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푸름 Nov 27. 2023

부모님은 그저 내가 다시 오길 기다렸던 것이다

결혼에 대한 현실을 깨달으려다 부모님의 마음을 다시 깨닫다

금요일 퇴근 후 서울 가는 버스표를 예약했다. 금요일이라서 막힐 걸 예상하긴 했지만 그날따라 더 막힌 덕분에 예상 도착시간보다 20분은 더 걸렸다.

하필이면 이럴 때 답답함을 느끼는 일이 생기다니, 어쩔 수 없이 의자에 가만히 앉아서 부모님께 이야기드릴 주제를 곱씹었다. 곱씹을수록 혀에 가시가 돋치는 것 같았고 입안도 씁쓸해지는 것 같았다.



지난번 여자친구와 결혼준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후 신혼집에 대한 계획과 그로 인한 재정적인 문제의 해결에 대해서 더 발전적인 이야기를 하려면 부모님과도 이런 부분을 공유해서 이야기 나눠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세부적인 사항을 다 논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우리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인생의 큰 행사를 계획하는지 정도는 알려드려야 부모님들도 준비하실 것이 있으면 발맞춰갈 수 있지 않을까하는게 내 생각이었다. 사실 부모님께 나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게 마냥 편하지만은 않았다. 나와 부모님은 이미 진로 문제로 서로의 생각이 달라 많이 부딪히면서 관계 회복에 고난을 겪었다.


중학교 때부터 의사가 꿈이었던 나는 수능을 죽 쑤고 의학전문대학원을 목표로 생명과학과에 진학했다. 대학교 초반에는 크게 흔들림이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연구를 계속 할 수 있는 대학원 쪽으로 눈길이 가기 시작했다. 의사에 대한 기대감이 크셨던 부모님은 내가 대학원을 생각하는 것이 힘든 길을 가기 싫어서 회피하는 것이라며 마음을 다잡길 원하셨고 내 마음은 청개구리처럼 의사에 대한 목표에서 멀어져 갔다. 그때부터 집에 올라올 때마다 개인적으로 지옥 같은 시간이 시작되었다. 편히 쉬려고 온 집인데 대화 주제가 잘못해서 나의 진로로 돌려지게 되면 입장차이만큼이나 큰 고함이 발생했다. 그리고 그런 입장차이만큼이나 높은 벽이 내 마음에 둘러지게 되었다. 나와 부모님 사이에는 건너기 힘든 큰 폭의 강이 생겨 금방이라도 넘칠 듯이 넘실거렸다. 집에 가는 것도 명절연휴가 아니면 가기 꺼려했다.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주는 걸까

시간이 약이었는지 직장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부모님의 화도 점점 사그라들었다. 아니 사그라들었다기보단 져주셨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그때부터 조금씩 마음의 벽이 허물어졌던 것 같다. 대화에 점점 껄끄러움이 없어지고 예상치 못한 농담도 오고 가는 여유가 생겼다. 하지만 나의 속 이야기를 꺼내는 건 아직 두려웠다. 잘못 말해서 예전 같은 깊은 감정의 골이 생길까 봐 조심스러웠다. 결혼에 대한 주제를 가지고 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씁쓸했던 건 그 이유 때문이었다.


밤늦게 도착한 집에는 부모님 두 분 다 주무시지 않고 기다리고 계셨다. 오느라 수고했다면서 펄펄 김이 나는 육개장 한 그릇을 내놓으시며 너무 늦었으니까 밥은 먹지 말고 건더기 많은 국만 먹으라고 하셨다. 후딱 먹고 이야기를 꺼낼까 생각했다가 그러면 집에 온 목적이 너무 내 생각을 전달하러 온 것만 같아서 다음날 하기로 했다. 부쩍 추워진 날씨로 튼 입술 때문에 매콤한 육개장을 넘기는 게 힘들다고 괜히 호들갑을 떨면서 말이다.



다음날 점심이 되어서야 이야기를 꺼낼 수 있었다. 결혼 준비를 위한 자금 마련방법으로 내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들과 부모님의 경제적 상황 등을 나누는 동안 아직은 쉽지 않은 속마음을 억지로 꺼내놓았다. 인생의 큰 과제였던 진로 이후 또 다른 과제인 결혼으로 내 생각을 꺼내놓는 것이 너무나 오랜만이었다. 내 생각이 마냥 세상 물정 모르는 철없는 아이처럼 보이진 아닐는지 조금은 눈치를 보면서 말이다. 내 이야기를 다 듣고 어머니께서 나에게 이 질문 하나만 하겠다고 하셨다.


'OO아, 너는 여자친구랑 진심으로 결혼하고 싶니?'


예상 못한 질문은 아니었지만 어머니께서 꺼내놓으신 '진심'이라는 단어는 생각보다 더 무겁고 크게 느껴졌다. 이미 결혼하신 삶을 30년 넘게 살아오시면서 온갖 일들을 겪으신 어머니에게 내가 꺼내는 어떠한 대답이든 몸만 큰 어린아이가 하는 답 같지 않을까. 그래도 답은 해야 했다. 단순한 사랑만으로 결정한 건 아니라고 하면서 무거워진 입을 떼기 시작했다.


세상에서 어떤 사람을 만나면 나 자신이 성장할 수도 있고 퇴보할 수도 있는데 지금의 여자친구는 내가 성장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만약 만난 지 얼마 안 되었으면 초반에 잘 보이기 위해서 한 일들이 잠깐의 성장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지난 3년 동안의 만남은 나 자신이 멋진 사람으로서 자신감이 생기도록 인정하는 계기를 만들어준 것이 여자친구임을 확신하게 된 기간이었다,

부모님은 어떻게 느끼실지 모르겠지만 그동안 많이 바뀌었다는 것을 나 자신 스스로 깨닫고 있어서 앞으로의 삶에서도 어떤 상황에서든지 발전할 수 있다는 자신이 생긴다,

만나는 3년 동안 있었던 의견충돌에서도 회피하지 않고 대화로 해결하려고 노력했고 그런 경험이 함께할 수 있다는 확신을 만들었다...


두서없는 이야기를 내놓는데 어머니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도 OO이 변한 거 많이 느껴. 아버지는 집에 올 때마다 네가 점점 밝아진다고 신기해하시더라. 이런 대화를 하는 것도 변한 거 아니겠니?'

대화의 결론은 결혼준비를 위해서 내가 할 일이 지금의 상태에서 크게 바뀐 건 없다는 것이지만 원주로 돌아오는 마음 한편에 이상한 울렁임이 계속 있었다.



저녁 감성이 나의 울렁임을 자극했을수도 있다.


결혼식에 다녀온 여자친구가 터미널 근처로 마중 나왔다. 갑자기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하면서도 피곤함 때문에 고민 중이던 여자친구는 원주 내 외곽에 있는 카페로 결정하고 나를 데리고 직접 운전했다. 주말이었지만 사람이 우리밖에 없었다. 장작이 태워지고 있는 황토가마 앞에 자리를 잡은 우리는 내가 서울에 다녀와서 부모님과 했던 이야기를 나눴다. 처음에는 별 감정이 없었는데 마지막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을 꺼내는 순간 마음 한편에 있던 울렁임이 눈물로 쏟아져 나왔다.


그제야 울렁임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부모님이 내가 변한 모습에 기뻐해주시는 것에 대한 뿌듯함, 이제서야 부모님과 속마음을 이야기하는 게 두려운 일이 아니라는 안도감, 그동안 부모님과의 거리를 둔 것이 내 의지였다는 것의 속상함 등. 기쁘고 슬픈 감정이 뒤엉켜서 그런 울렁임이 있었던 것이라. 여자친구 앞인데도 눈물은 계속 흘렀다. 여자친구는 내 마음을 어떻게 읽고 이런 시간을 준비한 걸까. 의도한 건 아니였지만 내 마음을 돌아볼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감사했다. 결혼 준비에 대한 현실을 깨닫고 올 줄 알았는데 부모님의 진심에 대하서 다시 한번 더 깨닫고 왔다.

매거진의 이전글 결혼을 준비하려고 합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