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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린 Nov 28. 2021

함께 잔을 기울일 친구 두엇만 있다면

<술꾼도시여자들>, 술만 진탕 마시는 드라마?

"적시자~" 호탕하게 소리치는 친구1

발그레해진 얼굴로 내 소주잔에 자기 잔을 갖다 대는 친구2



드라마 <술꾼도시여자들>은 '기승전술' 드라마를 표방하지만,

실은 술잔을 함께 기울이는 세 친구의 우정과 삶에 관한 이야기에 가깝다.



하루 끝의 술 한잔이 인생의 신념인 세 여자의 일상을 그린 본격 기승전술 드라마


드라마 로그라인과, 메인 페이지에 붙어있는 빨간색 19 표시부터 범상치 않기는 했다.

OTT 오리지널이라더니, 소재도 술에다 대놓고 19금 딱지를 붙이고 가는 패기를 보여주는 건가?! 싶은 마음.




1화를 보고 나면 그 느낌에 확신을 더하게 된다.

이 드라마, 확실히 범상치 않다.


첫 화 카메오로 출연한 배우 김지석의 '소개팅 연속 3번 망한 썰'을 빙자한

주인공 셋의 캐릭터 소개 장면은 아주 강렬하다.


미지근한 소주를 사랑하며, '오복집'의 단골 of 단골인 세 친구는

가지각색으로 소개팅남에게 시련을 선사한다.


그렇게 지구, 지연, 소희의 등장 씬은 '술'이라는 키워드와 자연스레 조화되며

각각의 캐릭터를 시청자의 머릿속에 깊이 각인시킨다.




술은 사람을 무방비하게 만든다.

가장 솔직한 마음을 꺼내놓게 하고 저열한 민낯을 까발린다.


때문에 십 년 가까이 부어라 마셔라 진탕 취할 때까지 술잔을 나눈 친구 사이라는 건,

서로의 가장 아픈 약점과 치부를 속속들이 나눈 사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술은 사건을 만들고, 취기는 감정을 격화시켜 싸움을 부추기지만

볼장 안볼장 다 본 친구사이는 그렇게 서로를 송곳처럼 찌르다가도

어느 순간 서로를 구하고 위한다.

지구와 지연이 그러했듯이.




분명 시작은 가볍고 즐겁게 즐길 수 있는

술 잘 마시고 욕 잘하는 호탕하고 멋진 술꾼들의 흥청망청 일기인 줄 알았건만

갈수록 세 친구를 둘러싼 인생의 파동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장례식 에피소드는 그 정점이다.

"

이 차에 있는 모두가 안다.

지금은 아무도 날 위로할 수 없다는 걸.

하지만 난 안다.

모두가 소리 없이 울고 있다는 걸.

모두가 3일 내내 나와 함께 울어주고 있었다는 걸.

"


진정한 친구 한 명만 있어도 성공한 인생이라 했던가.

소희, 지구, 지연에겐 서로가 그런 존재다.


인생이 무너질 것만 같을 큰 슬픔이 나를 덮칠 때 나와 함께 울어주는,

내 인생이 송두리째 어긋난 것 같을 때 다그치지 않고 묵묵히 나를 기다려주는.


이러한 셋의 끈끈하고도 술냄새 나는 우정은 시청자에게 짠한 위로와 감동을 주면서

'내게는 저런 친구가 있나?' 하는 물음을 남긴다.




되돌아보면 성인 이후의 역사와 흑역사는 대개 술로부터 비롯된다.

꺼내보고 싶은 추억도, 잊고 싶은 기억도 술 때문에 생기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


사랑, 이별, 질투, 우정, 오해, 화해, 실수.

많은 것들이 술로부터 시작되고 해결된다.


<술꾼도시여자들>은 이처럼 술과 함께한 인생의 굴곡을 그려낸다.

현실감 넘치는 상황과 대사, 연기는 덤이다.


그 아찔하고 현실적인 장면들은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의 흑역사까지 스멀스멀 기억나게 할 지도.



하지만 기억해두자. 이 드라마의 대사가 말하듯

술에 취하면 별것도 아닌 일이 다 별게 된다.

그리고 진짜 별거였던 일은 순식간에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된다.

그것이 우리가 술을 마시는 이유다.




너무 많은 걸 다 기억하고 살아야 하는 세상이지만

잊고 싶은 건 잊고,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해도 되지 않을까.


우리는 모두 불완전한 인간이고

우리에겐 망각의 열쇠인 술이 있으니.


또 함께 잔을 비우고 채워줄 친구 두엇만 곁에 있다면

의외로 인생에 두려울 게 별로 없을지 모른다.



드라마 애호가 입장에서 <술꾼도시여자들>은 하루 만에 몰아보기 딱 좋은 분량이다.(내가 그랬다)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시즌2 제작이 확정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기쁜 소식!


그러니 하루 일과를 끝낸 늦은 저녁, 술 한 잔이 생각난다면

잔잔한 조명에 한 켠엔 이 드라마를 켜놓고 술 한 잔 들이켜보기를.

곁에 있는 친구와 함께한다면 금상첨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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