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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플 May 19. 2021

많은 공항을 거쳐 이틀만에 남미의 끝에 닿았다

파타고니아 다이어리 2017 #1

12월 2일

밴쿠버 공항


전철을 타고 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다섯 시 이십 분이다. 키오스에서 보딩패스를 뽑아 바로 출국장으로 들어갔다. 검색대에는 이미 사람들의 줄이 길게 늘어서 있지만, 넥서스 라인으로 가서 기다리지 않고 검색대를 통과하여 미국 입국 심사를 받았다. 캐나다 공항은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만 타는 곳이 따로 있다. 캐나다 공항에서 미국 입국 심사를 미리 받고 비행기를 타기 때문에 국제선보다 수속이 더 오래 걸려서 적어도 세 시간 전에는 공항에 가야 한다.


오늘은 한 시간도 안 걸려서 수속이 끝나고 탑승시간까지 두 시간 넘게 시간이 남았지만, 이번 여행은 여러 번 비행기를 갈아타고 이틀 동안 가야 하기 때문에 공항에서 에너지를 아껴야 한다. 스타벅스에 들려 커피를 사는 것도 귀찮아서 게이트 번호를 확인하고 바로 게이트로 가서 탑승 시간을 확인하고 자리를 잡고 기다린다. 책도 가져가지 않기 때문에 기다리는 동안 셀폰으로 드라마를 본다. 데이터가 많이 날아가지만, 이번 달 남은 데이터를 다 쓰고 떠날 생각이다.  


피닉스로 가는 비행기는 소형인가 보다. 탑승게이트에서 비행기가 작아서 오버헤드에 기내 가방이 안 들어갈 수 있으니 체크인을 하라는 방송이 나왔다. 이번에는 기내용 가방과 삼십오 리터짜리 배낭 하나만 갖고 떠나는 거라 체크인을 안 했는데 방송이 나와서 기내 가방만 체크인으로 보내고 탑승했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한참을 구름 속으로 날아가다가 구름을 벗어나자 아래로 사막이 보였다. 미국의 중부 어딘가를 날고 있는 모양이다.


피닉스 공항


열두 시 사십 분에 도착해서 환승할 게이트 번호를 확인하고 바로 게이트로 간다. 피닉스는 처음이라고 생각했는데 와서 보니 한 번 환승을 한 적이 있었다. 저녁에 비행기가 공항으로 내려앉을 때, 사막 한가운데서 반짝이는 도시의 불빛이 화로에 담긴 잿속의 불씨 같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어제저녁 미리 싸 둔 김밥을 밴쿠버 공항에서 하나 먹고, 남은 한 개를 점심으로 먹는다. 미국으로 오는 비행기들은 식사는 물론이고 음료수도 주지 않는다. 공항에서 사 먹는 건 번거로워서 미리 준비를 해오는 것이 제일 좋다. 커피가 마시고 싶지만 가방을 끌고 커피 사러 가기가 귀찮아서 그만 물만 마신다.


탑승이 시작되었다. 마이애미행 비행기는 새 거여서 좌석에 모니터가 있다. 모니터로 보석 게임을 한다.  23 레벨까지 하고 눈이 아파서 그만둔다.  


마이애미 공항


동쪽으로 가고 있기 때문에 하루가 짧아지고 있다. 마이애미에 도착하니 이미 저녁이다. 환승시간은 한 시간 가까이 남았는데 게이트까지 걸어가는데만 삼십 분이 걸린다. 피닉스 공항에서 다 먹지 못하고 남아있는 김밥을 마저 먹고 나니 다시 비행기에 탑승할 시간이 되었다.


열 시 오십오 분, 칠레 산티아고 행 비행기가 출발했다. 이륙하자 바로 저녁식사가 나왔다. 미국 공항 두 곳에서 아무것도 사 먹지 않고 미국을 통과해가고 있는 중이었다. 식판을 걷어가고 바로 안대를 쓰고 잤다. 이코노미 좌석에서 자는 잠은 한없이 불편하고 몸이 저려서 자꾸만 뒤척이고 깊이 잘 수가 없다. 자다 깨다 하는데 아침식사가 나오는 소리에 잠이 완전히 달아났다. 주스와 요구르트만 먹고 빵은 어제저녁 식사에서 남긴 비스킷과 같이 챙겨 넣는다. 비행에서 주는 음식 중에 남긴 것들을 잘 챙겨두면 필요할 때는 비상식량이 되어주기도 한다.   


동쪽을 더 이동했기 때문에 시간이 더 빨라졌다. 지도를 볼 때는 무심했는데 여행을 하다 보니 남미는 북미대륙보다 동쪽에 있다. 그래서 밴쿠버에서 직선으로 내려가지 않고 동남쪽으로 이동한다. 캐나다 동부로 가서 갈아타고 남쪽으로 내려가거나 미국 중부 어디쯤에서 한 번쯤 갈아타고 대각선으로 가거나 한다.  


12월 3일

칠레 산티아고 공항


꼬박 하루를 공항 세 군데를 거치면서 날아와 오전 열 시 십오 분, 칠레의 산티아고 공항이다. 이게 끝이 아니지만, 우선 칠레에 입국을 해야 한다. 입국하는데도 보안검색대를 통과하고 세관신고서를 쓰고 입국 수속을 하고 세관검사를 받았다. 입국심사는 별말 없이 지나갔다.


산티아고에서 푼타 아레나스(Punta Arenas)로 가는 국내선은 입국심사도 얼마나 걸리지 모르고 혹시 전 비행기가 연착될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환승시간을 여유 있게 잡았더니 환승하기까지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버렸다.   


LATAM 데스크에 가서 혹시 일찍 출발하는 비행기로 바꿀 수 있는지 물어보니 안된다고 했다. 할 수 없다. 기다려야 한다.


오늘의 최종 목적지는 푸에르토 나탈레스(Puerto Natales)다. 비행기로 푼타 아레나스까지 가서 거기서 다시 버스를 타고 네 시간쯤 더 가야 한다. 무사히 버스를 탈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다행히 버스를 타면 한밤중에 도착할 것이고, 버스를 타지 못하면 푼타 아레나스에서 하루를 묵어야 한다. 여행에서 확실한 것은 별로 없다. 모든 것이 낯설고 예측하기 어렵다. 일상에서 누리는 평안과 안정감은 예측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오전인데 아직도 밤인 듯 약간 몽롱하고 나른하다. 오후 2시까지 기다리는 시간은 무료하다. 점심을 별로 먹고 싶지 않아서 주스만 마셨다.


푼타 아레나스 행 비행기는 정시에 탑승을 시작했지만, 이륙하기까지는 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역시 기내용 가방이 오버헤드 짐칸에 들어가지 않아서 게이트에서 체크인을 했다.


푸에르토 몬트 공항


비행기는 푸에르토 몬트(Puerto Montt)에 중간 착륙했다. 탑승객의 삼분이 정도가 내리고 그만큼의 새 탑승객을 태우고 다시 이륙했다.


푼타 아레나스 공항


세상의 끝이라는 우수아이아가 파타고니아의 최남단에 있는 도시이지만, 우수아이아는 아르헨티나에 있고 칠레의 최남단 도시는 푼타 아레나스다. 남극기지로 가기 위해서는 푼타 아레나스를 거쳐간다.


일곱 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비행기는 푼타 아레나스 공항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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