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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플 May 24. 2021

분실과 망각에 대처하는 마음의 자세

캐나다이민 살이#3 ; 늙어감에 대한 생각 #2

Image by Clker-Free-Vector-Images from Pixabay 


컴패스 카드 (밴쿠버 광역시에서 사용되는 교통카드)와 직장 사원증을 잃어버렸다. 재택근무를 하고 있지만, 올해 초부터 일주일에 한 번 사무실로 출근을 하고 있다.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퇴근하는 길에, 버스에서 전철로 갈아타면서 카드를 찍었는데, 집 앞 역에 도착해서 내리려고 하는데 카드가 없었다. 신분증을 넣어서 목에 걸 수 있는 카드홀더였는데 목에 거는 줄과 연결하는 부분이 부러져서 주머니에 넣어서 다녔는데, 하필이면 그날 옆 주머니가 얕은 쟈켓을 입고 있어서 어디선가 주머니에서 빠져 떨어진 모양이었다.   


원래 나는 뭘 잘 잃어버리는 편이다. 정신을 딴 데 파니까 그런 거라고 어머니로부터 지청구를 자주 들었다. 연필이나 지우개 같은 사소한 물건을 비롯해서 장갑, 우산 모자 같은 것들부터 지갑도 여러 번 잃어버렸다. 아무리 신경을 써도 물건들은 아차 하는 순간 나를 떠나갔다. 깨닫게 된 것은 물건이 나를 떠나는 그 찰나의 순간은 도둑처럼 내 인생에 찾아온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나의 '잘 잃어버림'을 잘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대신 그 순간이 찾아와도 뭔가를 잃어버리더라도 손실을 줄이는 쪽으로 대책을 세웠다. 


첫 번째가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않기” 전략이었다. 열쇠들을 하나의 뭉치로 해놓지 않는다. 집에 들어오려면 아파트 현관에 사용하는 열쇠와 집 현관 열쇠는 같이 묶어놓지만, 차 열쇠와 사무실에서 사용하는 열쇠는 각각 따로 키링에 달아두고 한꺼번에 들고 다니지 않는다. 


두 번째가 손에 들고 다니는 물건의 개수를 줄인다. 손에서 놓쳐도 몸에 붙어 있을 수 있게 해 둔다. 손에 들고 있는 대신 가방에 넣고 흘리기 쉬운 물건들은 줄을 달아둔다. 모자나 선글라스에 줄을 달아두는 것이 도움이 되었다. 클립 귀걸이 대신 귀를 뚫어서 침형태의 귀걸이를 하는 것도 분실을 줄이는데 도움이 되었다. 


세 번째로는 심하게 아끼는 걸 잃어버리면, 속이 상하니까 속이 상하지 않으려면  물건에 대한 애착을 갖지 않는 것이 도움이 된다. 비싼 귀걸이, 목걸이나 반지 같은 장신구를 하지 않으면 잃어버릴 경우의 수가 줄기도 한다. 


마지막으로는 잃어버렸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놓는 것이다. 특히 여행할 때, 여권이나 카드를 분실했을 때 어디에다 신고해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아놓으면 실제로 도움이 된다. 여권의 첫 번째 페이지를 복사해서 항상 따로 보관하고 신용카드 분실 시의 백업 플랜을 마련해둔다. 


나이가 들면서 잃어버리는 일이 좀 줄어들긴 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재택근무를 하면서 집에서 잘 안 나가서 그런지 오랜만에 뭔가를 잃어버렸다. 잃어버린 걸 안 순간, 사고가 잠시 정지된다. 아... 좋게 된 참에 요팟시에 사연이라도 써볼까 하는 생각을 잠시 생각했다. 그렇다. 나는 <요즘은 팟캐스트 시대>의 애청자이다 헷.


정신을 차리고 혹시 싶어서 앉았던 자리 밑도 살펴보았지만 의자 밑에도 없다. 우선은 전철에서 내렸다. 교통카드가 없으니 역에서 나올 수가 없어서 로비에 서 있는 시큐리티에게 가서 "나 교통카드 잃어버렸어. 나 좀 나가게 해 줄 수 있어?" 물었더니 게이트를 열어 주었다. 그에게 다시 혹시 누군가 카드를 주워서 분실물 센터(Lost & Found)로 보내면,  언제쯤 알 수 있는지 물어보니 운행이 끝나고 각 역에 있는 걸 모아서 보내니까 다음날 전화해보라고 한다. 사실 물건을 잃어버려도 분실물 센터에 물어보지 않는다. 비싼 파라솔을 전철에서 잃어버려서 딱 한 번 전화해본 적이 있는데 그때는 찾지 못했다.  


집에 와서 컴패스 카드 사이트에 접속해 보니 다행히 내가 전철역에서 갈아탄 기록만 나오고 그 이후에 사용한 기록은 없다. 카드 분실 신고를 해서 카드를 정지시키자 새 카드를 보내줄지 말지를 묻는다. 다시 찾을 가능성이 희박하므로 새 카드를 신청했다. 


직장 웹사이트에 나오는 카드 분실 시 프로토콜은 첫 번째가, 직장 직속 상사에게 알리는 것이다. 그래서 이멜을 보냈다. 카드의 중요한 기능이 건물에 들어가기 위한 액세스 키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분실 시 보완 담당부서에 신고해야 하는데 그 신고는 상사가 하게 되는 모양이다. 


카드를 분실신고를 하면 다시 찾아도 다시 사용할 수 없고, 무조건 새 카드를 발급받아야 한다고 나와 있다. 분실신고를 하고 나서 해야 하는 것은 새 카드 발급 신청이다. 직장이 학교이다 보니 사원증이 학생증과 똑같이 생겼고 학생증과 비슷한 기능을 한다. 도서관 이용증이기도 하고, 학교 카페테리아에서 음식을 할인해서 사 먹을 수 있는 밀 플랜이 카드로도 이용된다. 


마지막으로 밀 플랜을 중지시키라고 나와 있는데 들어가서 확인해보니 내 카드에 남아 있는 밀 플랜 잔액은 20불 정도이다. 절차도 번거롭고 누가 카드를 줍는다 해도 학교 카페테리아까지 가서 돈을 쓰지는 않을 것 같아서 이건 운에 걸어보기로 하고 그냥 두었다. 


카드 발급 신청을 이멜로 보내는 것으로 당장 해야 할 일은 끝났다. 분실 시 카드 발급은 16불을 내야 한다고 나와 있었다. '조금 좋게 되겠군.' 싶은 생각이 들었다.  


새 컴패스 카드는 일주일도 되지 않아 집으로 날아왔다. 새 카드 발급비 6불이 컴패스 카드에 등록된 신용카드에서  빠져나갔고, 남아있던 잔액이 새 카드로 옮겨졌다. 


직장의 카드 발급하는 부서에서 연락이 왔다. 내 카드의 사용 만료일이 얼마 남지 않아서 분실 시 받는 카드발급비는 받지 않겠다고 했다. 앗싸! 사진을 찍어 보내자 바로 카드는 만들어졌고 그다음 주 출근하는 날 카드를 받을 수 있었다. 


상황은 거의 종료되었는데, 어쩐지 전화를 해보고 싶어서 분실물 센터로 분실 다음 날 전화를 해보니 요즘 팬데믹 때문에 물건들도 3일간 격리해두었다가 센터로 온다고 3일 후에 전화를 해보라고 했다. 정확히 삼일 후에 전화를 해지만, 카드는 없다고 했다. 그런데 사무실로 출근한 날, 분실물 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내 분실물이 들어왔다고. 처음 전화했을 때 전화번호를 남겼기에 그쪽에서 다시 연락을 준 것이었다. 


퇴근하고 분실물 센터에 들려서 내 분실물인 카드 홀더를 찾았다. 카드 두 개가 고스란히 들어 있었다. 사원증은 어차피 못쓰게 됐지만, 컴패스 카드는 환불을 받을 수 있었다 컴패스 센터는 분실물 센터가 있는 그 역의 바로 위층이라 바로 센터로 가서 환불을 요청했다. 


직원이 신분증을 확인하더니 보완 질문에 답을 해야 한단다. 요즘은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만들 때 보안질문과 답을 넣어야 하는 곳이 많은데 컴패스 카드 등록할 때도 그랬다. 뭐 내가 한 것이니까 알겠지 싶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은 장소는 어디냐?”는 질문에 어?? 싶다. 어디지. 자신 없는 목소리로 파타고니아? 하니까 아니란다. 컴패스 카드는 5년도 더 넘게 사용했는데 파타고니아를 다녀온 건 4년 전쯤이니 아니겠구나.. 그럼 하면서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아메리카 아닌 지역이란다. 그럼 네팔과 스페인 둘 중의 하나이다. 스페인? 하니까 맞단다. 기쁜 마음으로 6불을 받아서 나왔다. 


그러고 보니 이번 분실 사건에서 잃은 것은 없다. 카드홀더도 찾았고 둘 다 새 카드를 발급하긴 했지만 카드 발급에 돈이 쓰지 않았다. 그런데 뭔가 조금 좋게 된 기분이 든다. '앞으로 물건도 잃어버리고 기억도 잊어버리는 삶을 살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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