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어느 날, 오후의 뜨거운 햇살을 피하기 위해 잠시 방문한 곳이 발달장애 아동들의 그림을 전시한 곳인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저 시원한 바람이 나오는 곳에서 쉬려고 한 것뿐이었는데 어느새 전시회 입구에 계시던 스태프의 안내에 홀린 듯이 따라 들어가고 있었다. 아이들이 그린 작품들이었지만 전시회에서는 아이들이 아니라 엄연한 '작가'로 소개하고 있었다. 작가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이나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캔버스지와 액자에 담았다. 화사한 색과 다양한 소재로 만들어진 작품들이 전시장 벽들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 날 봤던 작품들 중 내 기준에서 색 조합이나 구도 등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그림을 완성한 작가의 의도와 생각이 틀렸다고 말할 수 없다. 예술은 작가의 주관적인 영역이 크다. 그래서인지 내가 아는 부분보다 모르는 부분이 훨씬 더 많아서 이전부터 예술이란 분야에 접근하기 어렵게 느껴졌다. 이 생각은 나의 독서습관에도 영향을 미쳤다.
음악이나 미술을 주제로 다룬 책들은 책에서 언급한 노래나 작품 대부분을 듣거나 보지 않아 저자의 생각과 감정에 공감하는 부분이 가장 어렵다. 그래서 읽는 내내 작품들을 따로 찾아보는 노력이 없다면 저자가 왜 이렇게 생각했을까 의문을 품다가 책을 덮어버릴 수 있다. 류이치 사카모토가 쓴 자서전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를 볼 때도 책 속에서 언급하는 많은 음악들을 들어본 적이 없어서 하나씩 들어보느라 완독에 애를 먹었다. 패트릭 브링리의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경비원으로 보낸 10년이란 시간을 여러 미술 작품과 교감한 내용으로 풀어내고 있었지만 저자가 언급한 작품들 대부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미술 작품들이 많아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들이 많았다. 이 두 권의 책 이외에도 최근 예술 관련한 책들을 읽으면서 스스로 배경 지식이 많이 부족하다고 느껴 음악과 미술에 관련된 책들을 자주 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와중에 이번달 독서모임의 주제로 선정된 도서가 손봉기의 『미술관을 빌려드립니다 : 북유럽』이라는 것은 어쩌면 운명적이라고 느껴지기도 했다.
『미술관을 빌려드립니다 : 북유럽』 / 손봉기 저 / 더블북
'미술'과 '북유럽'. 나에게는 생소한 주제들로만 이루어진 이 책은 굉장히 낯설게 느껴졌다. 투어야 여행사의 CEO면서 25년째 유럽 현지 미술관 도슨트로 활동 중이라는 저자는 예술이 주는 감동을 사람들과 나누기 위해서 유럽 5대 박물관 해설을 음성파일로 제작해 무료배포 중이다. 실제로 찾아보니 저자가 운영하는 여행사 홈페이지에 해설뿐만 아니라 안내지도까지 친절하게 나와 있었다. 에스컬레이터와 걸어가는 방향, 거리까지 세세하게 나타낸 감상포인트는 길지 않지만 유럽 미술관에 호기심을 가득 안고 방문한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가득했다. 이곳에서 엿볼 수 있었던 저자의 친절함은 책에서도 드러난다. 행복지수가 높다는 사실 정도만 알고 있던 북유럽의 각 국가에 대한 대략적인 미술사 발전과 미술 작품 설명, 유명 장소 소개까지 자상한 가이드가 따뜻한 목소리로 인도하는 듯하다.
책에 나온 여러 작품을 감상하던 중 마음이 동요하는 몇 작품이 있었다. 그중 첫 번째는 스웨덴 화가인 요한 프레드릭 그루텐의 <산책하는 아이들>이다. 오후 늦은 시간인지 옅게 붉어진 하늘이 이제 막 커가는 새싹과 나뭇잎과 어우러져 보기에 편한 마음이 들었다. 너무 새파랗지 않기 때문에 여려 보이는 풀들이 산책하는 아이들의 순수함을 더 돋보이게 하는 것 같았다. 걷기를 좋아하는 나에게 그림 속 장소는 최고의 낙원이다. 집에 액자로 걸어두면 지나가면서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게 만들 것 같다.
요한 프레드릭 그루텐, <산책하는 아이들>
너무 독특해서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다. 덴마크 화가 코르넬리스 노르베르투스 헤이스브레흐트의 <그림의 뒷면>은 우리가 항상 보는 작품의 앞면이 아닌 뒷면을 사실적으로 그려서 평소 생각하지 못한 면을 돌아보게 한다. 작품을 뒤집어 잘못 걸어 놓은 것이라고 착각할 수 있지만 그 모습 그대로가 작품인 것은 꽤나 재미있는 포인트다. 분명 아름다운 풍경을 그린 것도 아니고 추상적인 무언가를 그려서 상상력을 펼치게 하는 것도 아니다. 작품의 뒷면에 대해 작가가 자신만의 생각으로 복잡하게 재창조하지 않고, 간단명료하게 있는 그대로를 담아냈다. 그래서 우리가 인지하는 세상의 뒷면에 대한 관심으로 생각을 집중시켜 준다. 혹시 모르지 않은가. 그런 관심이 숨겨둔 비상금 같은 뜻밖의 아이디어를 발견할 수도 있는 일이니까.
CN 헤이스브레흐트의 <그림의 뒷면>
마지막으로 핀란드 화가 에로 예르네펠트의 <장작 태우기>를 얘기해 본다. 중앙에서 퀭한 눈으로 나를 노려보는 소녀의 눈빛을 잊을 수 없다. 소녀의 눈 밑에 그을음으로 인한 그늘이 지침과 원망을 가득 품고 있다. 소녀의 눈에서 하루 종일 일하고 퇴근 하기 직전 우리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살기 위해 아침저녁으로 일을 해온 산업화 이전 핀란드 사람들의 모습이 오늘날 우리와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삶은 살아내기 위한 투쟁의 역사다. 소녀의 두 손으로 자신의 몸 정도 길이의 나무를 들고 굳게 서 있는 모습을 무거운 삶의 무게를 버티는 우리의 모습으로 나름대로 해석하기로 했다. 책을 덮어도 뚫고 나올 것 같은 소녀의 시선을 거두는 데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그런 불편한 시선이 작가의 의도가 아닐까 싶다.
에로 예르네펠트의 <장작 태우기>
책 속에서 북유럽 화가들이 많이 소개되고 있는데 같은 스승에게 배웠다고 하더라도 화풍이 조금씩 달랐고, 비슷한 풍경을 두고 그린 것도 화가마다 느낌이 달랐다. 분명히 두 눈으로 보는 세상은 대부분 같을 텐데 화가들의 예술적 감각이 더해지면 어떻게 머릿속에서 그려지는지 궁금해진다. 오늘날에는 규모가 다양한 대관장소가 많아져서 전시회를 열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 덕분에 요즘 작가들의 작품을 쉽게 접할 기회가 많아졌다. 나도 홀로 서울에 갈 때 한 번씩은 규모에 상관없이 전시회를 방문해서 낯선 작품들을 감상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미술관이나 전시회에서 사람들이 떠들지 않고 조용히 감상하는 이유가 관람객 스스로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것을 내려놓고 오롯이 작가의 세계에 들어가 새로운 세상을 이해하고 체험하기 위함이 아닐까하고 말이다. 발달장애 아동작가들의 전시회처럼 작가들의 생각이 당장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인지'가 되면 경험이 쌓여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폭이 넓어질 수 있을 것 같다. 미술에 대해서 관심이 없을 때는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도 몰랐는데 오히려 알아갈수록 모르는 것이 많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예술에 대해 알아가면서 겸손해짐과 이해심을 배운다.
· 제 목 : 『미술관을 빌려드립니다 : 북유럽』
· 저 자 : 손봉기
· 출판사 : 더블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