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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푸름 Dec 17. 2023

이웃집 강아지 뽀삐 이야기

이웃집에 작고 귀여운 '뽀삐'라는 강아지가 살고 있다. 방울이 달린 작은 목걸이에 뽀삐라고 이름이 적혀있어서 누구나 이름을 바로 부를 수 있다. 마당이 있는 주택에 살고 있었지만 자신을 담기엔 좁은 곳이라고 생각했는지 문이 조금이라도 열려 있으면 깡총 뛰어나와 집 앞 언덕을 왔다 갔다 했다. 뽀삐는 체구가 작았지만, 기세만은 드세서 언덕을 지키는 수호자처럼 언덕 한가운데를 자신의 영역으로 장악했다. 하루에 경사가 꽤 있는 그 언덕을 오가는 사람들은 극소수였다. 뽀삐는 자신의 언덕에서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무척 경계하며 날 선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몇 번 얼굴을 트게 되면 발밑으로 쪼르르 다가와서 엉덩이를 내미는데 그 모습이 싸늘했던 첫인상을 잊어버리게 할 만큼 너무 귀여워 웃음이 터져 나온다.     


나는 3년 전 뽀삐가 사는 집에서 200걸음 정도 되는 곳에 이사를 왔다. 전에 살고 있던 집은 직장과 걸어서 5분 거리인 최적의 장소였지만 집 주변에 아무것도 없어서 퇴근하고 돌아오면 집에 적막함만 가득했다. 적막함은 답답함이 되었고 그런 마음을 벗어나고 싶어 조금이라도 시내 쪽과 가까운 곳에 이사를 오게 되었다.

  


나는 동물과 연이 없는 삶을 살았다. 집에서도 키워본 건 초등학교 때 에버랜드에 가서 기념품코너 같은 곳에 팔던 쉬리 한 마리를 사서 온 것뿐이었다. 그 쉬리도 물갈이를 하다가 하수구에 빠트려 흘려보낸 이후로 동물이라는 것을 집에 들인 적이 없다. 어머니께서 털 날리는 것을 싫어하셔서 그럴 기회가 더 없기도 했다. 동물과 접점이 없다 보니 정이 들 기회도 없었다. 동물에게 가지는 사랑의 감정보단 현실적인 생각이 계속 들었다. 어쩌다 들린 가게에서 꼬리를 흔들며 마중 나오는 강아지를 보면 나도 모르게 슬그머니 발걸음을 옮겨 피하곤 했다. 사람들이 자신을 만지는 손을 열심히 핥는 모습을 보면 귀여움보다 손에서 날 침 냄새 걱정이 더 컸다.  


이사를 하고 꽤 긴 시간 동안 뽀삐의 존재를 몰랐었다. 뽀삐는 집 밖으로 나오는 횟수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언덕 밑에는 초등학교 앞을 지나는 도로가 있어 차들이 많이 다녔지만 용감한 뽀삐에게는 그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용감함 덕분에 자동차에 치일 뻔한 위험한 순간이 몇 번 있어서 주인아주머니께서 뽀삐가 집 밖으로 나오는 것을 통제하셨다. 그래서 평소 볼 기회가 더욱 적어졌다.


표정은 사납게 나왔는데 엉덩이를 만지지 않으면 삐진 것 같이 가버린다

이런 이유로 존재하지만 보기 힘든 전설의 동물이 된 뽀삐를 보는 날은 왠지 운수 대통한 날로 여겨졌다. 뽀삐랑 몇 번 얼굴을 트고 나서는 뽀삐는 나에게도 달려와서 엉덩이를 내밀었다. 처음에는 웬 엉덩이를 들이미나 싶어서 등만 살살 만졌는데 만족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면 이건 어때하면서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문지르니 꼬리가 헬리콥터처럼 팽팽 돌면서 기쁨의 표시를 보였다. 그때 뽀삐가 엉덩이 만지는 걸 좋아하는구나 깨닫고 다음에 만날 때부터는 자동적으로 엉덩이 마시지를 해주면서 뽀삐를 기분 좋게 해 줬다. 나는 분명 동물에게 철벽을 치는 무정한 사람인 것 같았는데 뽀삐는 작은 몸으로 벽 틈사이를 파고들어 가볍게 들어온 것 같다. 그렇게까지 들어오겠다는데 말릴 도리는 없었다. 용감하게 내 안에 들어온 존재니 정을 주는 건 그에 따른 큰 보상이랄까. 뽀삐는 어느 면에서는 나에게 규격 외의 존재라고 말할 수 있겠다.



며칠 전에 친구와 집으로 돌아오다가 오랜만에 외출을 한 뽀삐를 보게 되었는데 우리를 보자마자 엉덩이부터 들이미는 녀석을 보고 만지지 않고는 배길 도리가 없었다. 우리도 정신없이 신나게 만져주고 있었는데 뽀삐를 찾고 있던 주인아주머니가 나오셔서 개 팔자가 상팔자라면서 요란하게 엉덩이 마사지를 받는 뽀삐를 향해 혀를 끌끌 차셨다. 말은 그렇게 하셔도 아주머니의 구김 없는 표정을 보면 뽀삐는 참으로 사랑을 많이 받는 귀염둥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사 가지 않는 한 뽀삐와 오랫동안 마주치면서 볼 때마다 행운을 얻는 것 같은 마음을 받고 싶다. 자주 못 봐도 좋으니까 건강하기만 해라 뽀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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