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의 사물 #4
지금 내가 차고 있는 것은 핏빗 차지(Fitbit Charge) 차지이다. 애플 와치(Apple watch)나 삼성 갤럭시 와치(Galaxy watch)는 스마트 와치(Smart watch)라고 하는데 핏빗은 스마트밴드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이것 말고도 손목시계가 다섯 개쯤 더 있지만, 요즘 다른 시계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사용할 수가 없다. 요즘 나오는 시계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전지가 들어가는 시계들인데, 캐나다에서는 시계 전지가 비싼 편이고 시계의 전지를 갈아주는 곳이 많지 않아서 보통 한국에 나갈 때 시계의 전지를 갈아 끼우는데 문제는 동시에 전지를 갈아 끼운 시계들은 비슷한 시기에 죽어버린다는 것이다. 한국을 다녀온 지 오 년이 넘어서 다섯 개의 시계 모두 죽어 있다.
지금 쓰고 있는 핏빗 차지는 두 번째 구입한 것이다. 구입한 것으로 두 번째인데 실상은 세 번째 것이다. 처음 구입한 것은 미국 휘트니산에 등산을 갔다가 트레킹 폴 손잡이 쓸려 나가면서 잃어버렸다. 폴대는 찾았는데 시계는 눈 속에 묻힌 채 찾지를 못했다. 다시 구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화면에 줄이 생겨 클레임을 해서 새것을 받았는데 일 년 반 만에 이번에는 화면이 완전히 나가버렸다. 이번에는 보증기간이 지나버려 클레임도 못하고 할 수 없이 화면에 줄이 간 걸 다시 꺼내어 사용하고 있다. 글자가 좀 흐려 보이지만 기능에는 큰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핏빗은 시간을 알려주는 기능 외에도 걸음 수와 걸은 거리, 심장박동수와 수면시간 같은 것도 도 체크할 수 있고, 폰만 가까이 있으면 톡을 핏빗에서 바로 읽을 수도 있다. 시계로서 보다는 다른 기능 때문에 핏빗을 사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시계란 원래 시간을 알려주기 위해 만들어진 물건이다. 자연의 법칙에 따라 살던 사람들에게는 해 뜨면 아침이고 해가 중천에 올라가면 한낮이고 해가 지면 저녁이라 생각하면 살았겠지만 시간을 재려는 노력을 했을 터이고 주로 해의 그림자에 따라 시간을 재려는 시도가 제일 많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근대의 시계는 정교한 톱니바퀴들이 돌아가는 장치들로 큰 시계나 손목시계나 크기만 차이 났을 뿐 원리는 비슷했을 것이다.
옛날 우리 집 거실에 걸려있던 시계는 둥근원의 추가 왔다 갔다 하는 길쭉한 괘종시계로 시간마다 땡땡 시간만큼 울리는 것으로 그 당신에는 집집마다 하나씩 있는 그런 흔한 것이었다. 아마도 중학생이 되고 나서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처음 가져본 손목시계는 옆에 달린 태엽을 감아주어야 하는 그런 시계였다.
세상은 천지개벽을 해서 이제 대부분의 시계들은 전지로 가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이제는 집 벽에 걸린 시계 외에도 너무도 여러 곳에서 시간을 확인할 수 있다. 집안의 거의 모든 전자기기들이 시간을 알려주고 있고, 사람들은 손목시계를 보는 대신 휴대폰을 열어서 시간을 확인하는 경우가 더 많다.
시간을 알기 위해서 손목시계를 지녀야 할 이유가 거의 없는 시대를 살고 있는 지금 시계는 왜 존재하는 것일까 라는 질문을 해본다. 시간을 알기 위해서 굳이 손목시계를 보지 않아도 되다는 관점이라면 손목시계가 없는 사람이 많을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을 알려주는 기능 외에 여러 가지 다른 기능들을 추가하거나, 아니면 시계가 단지 생활에 필요한 물품이 아니라, 패션의 하나의 아이템으로 살아남았기 때문에 단지 하나의 손목시계를 갖고 있기보다는 여러 개의 시계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훨씬 많아졌다.
내가 갖고 있는 시계들의 습득 경위를 생각해보아도 그렇다. 어쩌다 갖게 된 습득물인 가짜 구찌 시계와, 호주에 연수를 갔다가 호주에서 유명하다는 오팔이 시계판으로 들어가 있는 것을 기념으로 구입한 것, 이민 올 때 선물 받은 그때까지 다니던 직장의 로고가 찍힌 시계, 미국 아웃렛에서 반값으로 구입한 포실 시계, 제일 최근에 구입한 것이 힐필거 시계인데, 모두 10년이 넘은 것들이라서 전지를 갈면 사용할 수는 있겠지만, 사용하지도 않을 시계들을 굳이 전지를 갈아야 할까 싶기도 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꼭 필요하지도 않았는데 사게 된 것들이다.
사용하지 않는 다섯 개의 시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그렇게 죄스러울 일은 아니지만,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을 사모으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면서 살아왔다는 생각이 조금 들기는 한다. 하긴 시계 외에도 필요치 않는 많은 것들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우리 주위의 너무 많은 시계가 알려주는 시간을 보면서 살다 보니 자연의 자연스러운 흐름의 시간을 잃어버리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매일 언제 해가 뜨는지 언제 해가 지는지와 상관없이 똑깥은 시간에 일어나서 출근을 해서 일을 하고 불빛 찬란한 도시 속에서 밤을 잃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을 본 일출은 언제였고, 일몰을 본 것은 언제였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