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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플 May 27. 2021

토레스 델 파이네의 마침표

파타고니아 다이어리 2017 #7, 토레스 델 파이네 O 트레킹

12월 12일 (트레킹 7일 차)


드디어 토레스 델 파이네 Torres del Paine의 삼봉을 보러 가는 날이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날씨는 좀 흐렸지만 비는 그쳐 있었다. 식당으로 내려가서 아침을 먹는데, 일출을 보기 위해 새벽에 올라갔던 사람들이 벌써 내려오고 있었다. 비는 오지 않았지만 날씨는 썩 맑지 않아서 일출은 별로 였다고 했다. 아침을 먹고 점심 도시락을 받고 가방을 꾸렸다. 날씨는 점점 맑아지고 있었다.


칠레 산장-전망대


칠레 산장에서 토레스 델 파이네 삼봉을 볼 수 있는 전망대 Mirador Base Las Torres까지는 3.7킬로미터 밖에 되지 않지만 마지막 500미터는 길이 험해서 올라가는데 2시간 반 정도 걸린다고 했다. 계곡 옆을 따라 올라가는 트레일은 아름답고 평온했다. 나처럼 일출 보기를 포기하고 오전에 올라가는 사람들도 드문드문 보였다.


계곡 옆을 따라가던 트레일이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오르막이 시작되는데, 오른쪽 숲 아래쪽으로 토레스 캠핑장이 보였다. 이 곳은 이탈리아노 캠핑장처럼 무료 캠핑장이라고 나와 있다. 이 캠핑장까지 올라와서 자면 새벽에 일출을 보러 올러갈 만한 것 같았다. 화장실을 가기 위해 토레스 캠핑장으로 내려갔다 왔다.


트레일은 경사도 급해지고 돌길이었다. 돌 사이에 보이는 표식을 찾아 천천히 올라갔다.  


토레스 전망대 Mirador Torres에 올라섰다. 바로 앞에 호수가 있었고 호수 뒤편으로 삼봉이 하늘을 찌르듯이 솟아 있었다. 스페인어 ‘torres’는 영어로 하면 ‘towers’이다. 세 개의 봉우리가 탑처럼 버티고 서 있다.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서 오랜만에 내가 등장하는 사진을 좀 찍었다. 바람의 동네답게 바람이 많이 불어서 바위 뒤편에 앉아 간식을 먹었다. 여우처럼 생긴 동물이 우리 근처로 다가와 사람들 사이을 유유히 걸어갔다.


구름이 바람에 밀려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날씨는 화창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맑게 개여 있었다. 어느 방향으로 바라보아도 멋있었다. 바람을 많이 불었지만 바로 내려가고 싶지 않아사 한참을 앉아 있었다.


내려가는 길은 올라오는 사람이 많아서 올라오는 사람들을 기다렸다가 내려오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다. 당일로 오는 사람들인 모양인지 백팩도 없이 가벼운 차림으로 올라오는데도 힘들어하면서 올라갔다. 마지막 험한 구간을 내려오자 길이 넓어져서 올라오는 사람들이 있어도 내려올만했다.


칠레 산장까지 내려왔다. 오후 한 시. 내려오면서 점심을 먹지 못했기 때문에 산장 밖에 있는 테이블에서 점심을 먹었다. 토레 산장까지 내려가기만 하면 되었다.


칠레 산장이 언덕을 넘어 계곡 아래편에 있어서 다시 언덕까지 올라가야 했다. 언덕을 올라선 후에는 계속 내리막길이었다. 한 시간쯤 내려오자 갈림길에서 라스 토레스 호텔 쪽으로 내려가는 길이 나타났다. 넓은 평원을 가로지르며 난 길을 따라 내려와 계곡에서 흘러내려오는 시내를 다리로 건너자, 길은 완전히 편편해졌다. 길 왼편으로 호텔이 보였다. 호텔은 아주 고급스러워 보였다. 숙소 예약할 때 알아보았는데 산장보다 두세 배는 비쌌다.  


토레 산장 Refugio Torre Central


첫날 지도를 얻어갔던 토레 산장에 도착했다. 로비에서 체크인을 했다. 토레 산장은 라스 토레스 호텔만큼 좋지는 않겠지만, 묵어본 산장 중에서는 시설이 제일 좋았다. 방에 벙커 베드가 있어서 그렇지 다른 시설은 호텔 같았다. 좀 이른 오후 시간이라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씻고 나서 옷을 좀 빨아서 널려고 밖으로 나갔다. 방 앞에 잔디 깔린 앞마당이 널찍했다. 야외 테이블에 옷들을 널어놓고 앉았다.


저쪽에서 한 커플이 신발도 젖었는지 햇볕 잘 드는 곳에 놔두고 맨발로 커다란 백팩에서 옷이랑 슬리핑백을 꺼내 잔디 위에 늘어놓고 잔디밭에 앉았다. 말을 걸기에는 꽤 거리가 있어서 뭘 하는지 보기는 했지만 말은 하지 않았다. 한 시간 가까이 나는 테이블 의자에 앉아 있고 그 두 사람은 잔디밭에 앉아 햇볕 바라기를 했다. 시계를 보더니 늘어놓았던 짐을 주섬주섬 가방에 챙겨 넣고 신발을 다시 신고 떠났다. 돌아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내려가는 모양이었다.


혼자 앉아 있는데 한 중년 남자가 빨랫감을 들고 앞마당에 나타났다. 가져온 줄을 나무에 걸고 빨래를 널고 빨래집게로 집었다. 빨랫줄이 없어서 테이블과 의자에 빨래를 널고 날아갈까 봐 지키고 앉아 있는 나로서는 그의 대단한 준비성에 감탄이 나왔다.


빨래를 말려서 방에 갖다 놓고 바에 가서 트레킹 끝낸 기념으로 맥주를 한 병 마셨다. 저녁 시간에 식당에서 밖에서 빨래를 널던 사람의 그룹에 끼어 앉게 되었다. 그들은 미국에서부터 자전거를 타고 왔다고 했다. 빨래를 널던 남자는 은퇴할 나이라고 보기에는 젊어 보였는데 은퇴했다고 여행을 하면서 자전거를 탄다고 했다. 여행사에서 모든 일정을 짜고 숙소도 미리 예약을 해준다고 했다. 부자 파이어 FIRE족인 모양이다. FIRE는 ‘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의 약자로 젊을 때 열심히 일해서 돈을 모은 후 일찍 은퇴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일찍 은퇴할수록 놀고먹어야 할 백수기간은 늘어나는데 삼사십 년 쓸 돈을 모으기가 쉬운 일도 아니고 모아둔 돈이 돈을 벌어줘야 가능한 일이다.  


12월 13일 (트레킹 8일 차, 마지막 날)


토레 산장 – 공원 사무소


푸에르트 나탈레스로 돌아가는 버스는 오후 2시였다. 느지막이 일어나 아침을 먹고 가방을 정리했다. 여기도 퇴실 시간이 있기 때문에 한정 없이 있을 수는 없었다. 셔틀버스를 타면 금방 갈 수 있겠지만 시간도 있고 해서 버스를 타는 대신 공원 사무소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한 시간 반 정도면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차들이 다니는 길이라 차도 옆으로 조금 비껴 서서 걷다가 트레일이 나오길래 차도를 버리고 트레일을 따라 걸었다. 들판에는 들꽃이 가득했다. 제법 넓이가 있는 강 위의 철교도 건넜다.

공원사무소가 거의 다 와가는데 반대편으로 한 커플이 배낭을 지고 걸어오다가 들꽃 가득한 곳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셔틀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갈 참인 모양이다. 한가한 그들의 모습이 좋아 보였다. 어차피 쉬려고, 놀려고 온 것인데 하나라도 더 보겠다고 급하게 다닌다고 뭐 그리 좋겠는가.


공원사무소 앞에서 프란세스 캠핑장에서 만났던 호주 여자분을 다시 만났다. 프랜치 밸리에 갔다 왔다고 사진을 보였 주었다. 비가 왔던 날이라 경치가 화창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갔다 왔다니 대단하다. 그레이 산장까지 갔다가 파이네 그란데에서 까따마란을 타고 왔다고 했다.


버스 시간까지 좀 남아서 공원 사무소 앞에 퍼질러 앉아 버스를 기다렸다. 버스가 오고 사람들이 주섬주섬 버스에 오른다. 오전에 좀 걸어서 그런지 살짝 졸리고 나른해진 채 푸에르토 나탈레스로 돌아왔다. 버스 터미널에서 호스텔까지도 걸어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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