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어떤 글을 쓰다가 결론을 남겨두고 저장을 해놨었다. 오랜만에 번뜩이는 글감을 찾아서 기분이 좋았었다. 글은 술술 써졌고 교훈적인 내용으로 마무리 짓고 싶다는 생각에 적절한 단어와 표현을 고민하다가 시간이 너무 지나서 다음에 마무리하기로 했다. 바로 생각이 안 날 때는 다른 일을 하다 보면 무의식에서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기 때문에 끝맺음을 못했다는 것에 집착하지 않기로 했다.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성숙해 보이지 않는가?
이틀 전, 글을 완성하기 위해서 저장해 놓은 글을 다시 보는데 조금 충격을 받았다. 글에는 직장 상사에 대해서 드는 불편한 생각이 적나라하게 담겨 있었다. 나름대로 순화해서 적었다고 생각했는데 퇴고하니 내가 쓴 글이 그분을 저격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내가 이 글을 쓴 이유는 그 분과 부딪히면서 쌓여있던 화를 글로 표출했던 건 아닌가 싶었다.
내가 생각했던 글의 흐름은 업무스타일이 너무 다른 상사와 일하기 어렵다는 것과 그런 부분을 극복해야 앞으로 더 많은 남은 사회생활도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취지와는 다르게 상사를 바라보는 시선이 여러 가지 경험으로 이미 크게 부정적이었고 관계에 대한 마음의 선이 확실하게 그어진 것이 보였다. 만약 이 글이 쓸 당시 바로 마무리가 되어 업로드가 되었다면 굉장히 과격한 글로 사람들에게 보였을 것 같아 성숙해진 것 같다며 신나했던 내가 조금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저장된 글을 한참을 바라보면서 며칠 전에 읽은 『나는 왜 내 마음이 버거울까?』(유영서 저/미래의 창)라는 책이 떠올랐다. 책 내용 중, '개념 없는 사람 때문에 화가 나요'라는 목차의 글에서 비춰봤을 때 내가 싫어하는 사람은 '하지 말아야 하는 행동'을 함으로써 내 생각이나 계획대로 '돼야 하는 일'이 되지 않게 한다.
그러고 보면, 내 마음속에서 해야 한다, 돼야 한다의 '머스트(must)'라는 태그를 달고 있는 기준이 상당히 많은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기준에서 꼭 그렇게 돼야 하는 일은 많이 없다. 내가 내 마음대로 정한 기준일 뿐이다. 이런 것을 책에서는 '사고의 경직성'이라고 정의하는데 사고가 굳을수록 마음속에 수많은 '머스트'가 있다는 말에 책을 읽던 시선이 고정되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도 내 사고가 얼마나 협소하고 좁은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많은 부분을 내 틀에 맞춰서만 생각하려고 하고 상대방을 한 부분만 보고 쉽게 판단해버리고 있지는 않은지 말이다. 그 사람의 세계를 인정하고 나와 다름을 인정하는 것, 그것은 끊임없이 다듬어가야 할 부분인 것 같다.
직장 상사에 대해 쓴 글은 당분간은 삭제하지 않으려고 한다. 글 쓸 때 한 번 더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고 내 생각을 굳지 않게 계속 주물거려서 자극을 줄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