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워즈의 대척점에 서 있는 작품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2001 스패이스 오디세이, 이 영화는 매우 지루하기로 유명하다. 2시간 30분쯤 되는 러닝타임에 초반부 20분 정도는 유인원들의 진화과정을(그것도 매우 느린 속도로) 지켜보아야 하고 HAL9000이란 인공지능과 주인공 데이브와의 싸움에서는 산소가 없으면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아주 간단한 사실 때문에 소리도 깔리는 OST도 없이 몇 분 동안 데이브가 HAL9000을 분해하는 장면을 봐야 한다. 그뿐만인가, 결말쯤 가면 목성 궤도에 도착한 데이브는 갑자기 이유도 없이 나이를 먹어 노인이 되고 갑자기 새로운 아기가 나타나 그 아기는 지구를 바라보며 굉장히 어디서 들어봤을 법한 유명한 OST가 깔리며 영화는 끝난다.
참고로 내가 영화보다 꿈꾸고 쓴 글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진짜다. 못 믿겠으면 한 번 봐봐라. 이런 지루한 영화를 끌고 온 이유가 무엇일까? 그저 읽는 독자들을 고통스럽게 하기 위해? 조회수도 안 나오는데 그런 짓을 하겠냐만은. 내가 이 영화를 끌고 온 이유는 이 영화가 위대해서이다. 뭔 알지도 못할 철학 이야기를 하지 않고도 2001 스패이스 오디세이는 꽤나 재밌는 작품이고(최소한 난 재밌었다.) 스탠리 큐브릭의 닥터 스트레인지 러브, 시계태엽 오렌지와 함께 최고의 작품으로 뽑고 싶다. 그 이유에 대해선 다음 단락부터 설명을 시작하겠다.
2001 스패이스 오디세이는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해 준다. 대표적으로 처음 모노리스(2001에 나오는 기다란 돌)에 몰려있는 유인원 장면을 봐보자. 이 모노리스란 돌은 근처에 있는 생명체의 의식을 한 단계 더 높게 진화시켜주는 것처럼 보인다. 이 모노리스를 외계 생명체가 두고 갔다고 볼 수 있다. 소설판까지 읽어본 내 입장으로선 외계 생명체가 두고 간 것이 확실하다. 그런데 왜 무슨 이유로 이 모노리스를 두고 간 것일까. 그리고 모노리스는 과연 인류를 선택한 것일까, 아니면 우연히 인류가 그 자리에 있었으므로 진화의 대상이 된 것일까. 영화는 명확하게 밝혀주지 않는다. 그리고 여기까지 봤을 때는 무기(뼈)를 사용하는 모습을 통해 모노리스란 돌이 인간의 진화를 촉진시킴과 동시에 인류의 폭력적인 면도 촉진시켰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뼈다귀를 던지고 그 뼈다귀가 우주선으로 변하는 장면, 이 장면은 문명의, 더 나아가 인간이란 종이 모노리스로 인해 폭력적으로 변했음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영화는 오랜 시간에 걸쳐 지루하게 느껴질 정도로 우주 풍경과 여러 위성들, 그리고 고증 면에서 훌륭한 장면들을 보여준다. 승무원들이 머리카락을 감추어 무중력 상태에서 머리카락이 돌아다니지 않게 하는 장면이라던가 뉴스 기자와 인터뷰를 할 때에도 약 7분 정도의 시차를 갖고 인터뷰를 하는 등 훌륭한 고증들을 감독은 강조도 하지 않고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흘려보낸다.
그 후 달 뒤에 탐사선이 도착하고 달 뒤에 있는 모노리스를 발견한다. 뜬금없겠지만 나는 2001 스패이스 오디세이를 종교적인 영화라고 생각한다. 머나먼 곳에서 온 전지전능한 외계인(신)의 선택을 받은 인간이 시련을 겪다 그 시련을 통과하고 더욱 진화한 인간이 된 것, 그것이 이 영화의 주 내용이라고 본다. 여기서 시련을 주는 인물은 바로 HAL이다. HAL은 인간에 의해 창조되었으나 인간보다 더 뛰어난 존재이다. 외계인들은 인간들에게 HAL9000이란 시련을 주어 잘 통과할 수 있는지 알아보게 모노리스가 HAL에게 감정을 만들어준 건 아닐까. 그리고 HAL이란 자신이 만들었고 자신의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존재까지 이기고 나서 인류는 비로소 인정받고 스타차일드란 존재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 영화를 좋아하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 있는데 그중 첫 번째는 인류의 폭력을 너무나도 함축적으로 잘 나타내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무기로 쓴 뼈를 하늘로 던지고 그 뼈가 인공위성이 되는 장면은 인류의 모든 문명에는 폭력이란 뿌리가 있었음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고증이다. 2001 스패이스 오디세이는 단순히 고증을 잘 지킨 것을 넘어서 고증을 통한 연출이 들어갔다. 대표적으로 HAL9000을 해체하러 갈 때 아무런 대사도 소리도 들리지 않는데 그 이유는 산소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관객들은 이러한 공백 기간을 참지 못한다. 지구에서 살아왔고 소리가 들리는 것에 너무나도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몇몇 감독들은 고증을 지키면서도 OST를 깔아 공백 기간의 부자연스러움을 감춘다. 그러나 2001 스패이스 오디세이는 우주는 조용하다는 한 법칙을 완벽하게 지켰고 그리고 이러한 선택은 다른 우주 영화들과 다른 또 다른 긴장감을 선사했다고 본다. 우주 영화를 만드는 법은 세 가지 있다. 2001처럼 만들 것인가, 스타워즈처럼 우주에서도 소리가 지구에서 처럼 나게 만들 것인가, 아니면 그 중도로 OST 등을 활용해 관객들의 귀를 속일 것인가.
세 번째로는 적절한 음악 활용이다. 스타차일드가 탄생할 때 감독은 차라스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OST를 삽입한다. 니체의 신은 죽었다는 문구대로 우리가 알고 있는 신은 죽었고 우리 자신들이 신과 같은 스타차일드란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런데 몇몇 사람들은 이 OST를 넣은 이유가 니체의 철학을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하지만 내 의견은 좀 다르다. 니체의 사상은 위버 맨시 사상인데 이 사상의 위버 맨시(초인)가 되기 전 마지막 상태가 갓난아기란 점에서 언뜻 보면 2001과 비슷하다. 하지만 감독이 어느 정도 니체의 사상을 참고했는지는 몰라도 니체의 철학을 완벽하게 다룬 작품은 아니다. 우선 2001 스패이스 오디세이와 위버 맨시 사상의 가장 큰 차이는 초월적인 존재가 나서서 우리를 도와주는가 이다. 2001 스패이스 오디세이는 초월적인 존재가 모노리스를 통해 인류에게 등장해 인류를 도와준다. 이 모노리스를 뿌린 외계인은 우리의 입장에서는 신적 존재이다. 하지만 위버 맨시 사상은 스스로 노력해 초인이라고도 불리는 위버 맨시가 되는 것이고 무엇보다 니체는 신의 존재를 부정했다.
2001 스패이스 오디세이는 결국 니체의 사상을 담았다기보다는 몇몇 부분에서의 차용은 있었으나 전체적으로는 니체의 사상과 거리가 멀다는 점을 알 수 있다. 2001 스패이스 오디세이는 미지의 신적인 존재를 종교적으로 그린 작품인 것이다.
이러한 스토리적 완성도에 고증까지 2001 스패이스 오디세이는 명작의 반열에 오를만한 작품이다. 그리고 오를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그 누구도 이러한 영화를 다시 만들어낼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계속해서 시리즈가 나오는 스타워즈와 달리 2001은 단발성으로 끝난 영화이고 무엇보다 2001이 너무나도 완벽해서 리메이크될 일도 없을 것이라 보기 때문이다. 이처럼 SF의 인식을 높이고 신적인 외계인들에 대한 고찰을 다룬 작품 2001 스패이스 오디세이를 한 번 봐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