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배려.
용산역에서 기차를 타기전에 열차시간이 남으면 종종 같은 건물에 있는 영풍문고를 간다. 오늘도 어김없이 일찍 도착해서 책을 보러 영풍문고를 갔다가 시간이 되어 기차를 타러 가는 길이었다. 투명한 출입문 너머로 저 멀리서 한 아주머니 분이 나랑 눈이 마주쳤다. 출입문을 두고 나는 5발자국이면 닿을 거리고 그분은 10발자국 정도 거리였다. 나는 보통사람보다 걸음이 빠르니 먼저 출입문에 손이 닿은건 나였고 그분은 아직 5발자국 남아있는 거리였다. 나는 '미세요'를 보고 출입문을 밀었다.
보통이었으면 문을 크게 '휙'열고 그 닫히는 시간을 벌어주는 방식을 택했을텐데 아주머니가 내가 열은 문을 잡으려고 열심히 뛰어오셨다. 나는 잠시 멈추어 문을 잡아드렸고 아주머니와 바톤터치를 할수 있었다. 아주머니가 출입문을 잡고 나는 내 갈길을 가기위해 발걸음을 내딛는 그 순간, 뒤에서 들리는 '고맙습니다' 하는 아주머니의 인사가 들렸다. 나도 '괜찮습니다'하고 크게 인사를 했다.
인사를 하고 돌아서면서 뉴욕을 여행했을때의 일이 떠올랐다. 백화점을 구경하고 나오는데 내 앞에 있는 뉴요커가 문을 잡아주었다. 얼떨결에 내 입에서 '때...땡큐~'라고 말을 했다. 그 뉴요커는 쿨하게 '웰컴'하면서 갈길을 갔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의 뒷모습에서 후광이 비춰졌다. 타지에 혼자와서 현지인의 배려를 받아본것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문을 잡아주는 문화는 우리나라에만 있는줄 알았는데 아름다운 매너는 뉴욕에서도 있는것을 보고 새삼 놀랐다. 그때 뉴요커의 따뜻한 마음씨가 오늘 다시 느껴졌다.
그 뒤로 남은 여행기간 동안 많은 사람들이 문을 잡아주었고 나 역시도 즐거운 마음으로 문을 잡아주었다. 외국인들이 내가 문을 잡아줄때마다 '땡큐~'라고 인사했고, 나도 나름 뉴욕커처럼 목소리에 힘을 주고 '웰컴'이라고 대답했다. 혼자 여행하는 동안 음식 주문할때 빼고는 말을 할일이 없었는데 문 때문에 짧게 나마 인사를 주고받아서 말도 하게 되고 마음이 따뜻했었다.
코로나로 인하여 사람들이 출입문이나 엘리베이터 버튼을 잡아주는 배려가 많이 사라진 요즘인데, 예상치 못한 아주머니의 인사로 별거 아니지만 마음이 따뜻해지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