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 작가를 처음 본 건 지역에서 주최했던 ‘작은 서점 지원 사업’의 시 창작 수업이었다. 작은 체구지만 오랫동안 시를 써오면서 가지고 있는 자신만의 시 철학에 대해서 담담히 이야기하는데 그 모습이 마치 긴 시간 기초부터 단단하게 쌓아 올린 거대한 돌탑 같았다. 수업 중에 작가가 시뿐만 아니라 에세이도 출간했다고 말했는데 평소 에세이 쓰는 것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수업에서 다루지 않아도 개별적으로 사서 읽어보기로 했다. 내면이 단단해 보이는 시인이 쓰는 에세이는 어떤 느낌일까 더욱 궁금했다.
책은 조은 작가가 사직동 세 집에 세 들어 살았던 시기 이야기로 시작해서 그중 두 번째로 살았던 집의 주인집 강아지 ‘또또’를 만나 생기는 일들을 담아냈다. 가슴 아팠던 첫 만남부터 아름다운 이별까지 또또와 조은 작가가 서로의 삶에 동화되어 하나 되어 가는 과정은 마치 한 편의 성장 소설 같았다.
『또또』를 처음 읽었을 때는 주인집으로부터 학대당한 '또또'라는 강아지와 함께 살면서 마주치게 된 상황들에 작가의 감정을 듬뿍 담아낸 글이라고 생각했다. 또또와 만나기 전, 작가의 어린 시절 애정을 쏟아 키웠던 강아지가 아버지를 통해 어처구니없게 세상을 떠난 경험이 있었다. 그것이 상처가 되어 또또를 만난 초반, 또또에게 정을 주지 않으려고 애쓰는 작가의 모습을 나는 사람에 대한 배신의 감정으로 공감했다.
내 삶은 유독 동물과는 연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동물에 대한 유대감이 없는 편이다. 동물에 관한 사건 사고를 다룬 뉴스들을 봐도 무덤덤하다. 나와 상관없는 별개의 존재로 선을 긋기 때문이다. 그래서 또또를 바라보는 작가의 생각보단 작가에게 주어진 상황이 더 이해하기 쉬웠다.
최근 『또또』를 두 번째 읽게 되었을 때는 전과 조금 다른 시선에서 볼 수 있었다. 또또가 자신의 삶에 들어오면서 변화하는 작가의 모습뿐만 아니라 작가와 지내면서 또또가 느낄 감정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또또는 주인으로부터 학대당하면서 자신을 제압하는 존재에 대해 두려움이 생긴 상태였다. 그 때문에 또또는 동물병원에서 자신을 치료하기 위해 들이민 주삿바늘에 화들짝 놀라 일반적인 경우보다 배로 주입한 마취약이 들지 않을 만큼 긴장해서 경계했다. 그런 또또의 모습이 나의 이웃집 '뽀삐'와 비교되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호통 한 번에 자신의 본성을 누를 정도로 인내하는 또또의 모습은 자기를 만져달라고 엉덩이를 들이밀면서 애정을 갈구하는 뽀삐와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또또가 작가와 살기 위해 택한 삶의 방식이었다. 동물이든 사람이든 각자가 처한 상황에서 자신을 지키고 만족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을 하게 되어 있다. 작가도 사람들의 연락이 너무 과할 때는 전화선을 빼고 칩거하기도 했다. 남들이 보면 무슨 괴짜 같은 행동일까 싶지만 또또처럼 작가 스스로 살아남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었다고 생각하니 이해가 되는 행동이었다.
또또의 삶은 작가의 삶까지 변화시켰다. 또또 앞에서는 강한 척을 하면서 또또를 지킬 수 있도록 스스로 힘센 사람이라고 믿었다. 어릴 적 겪은 트라우마로부터도 벗어났다. 작가의 비밀번호와 문장도 또또를 위한 것으로 바뀌어 갔다. 또또 또한 작가의 일을 방해하지 않고 공존하면서 함께 지냈다. 분위기와 식성도 닮아갔다. 작가는 마지막에 또또를 개 한 마리가 아니라 한 생명이라는 큰 존재로 인식하면서 책을 끝맺었다. 가끔 보는 뽀삐도 퇴근길 집 앞 언덕에서 보이지 않으면 섭섭한 마음이 든다. 하물며 17년을 함께한 존재를 떠나보내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함께 살기 위해 마음먹은 순간부터 마지막까지 마음 편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지만 또또 덕분에 극복한 몇 가지를 담담히 이야기하면서 죽음을 슬픔으로만 받아들이지 않는 작가의 강해진 생각도 볼 수 있었다.
또또의 마지막 순간 작가는 '또또야, 우리 오늘 씩씩하게 잘하자'라며 또또에게 응원 같은 작별인사를 건넸다. 힘들고 어려울 때 거창하고 화려한 말로 응원하는 것보다 꾸밈없이 이야기해 주는 것이 힘이 될 때가 많다. 출근할 때마다 나 자신에게 'OO아, 오늘 힘내보자'라고 건네는 단순한 말이 그날을 버티게 할 때도 있다. ‘씩씩하게 잘하자’의 대상은 또또뿐만이 아니라 작가 자신에게 한 말이기도 했다.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용감하게 잘해보자는 마음. 문득 강형욱 훈련사가 한 프로그램에서 이야기한 말이 생각났다. 개라는 존재를 글로 따지면 ‘은, 는, 이, 가’ 같은 느낌이라며, ‘은, 는, 이, 가’가 없어도 말은 되긴 하지만 있으면 말이 더 예뻐지는 것처럼 반려견이 우리의 삶에 그런 역할을 하는 것 같다고. 또또와 작가는 서로를 통해 구원받은 삶을 살았고 서로에게 큰 선물이었다.
또또는 작가의 마음속에 큰 공간을 차지했고 떠나면서 남겨진 큰 빈자리를 작가가 다른 무언가로 채울 기회를 만들었다. 아직 인생을 논하긴 이른 나이지만 내 주변에는 수많은 사람이 스쳐 지나갔다. 내 마음에 잠깐 머물다간 사람, 지금까지 함께하고 있는 사람, 상처를 주고 간 사람 등 많은 사람이 마음속에 자리를 차지했다가 비우기를 반복했다. 사람에게는 정이 많아 쉽게 마음을 주지 못하면서도 주기 시작하면 한없이 퍼주는 성격은 그런 내 마음도 모르고 떠나간 사람에게 상처를 받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이번 한 해를 마무리 지으면서 『또또』라는 책을 통해 사람의 관계뿐만 아니라 마음에서 비움이 또 다른 채움을 위한 시작이라는 것을 깨닫고 또 다른 한 해를 맞이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내년의 나에게 응원의 말을 전해본다. “내년에도 씩씩하게 잘 해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