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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피 Jul 20. 2023

Life if C between B and D

인생은 탄생과 죽음 사이의 선택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을 읽은 건 중학생 때였다. 죽음에 대해 생각하기엔 어린 나이였지만, 죽음을 앞둔 노인이 제자에게 털어놓는 삶의 지혜는 진실된 울림으로 다가왔다. 더 이상 삶을 이어갈 힘도 미련도 시간도 없는 사람이 거짓을 털어놓을 이유란 없을 거란 생각에, 마치 인생의 답이 거기 있는 듯 한 줄 한 줄 열심히 읽었다. 고작 열몇 살짜리가 얼마나 깊은 공감을 했겠냐 마는 돌이켜보면 정체성에 대해 처음으로 고민하던 시기에 접한 책이라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은 아직도 책장 한켠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

 

  최근에는 이어령 선생님이 제자 김지수를 만나 털어놓은 이야기들을 읽었다. 여러 차례에 걸쳐 인터뷰한 내용들은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을 많이 닮아 있었는데, 그것도 그럴 것이 인터뷰 당시 교수님 역시 암 투병 중이셨다. 이제는 고인이 된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을 읽으며 서른 중반에서의 삶과 죽음에 대해 고민해 보았다. 생물학적 관점에서야 죽음은 먼 훗날의 일이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살아가는 동시에 죽어가는 존재임으로 죽음과 무관한 삶은 없다. 죽음이란 삶만큼이나 친숙한 존재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죽음에 대해 고민할 때 우리는 살아가는 것의 의미를 깨닫는다. 


  애석하게도 누군가와 삶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기회는 좀처럼 없다. 매일 누군가를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지만 사회적 가면이 진심의 소리들을 가린다. 뜬금없이 만나 삶과 죽음과 인생에 대해 이야기하기엔 걷어내야 할 겉치레도 너무 많다. 심지어는 자신의 마음속을 들여다볼 거울에 조차 성애가 껴 힘듦이나 우울을 눈치채지 못하고 스스로를 극한으로 몰아가기도 한다. 유일하게 속내를 모두 드러낼 수 있는 남편이라도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두 사람이 주로 하는 이야기는 철학에서 시작(만)되어 현실(을 대부분 으)로 마무리 지어지곤 한다. 누군가의 삶에 대한 고증을 책을 통해 엿볼 수 있다는 것은 큰 선물이지만 좀 더 개인적인 고민 해소에 대한 갈망은 언제나 존재한다. 


  기회는 선물처럼 다가온다 했던가? 내가 인생의 멘토라고 여기던 분에게서 어느 날 연락이 왔다. 작년까지 자주 연락을 주고받고 얼굴을 보던 사이지만 업무상 만남이 대부분이었다. 비슷한 점만큼이나 다른 점도 많지만 항상 배울 점이 많다고 느꼈다. 사적인 만남을 제안하는 전화였고 그렇게 첫 만남 후 우리는 한 달에 한번 얼굴을 마주하고 세상과 가족, 자기 연민과 사랑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요즘 나의 고민은 아이들이다. 아이들을 키우며 매번 선택의 순간을 마주하게 되는데, 본질적으론 삶의 가치관의 문제이다. 아이들의 삶에 개입하기 전에 나의 삶을 돌아보며, 살아가는데 진짜로 필요한 가치란 무엇인가, 그 가치를 어떻게 심어줄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던 찰나에 받은 연락은 가뭄의 단비처럼 느껴졌다. 실로 마음의 위로가 되는 시간이었다. 모리 교수님도, 이어령 교수님도 아니지만 나만을 향한 진실된 조언 한 마디엔 그 못지 않은 힘이 있었다. 


  이 분의 삶을 따라갈 수는 없지만, 삶을 대하는 자세를 닮고 싶다. 애초부터 주어진 것이 다르고 처해진 환경도 다른데 같은 삶을 살 수 있을 리 없지 않은가.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에 따르면 인생은 탄생과 죽음 사이의 선택이다 (Life is C between B and D). 매 순간 크고 작은 선택을 하며 따라오는 결과는 시간이 지나서야 알 수 있기에 우리는 현재의 선택이 미래의 나에게 최선이기를 바랄 뿐이다. 앞을 예측할 수 없는 것은 누구에게나 주어진 기본 값이다.  


  인생의 갈림길에서 선택을 하는 기준은 다 다르다. 삶의 시기에 따라 다르기도 하고, 처한 경제적 상황이나, 건강, 심리, 종교 또는 주위의 영향도 많이 받는다. 그럴 때 흔들리지 않고 옳은 결정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가치관의 차이다. 무엇이 삶의 최우선에 오는가 하는 것이다. 남들과는 다른, 의외의 선택일지라도 믿음을 가지고 밀고 나갈 수 있는 것은 삶의 방향을 알고 있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이다. 그 여유를 갖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매달 나누는 것은 삶과 죽음과 그 사이의 선택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사실 이 분의 삶의 태도가 어떤 결과들을 가져오는지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다. 때로는 용기가 없어, 때로는 게으름과 나태함에 패배해 도전해 보지 않았던 크고 작은 기회들이 아쉬움으로 돌아오는 시간이기도 하다. 지금의 내 인생은 과거의 내가 선택한 결괏값이기 때문이다. 당시의 내 선택과 지금의 선택이 다르다면 그것은 삶을 마주하는 태도, 즉 가치관의 차이가 불러온 결과일 테다. 


  나머지 시간에는 마음의 거울을 닦아 보려고 한다. 먼지가 점점 내려앉는 걸 알면서도 애써 마주하지 않던 거울을 오랜만에 꺼내 들어 다시 반짝이게 만들어 주어야겠다. 그래야 몰랐던 구석도 비추어 새로운 발견도 하게 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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