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의 사물 #5
Image by OpenClipart-Vectors from Pixabay
사진 찍는 것이 직업이거나 하이엔드 취미로 삼는 사람이 아니면 요즘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사람은 별로 없다. 대부분이 휴대폰을 사용해서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지금 휴대폰에 달린 사진 기능이 초기 디지털카메라보다 화상도와 기능보다 훨씬 좋은 것도 사실이다.
옛날 내가 태어나고 자라던 어린 시절에는 집에 있는 카메라는 아버지가 가지고 계시던 필름 카메라가 유일했고, 그 카메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사람은 아버지뿐이셨다. 그러니까 내 어릴 적 사진은 모두 아버지가 찍은 사진들이었고, 집에서 찍은 것들이거나 가끔 가족 여행을 가서 찍은 것들이었다.
어릴 적 사진들은 흑백이다가 칼라 사진이 등장했다. 카메라가 바뀐 것이 아니라 흑백 필름 대신 칼라용 필름을 사용하면 되었던 것 같다. 친구들과 놀러 갈 때 카메라를 가져가기 위해서는 아버지의 허락을 받아야 했고, 필름을 어떻게 사진기에 넣는지 배워야 했다. 필름은 장수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사진을 찍을 때 신중해야 했다. 그렇게 찍어온 것은 필름을 빼서 사진관에 갖고 가서 현상을 해야 했다. 1장씩 뽑아진 사진을 보고 빛이 들어가서 못쓰게 된 것이나 초점이 안 맞는 것은 빼고 사람 수대로 사진을 다시 뽑아서 친구들과 나누어 가지곤 했다.
드디어 디지털카메라가 나왔고 드디어 필름을 버릴 염려 없이 찍고 싶은 대로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되었다. 단지 사진을 보관할 저장매체만 있으면 되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드디어 내 돈으로 카메라를 장만했다.
카메라로 찍은 사진은 현상을 할 수 있었지만,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사진은 현상을 하지 않고 컴퓨터나 하드 드라이버 같은 곳에 저장된 상태로 우리 기억 속에서 점점 잊혔다.
이제는 휴대폰이 디지털카메라를 대체했다. 폰을 열면 언제나 사진을 찍을 수 있고 휴대폰의 저장용량도 커져서 지금까지 찍은 사진들이 사진첩을 가득 채우고 있고 언제든지 열어서 볼 수 있고, 그 사진들을 SNS에 올릴 수도 있다.
버리지 않고 가지고 있는 디지털카메라는 더 이상 쓸 일이 없어져 버렸다. 작년 초에 팬데믹이 시작되고 집에서 화상회의를 할 일이 많아지면서, 데스크톱 컴퓨터에 카메라가 달려있지 않은 경우에 디지털카메라를 연결해서 쓸 수 있다고 쓰지 않던 디지털카메라의 쓰임새가 새롭게 발견되기도 했지만, 디지털카메라는 사라져 갈 것이다.
오랫동안 쓰지 않던 카메라를 꺼내 보았다. 그래도 한 동안 나의 여행에 동행하며 그 여행의 추억을 기록해주었던 물건인데 다시 이 카메라로 사진을 찍을 일이 있을까 싶다.
쓰임새를 잃어버린 물건과 어떻게 이별해야 할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쓰임새는 없어졌지만, 그래도 이별할 때가 지금은 아닌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