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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피 May 13. 2023

크루아상, 어디까지 먹어봤니?

달콤한 빵과 디저트의 향연 


파리를 여행하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라면 여러 모먼트가 있겠지만, 매일 마주했던 소소한 행복이 있다면 단연코 아침으로 갓 구운 크루아상을 먹는 일이었다. 번화한 마레지구에 숙소가 있었던 건 행운이었지만, 파리 어디에 있건 동네 빵집이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다는 사실은 정말이지 너무 행복했다. 


빵을 좋아하는 우리 가족은 아침마다 크루아상을 먹을 생각에 설레어 눈을 뜨곤 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동네를 산책하며 점찍어둔 빵집은 물론이고, 구글 평점이 좋은 인정된 맛집까지 여기저기를 돌며 하나씩 사온 크루아상을 지치지도 않고 맛보고 비교하고 음미했다. 


어떤 크루아상은 첫 입부터 끝 입까지 버터의 풍미가 온 입안을 가득 채웠고, 어떤 크루아상은 시간이 지나도 바삭함을 잃지 않았으며, 어떤 크루아상은 결 하나하나가 혀끝에 느껴졌다. 갓 구운 크루아상은 사실 다 맛있지만 말이다.



레스토랑에서 식사 후 디저트는 빠뜨릴 수 없는 코스였는데, 에스프레소와 함께 여러 가지 디저트를 조금씩 맛볼 수 있었다. 느끼한 메인을 먹은 후, 쌉쌀한 에스프레소를 한 모금 머금은 채 초콜릿 무스를 떠먹으면, 이곳이 천국이지 싶다. 

(L'escargot Montogueil)

손바닥을 두 개 합친 것 만한 커다란 크림브륄레는 카라멜라이징 코팅이 된 설탕을 숟가락으로 톡, 하고 부수면 안에 부드럽고 진한 달걀향이 나는 커스터드 크림이 나온다. 바삭하고 부드러움이 동시에 느껴지는 독특하고 재미있는 식감뿐 아니라 맛도 적당히 달달해서 커피 없이도 거뜬히 먹을 수 있다. 아이들에게도 인기만점이었던 크림브륄레  (Chez Janou).


Stohrer에서 먹었던 에끌레어는 시드니로 돌아와서도 가장 생각나는 디저트 중 하나다. 길쭉한 슈(choux)의 겉에는 굳은 초콜릿이, 안에는 진하고 묵직하고 달달한 초코크림이 꽉 채워져 있어 한입 베어 먹는 순간 온몸에 행복이 퍼진다. 한 번에 몇 개씩 먹어치운 크루아상에 비해 이렇게 헤비 한 디저트는 한 번에 한 개에서 두 개밖에 맛볼 수 없어 아쉬웠다.


시드니에 돌아와서 비슷한 맛을 찾아보려 했지만 찾을 수 없어 더욱 아쉬웠던 스토러의 에끌레어 - 초코맛과 커피맛을 먹었다. (Stohrer)

스토러의 에끌레어의 대항마를 찾고자, 튈르리 공원 근처의 디저트샵에서 샀던 커피-초코 에끌레어와 초콜릿 타르트 (Y. Martin) - 크루아상은 쉽사리 승자를 정하기 힘들었지만, 에끌레어만큼은 스토러의 완벽한 승리였다. 맛있었던 초코 타르트. 그리고 괜찮았던 카페 키츠네의 카푸치노. 


유럽을 여행하면 에스프레소보다는 라테를 선호하는 나는 커피욕구를 채우기가 쉽지 않은데, 카페 키츠네의 카푸치노는 좋았다. 하지만 커피는 역시 시드니가 최고. 

핑크마마에서도 디저트는 못 잃어 - 캐러멜 팝콘과 피칸이 잔뜩 뿌려진 선데와 그릇에서 한 숟가락 푹 떠서 서빙되던 티라미수. 친절한 종업원 덕에 웃으며 먹은 디저트는 행복 그 잡채. (Pink Mama)

핫한 크루아상 맛집은 다 뚫겠단 전투적인 마음으로 최대한 여러 곳을 맛보려 한 와중에 세 번이나 찾은 곳은 현지인들도 줄서먹기 바쁜 (Bo & Mie) - 올리브 깜빠뉴가 가장 맛있었던 건 함정이지만. 





Bo & Mie - 퍼레로 로쉐 크롸상과 크로크 무슈, 미니 빵오쇼콜라 


아이들이 프랑스에 있는 동안 배운 세 마디는 - 봉쥬르, 메르시보쿠, 그리고 빵오쇼콜라 (포르파보르)


모험하길 좋아하는 남편은 디톡스 라테를 마셨다가, 다 남길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Bo & Mie를 여러 번 찾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매일 아침마다 진열장으로 쏟아져 나오는 이 비주얼들 때문이다. 매번 행복한 고민의 순간에 맞닿뜨렸던 기억. 출근 시간을 잘못 맞추면 너무 붐벼서 줄을 꽤 오래 서야 했다. 



 

내 최애 디저트 까눌레는 맛있었지만 시드니 최애를 넘어서지는 못했다. 여행을 할 때엔 다음을 위해 한 가지 아쉬움은 남겨두는 편인데, 까눌레가 그 아쉬움을 담당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슬펐다. 


쉬어가는 디저트 타임 - 5월의 딸기는 정말이지 너무 달콤하고 맛있어서 과일 가게를 지나갈 때마다 한 바구니씩 사들고 에펠탑으로, 빨래루아얄로, 튈르리 공원으로 마실을 나갔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도 한 바구니. 사실 그 어느 디저트보다도 맛있었던. (왜 때문에 시드니 딸기는 맛이 없는가)









표정이 말해주는 딸기의 맛 - 아기새 지오
 

파리에 왔으면 프렌치토스트는 먹어줘야지 않겠냐며 시켰는데 단 것을 사랑하는 나도 몸서리치게 만든 달콤함에 기절했다 (물론 행복하게). 

(Cafes Richard) 

따로 가봐야지 생각만 하다가 지베르니행 기차를 타러 간 역에서 만난 피에르 에르메 마카롱 - 종업원의 추천으로 유자 참깨맛, 장미맛을 골랐는데 뭐든 기본이 맛있는 건 국룰. 워낙에 유명한 마카롱이라 기대를 많이 해서 그런지 두 번 먹기보다는 이왕이면 다른 것들을 맛보고 싶었다.  (Pierre Herme)



몽마르뜨 언덕 앞 가게의 누텔라 크레페가 반가웠던 이유는, 15년 전과 같은 가격 때문이었다. 많은 것이 변했지만 또 많은 것이 그대로라고 느끼게 해 주었던 몽마르뜨.  



마트 간식 중에서도 정말 맛있는 것들이 많이 있었는데 특히 사진에 보이는 본마망 미니 타르트들 (초코와 캐러멜 레이어가 같이 들어가 있는 것이 식감과 맛 모두 가장 좋았다), 또 고급스러운 빈츠 느낌의 초코 과자, 그리고 마들렌 등이 선물하기 가장 좋았다. 집에 돌아와서도 프랑스를 느낄 수 있는 가장 달콤한 방법이 아닐까 싶다.   











이번 여행이 유독 재미있었던 이유는, 아이들과 함께할 거리를 찾다 보니 무엇이든 게임처럼 해야 했다는 사실이다. 여러 빵집의 크루아상을 모아두고 어디 것이 가장 맛있는지, 맛은 어떻게 다르고, 왜 차이가 나는지 이야기하다 보면 마치 빵믈리에라도 된 기분이었다. 다음날은 블라인드 테스트로 어디 빵집의 크루아상인지 맞춰 보기도 하고, 처음 먹어보는 맛있는 빵을 시도해 보기도 했다. 시드니에 살 땐 빵오쇼콜라가 너무 좋아서 파리에 가기 전부터 연습했던 단어인데, 막상 먹어보니 플레인 크루아상이 훨씬 맛있다며 활짝 웃는 모습이 좋아 집으로 돌아온 지금도 크루아상을 먹을 때면 미소가 지어지곤 한다. 물론 아이들은 프랑스에 있을 때만큼 크루아상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고급 취향을 갖게 된 것일까, 크루아상은 한 여름밤의 꿈같은 추억으로 남게 된 것일까, 알 수 없지만 우리의 기억 속 5월의 파리에는 고소한 크루아상 냄새와 달콤한 에끌레어, 부드러운 크림브륄레가 향기로, 맛으로, 느낌으로 함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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