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푸름 Sep 11. 2024

[독후감] 책을 읽을 수 있는 사회

『화씨 451』을 읽고

텍스트 힙(Text Hip)

글자를 뜻하는 영단어 '텍스트(Text)와 개성 있다는 의미의 '힙(Hip)하다'를 합친 용어로 독서를 즐기는 것을 멋짐으로 삼는 문화를 뜻한다.
독서를 즐기는 인구가 늘어나는 건 좋은 일이다


 텍스트힙.  젊은 층에서 등장한 신조어다. SNS에는 자신이 읽은 책을 인증하거나 독서하는 모습을 찍어 올리는 게시물이 많이 올라오고 있다. 개인적으로 SNS를 자주 하지 않아서 이런 열풍이 직접적으로 와닿진 않지만 뉴스나 여러 영상 콘텐츠에서 이런 문화를 다루는 것을 보면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


  우리나라 성인 독서율은 굉장히 저조하다. 지난 브런치 발행글 중 '책을 좋아해서 당신이 좋았습니다'라는 글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성인 2명 중 1명은 1년간 책을 한 권도 읽은 적이 없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처음 조사가 이뤄진 1994년 86.8%에 비하면 역대 최저 수치를 갱신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책을 즐기는 문화가 흥행하는 것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반가운 일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조금 슬프기도 하다. 일상 속에 독서가 녹아있는 느낌이 아니라 어느 유행들처럼 반짝하고 사라지는 문화가 아닐까 해서 말이다. 대승적인 생각을 가지고 접근하는 건 아니다. 그저 우리를 스쳐 지나가는 다양한 유행들이 구닥다리처럼 여겨지고 버림받듯이 독서 문화가 그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내가 살고 있는 원주만 하더라도 2019년 유네스코 문학 창의도시로 선정되어 원주 내 도서관과 독립서점에서 소규모의 수업과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올해부터 이런 부분에 대한 지원이 줄어서 작년과 대비해서 각 운영자가 느끼는 부담이 커진 상황이다. 도파민 중독에 걸린 요즘 사람들에게 이런 아날로그 감성의 접근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버스를 타고 보는 창문밖의 풍경은 비슷하다. 걸어다는 사람도, 정류장에 앉아있는 사람도 모두가 작은 화면을 바라보고 무표정하게 굳어있다. 사람이 많은 서울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의 광경을 보면 더 그렇게 느껴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몸비('스마트폰(Smart Phone)'과 좀비(Zombie)'의 합성어)같이 느껴진다.


『화씨 451』/ '레이 브래드버리' 저  / 황금가지


  이런 걸 느껴서인지 최근에 읽은 레이 브래드버리의 『화씨 451』이라는 책이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았다. 『화씨 451』내용 중 책을 읽는 사람을 배척하고 책을 불태우는 사회상의 배경에는 미디어에 중독되어 살아가는 사람과 스스로 생각하는 중단한 사람들이 있다. 이 책이 발표된 1953년에는 미국에 TV가 보급되는 시점이었다. 이때부터 TV가 사람들에게 미치는 안 좋은 영향에 대해서 선구안을 가진 작가가 그런 모습을 소설로 잘 표현한 것이 소름 끼쳤다. 더 놀랐던 것은 작가의 머릿속으로부터 표현된 소설 속 사람들의 모습이 시대를 뛰어넘어 지금과 똑같다는 것이다. (가상이라고는 하지만 1950년대에 벽면 TV를 생각하다니. 심지어 무선 이어폰도 나온다!) 벽면 TV에서 떠드는 영상을 보면서 멍하니 있는 주인공 '가이 몬태그'의 아내, '밀드레드'와 그 주변 사람들의 모습은 길거리에서 스마트폰을 바라보고 있는 우리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수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고 삶은 풍족한데도 살아있지 않는 듯한 사회의 모순점을 느낀 몬태그에게 조력자 '파버'는 벽면 TV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한다.


  '그것은 즉각적, 말초적이고 다양한 차원을 지녔소. 모두 옳아야만 할 것 같고.

그것은 너무나도 깔끔하고 즉각적으로 결론을 내려 주니까 당신의 마음은 미처 생각해 보고 반박할 여유도 갖지 못하오.'


  나오는 그대로 생각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영상이라는 매체를 이용하여 우리의 생각을 입맛대로 변화시키려는 존재들이 있다. 그 존재는 사람일 수도 있고 단체나 기업일 수도 있다. 상상할 에너지를 쓸 필요도 없는 영상은 그런 강력한 힘을 가지고 더 자극적이고 중독적이 되어가고 있다. 『화씨 451』을 보고 나서 김인정 작가의 『고통 구경하는 사회』한스 로슬링의 『팩트풀니스』가 생각난다. 두 책에서 얻은 내 결론은 언론이나 매체에서 보이는 내용은 사실 그대로가 아니라 편집된 것이고 분명한 의도가 있기 때문에 스스로 사실(Fact)을 잘 분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데에는 독서만 한 것이 없다. 나 자신이 나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책 속의 종이 한 장이 주는 힘을 무시해서는 안될 것이다.


  책들을 불태우면서 잘못된 정의감으로 환희를 느꼈던 방화수에서 책이 주는 지혜를 지키는 수호자가 된 가이 몬태그의 변화처럼 사방에서 범람하는 자극적인 것에 취하지 않기를 바란다. 책을 통해 펼쳐지는 상상력과 저자의 지혜를 얻어가는 것에 행복을 느끼고 아무런 제한 없이 책을 읽을 수 있는 것에 감사해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