래라는 미완성 풍경화 속에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여자친구이면서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을 그려 넣으면서 말이다. 아직 현실적이지 못하고 이상적인 모습만 상상하게 되지만 어쩌겠는가. 그 현실을 아직 살아보지 않았으니 말이다. 중요한 건 그 현실에 대처하는 나의 마음자세임을 이젠 잘 안다. 힘든 현실이 와도 내가 흔들리지 않고 함께하면 되는 것 아닐까. 나는 그럴 자신이 있다. 결혼 준비도 그렇게 해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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