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달간 퇴근하고 틈틈이 유튜브 강의를 보면서 공부를 했다. 이과인 나에게 경제 분야 자격증 공부는 굉장히 생소했다. 단어부터 회계 원리, 회계 실습 프로그램 다루는 것까지 모든 게 어색했다. 마치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는 듯한 느낌이었다. 확실하게 정립되지 않은 개념 때문에 '이렇게 푸는 게 맞나? 이건 왜 틀렸지?' 같은 자신감 없는 의문들이 내 머릿속을 도배할 때가 많았다. 일단 잡았으니 한 번에 합격해서 시간낭비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자고 마음을 먹었다. 공부시간 계획표를 만들고 다이어리에서 한 주를 시작하는 매 월요일 페이지에 붙여서 한 주간의 공부시간을 체크했다. 실습프로그램 때문에 컴퓨터를 사용해야 해서 자칫하면 인터넷 서핑 같은 딴짓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공부에 온전히 집중하는 순수 공부시간을 늘리려고 노력했다. 직장에서도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서 분개 연습도 하고 강의도 반복해서 들었다.
무언가 새로 배우는 처음 단계가 항상 어렵게 느껴진다. 하지만 어느 정도 기초를 쌓으면 노력 여하에 따라 점점 습득 속도가 빨라진다. 익숙해지려고 요약정리 영상이든, 기출문제 풀이든 계속 듣다 보니 점점 이해가 되는 부분이 많아졌다. 땅따먹기 놀이처럼 이해되는 부분을 응용해서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을 조금씩 공략해 나가기 시작했다. 100점 만점에 70점 이상을 맞아야 하는 절대평가 시험이라 모든 내용을 100% 완벽하게 이해하진 않아도 되었다. 100점이든, 70점이든 합격하는 건 똑같기 때문이다. 시험 일자가 다가올수록 오답노트에서 정리한 이론들을 다시 틀리지 않도록 집중했고, 이해하는데 시간이 너무 걸리는 부분은 과감하게 빼기로 했다.
여담이지만 우연하게 한 친구도 같은 날짜에 같은 장소에서 시험을 보게 되었다. 정확히 시험 2주 전, 친구는 서울에서 여자친구와 100일 기념일을 보낼 생각에 설레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시험공부에 대한 한탄을 늘어놓고 있어서 복합적인 심정이었다. 그런데 나와 대화하다가 시험일이 여자친구와의 100일 기념일과 같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험일을 한 주 뒤로 착각했던 것이다. 친구는 이미 전 회차 시험을 봤다가 아깝게 쓴 맛을 봤던 터라 이번 시험은 잘 봤으면 하는 희망이 있었는데 준비기간이 예상보다 한 주 줄어서 당황해하면서 어쩔 수 없이 100일 기념 장소를 옮기기로 했다.
시험 당일이 되었다. 정신없이 시험을 치르고 시험장을 나오면서 든 생각은 '예상보다는 어렵진 않았던 것 같다'였다. 그러나 이런 안일한 생각으로 컴퓨터활용능력 1급 시험 후 큰 낙심을 한 적이 있었기에 일단은 결과를 차분히 기다리기로 했다. 친구도 이번에는 괜찮았다는 듯이 여유 있어 보였다. 친구는 곧 있을 여자친구와의 만남을 준비하러 떠났다. 시험만 아니었으면 그저 그냥 평범한 주말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평온한 마음이었다.
갑자기 회계 공부를 하게 된 건 내년 상반기 공기업 대비 스펙 쌓기 용도 있었지만 지식에 대한 욕구도 2차적인 동기 요인이었다. 투자를 시작하고 많은 매체와 책을 통해서 기업 분석을 잘해야 한다는 말을 수없이 들었지만 그걸 실천하진 않고 있었다.
2023년 7월 말, 한 기업의 주가가 급등하면서 150만 이상 고점을 찍은 적이 있었다. 그전에도 뉴스를 통해 많은 전문가들이 그 기업에 몰리는 투자심리에 대해서 경계해야 한다고 이야기했지만 그 당시 주식들과 다른 향상의 가파른 상승 곡선은 '나도 잘하면 대박을 낼 수 있을까?' 하면서 근거 없는 기대감을 갖게 만들었고 그 마음에 혹해서 나도 살짝 진입해봤다. 갖고 있던 자본이 많지 않았고 1주당 100만원이 넘는 황제주이기도 해서 몇 주 살 수 없었다. 이미 많이 오른 상태라서 큰 이익은 볼 순 없지만 막연하게 차후 전망이 좋은 기업이고 은행 적금이자보단 수익이 높을 것이라는 생각에 조금이라도 사두기로 했다.
주식에 관심 있으면 누구나 알만한 그 종목
문제의 그날, 고점을 찍는 순간을 목격하면서 이대로면 수익률이 장난 아닐 것 같다고 혼자서 호들갑을 떨었다. 무리해서라도 더 넣어야 하나, 지금 생각하면 어리석은 고민을 잠시 했다. 하지만 그 직후 모든 희망을 앗아갈 정도로 급격하게 내려가는 주가를 보고 허둥지둥 어플을 켜고 팔아버렸다. 판 직후 수익률이 마이너스는 아니라면서 안도하는 내 모습이 그렇게 한심해 보일 수 없었다. 큰 손들에 비해 소액 투자였지만 그 금액에도 천당을 오고 가는 숨 막힌 경험을 하고 나서 제대로 알고 투자해야겠다고 정신을 차리기로 했다.
그때부터 그동안 경제신문으로 익혀왔던 토막상식 같은 개념보다 경제분야 자격증을 준비해서 기본지식을 체계적으로 쌓자고 생각했다. 이번에 준비한 전산회계 자격증은 그 상위 자격증(전산세무)보단 전문성이 낮고 중급 수준의 회계지식을 평가하는 시험이었다. 시험 준비했던 것을 글로 써 내려갈 만큼 내세울만한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제대된 투자를 위한 첫걸음이라고 생각하고 나만의 기준대로 뚝심 있게 준비하기로 했다.
시험을 본 다음 날 어떤 회계사분이 블로그에 추천해서 미리 여러 권 사놓은 회계 관련 책들을 보기 시작했다. 한 달 전에 산 샀지만 처음 펼쳤을 때 온갖 도표와 단어가 이해가 되지 않아 고개를 저으며 덮은 책들이 대부분이었다. 시험공부 중에 비전공자들을 위해서 아기에게 이유식 먹이듯이 쉽게 써 내려간 회계책을 보긴 했다. 사실은 단어나 개념을 책으로라도 많이 봐서 시각적으로나마 익숙해보자는 마음으로 봤던 것이었다.
시험 이후 미뤄놨던 회계 책들을 다시 펼쳐보는데 신기하게도 많은 부분들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완벽하게 이해한 건 아니지만 책 내용의 70~80%가 이해가 되니 책이 술술 넘어갔다. 토익 LC 공부할 때도 많이 들어야 귀가 뚫린다고 하지 않는가. 이번 경험이 그러했다. 70~80% 이해한 내용으로 나머지 20~30%의 일부를 이해하게 된다. 그렇게 이해한 지식이 조금 더 확장되면 다른 책들에서도 이해한 부분으로 나머지 부분의 일부를 이해한다. 이런 원리가 계속되면 책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고 책 읽는 속도도 더불어 빨라진다.
책을 다 읽어도 끝까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분명 있다. 하지만 그 부분을 이해하느라 너무 책에 매달리지 않았다. 중요한 건 내가 이 분야를 제대로 알고 싶다는 욕구를 충족할 때까지 그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100%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작은 것을 보느라 큰 것을 놓치기 싫었다. 낯선 분야를 알아가는 방법을 조금이나마 깨달은 느낌이었다.
전에는 새로운 지식, 새로운 운동, 새로운 맛집 등 처음 맞이하는 환경에 대한 거부감과 예민함이 심했다. 새것을 받아들이기 싫어하는 흥선대원군 같은 고집이 내면에 존재했던 것 같다. 요즘은 그런 생각이 많이 들지 않는다. 뾰족하게 모난 부분이 많이 깎여나간 것 같다. 앞으로 겪을 많은 새로운 일들도 이런 열린 마음으로 성실하고 차분하게 대처하여 좋은 결과들을 얻어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