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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플 Jun 01. 2021

안데스의 휴양지 바릴로체에서 쉼표

파타고니아 다이어리 2017 #11

바릴로체 Bariloche 가는 버스


엘 찰텐의 버스터미널에서 어제 라구나 토레를 내려올 때 올라가고 있던 한국 아가씨 둘을 다시 만났다. 그들도 바릴로체로 간다고 했다. 버스를 기다리며 오랜만에 한국말로 실컷 떠들었다. 바릴로체까지 가는 버스는 엘 칼라파테에서 출발해서 엘 찰텐으로 들러서 간다. 엘 찰텐에서도 36시간이나 버스를 타고 가야 바릴로체에 도착한다. 밤늦게 출발해서 그다음 저녁에 도착하게 된다. 버스에 올랐을 때는 이미 타고 온 승객들에 제법 있었다. 뒤편의 빈자리를 차지하고 최대한 잘 수 있는 준비를 해 보았다. 옷도 따뜻하게 입었고, 안대도 준비했지만 경험해 봐서 알듯 버스를 타고 가면서 잘 자기는 힘들다. 하루 종일 트레킹을 해서 피곤했지만 잘 자지 못했다.  


12월 19일 


버스가 달리고 있는 곳은 루타 Ruta 40. 체 게바라가 오토바이를 타고 남미를 종단했던 그 길 위를 달리고 있었다. 밤에는 어두워서 밖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날이 밝은 후에 하루 종일 보이는 밖의 풍경은 별 변화 없이 황량했다. 황량함의 아름다움이라고나 할까. 미국의 사막의 황량함과는 좀 다른 분위기이긴 했다. 체 게바라는 이곳을 달릴 때 보았던 풍경이 지금 내가 보고 있는 풍경과 많이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몇 달을 오토바이를 타고 이 길을 달려내려온 그는 이 길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궁금해졌다.

On Ruta 40

버스를 탄 후, 밤에 한 번, 그리고 오늘 오전에 한 번 식사가 나왔는데 치즈와 고기가 들어간 빵 한 조각과 초콜릿 과자로 전부였다. 끼니를 때우기에는 턱 없이 부족해서 중간중간 가져온 빵이랑, 초콜릿, 견과류로 허기를 때웠다. 버스는 중간중간 마을에 들러 버스 터미널에 섰는데 버스 터미널 화장실들은 대개 시설도 부족하고, 관리도 엉망이었다. 화장실에 휴지가 있는 경우가 드물었고, 몇 개 안 되는 화장실임에도 사람들이 들어가지 않은 칸은 다 이유가 있다는 걸 배우게 되면서 그냥 긴 줄에 가서 서게 되었다.  


하룻밤과 하루 낮 36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어쨌든 바릴로체에 도착했다. 도착 예정시간보다 한참 늦은 밤 11시였다. 밤늦은 시간이라 한국 친구들과 잘 가라는 인사를 하고 바로 택시를 타고 예약해 둔 호스텔로 갔다. 다행히 12시 전에 체크인을 할 수 있었다. 늦어서 샤워만 겨우 하고 침대 위로 기어 올라갔다. 


12월 20일


이번 여행은 토레스 델 파이네 트레킹 이후의 일정을 정하지 않은 채 출발했지만, 아웃은 페루의 리마였다. 파타고니아가 주 목적지였지만 트레킹을 마치고 칠레 남쪽 끝에서 북쪽 끝까지 올라 가볼 생각이었다. 칠레의 북쪽 끝은 페루로 연결되니까 다시 산티아고로 내려가느니 차라리 더 올라가 리마에서 타면 더 낫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었다.  


칠레는 남아메리카의 서쪽의 서해안을 따라 길게 뻗어있는 있는 폭은 좁지만 남북으로 아주 긴 나라이다. 생각보다 많이 길다. 우리나라가 남북 합쳐서 길이기 천 킬로미터 정도 되는데 칠레는 길이가 사천 킬로미터가 넘는다. 바릴로체까지 올라왔지만 아직도 아래쪽에 있었다. 열흘 정도 남은 일정으로 봐서 산티아고에서 더 올라가는 것은 무리였다. 그래서 산티아고에서 리마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로 결정했다.


느지막이 일어나 호스텔 식당으로 내려가 아침을 먹었다. 아침을 먹던 게스트들도 다 떠나고 한산해진 식당에서 산타아고 발 리마 행 비행기를 예약하는데 계속 신용카드 결제 단계에서 에러가 났다. 와이파이 속도도 느려서 더 답답했다. 오늘은 포기하고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바릴로체 San Carlos de Bariloche


바릴로체라는 이름은 “산 뒤에서 온 사람들”이라는 뜻의 부릴로체 Vuriloche라는 단어에서 왔다고 한다. 도시 정면에는 나우렐 우아피 Nahuel Huapi 호수가 있고 주위에 이삼천 미터에 달하는 산들에 둘러싸여 있어서 많은 스위스 사람들이 이민 와서 정착해서 살기도 하고 주위 자연환경도 스위스와 비슷해서 남미의 스위스라고 불리는 휴양도시로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여름에는 피서지로 겨울에는 스키를 타기 위해 바릴로체를 즐겨 찾는다고 한다.

Bariloche Downtown and Nahuel Huapi Lake

호스텔에 언덕 쪽에 있어서 호숫가에 있는 중심가로 걸어내려가야 했다. 내려가는데 갑자기 날씨가 흐려지고 비가 오기 시작했다. 맑아서 비가 올 건 예상 못했지만 되돌아가기도 그렇고 해서 비를 맞으며 계속 갔다. 뭘 하면 좋을지 알아보기 위해 우선 여행 안내소를 가볼 생각이었는데 마침 휴양도시답게 여행 안내소가 중심가 한복판에 있었다. 들어가서 지도도 챙기고 안내도 받았지만, 액티비티 위주로 소개를 해줘서 비 오는 날 할만한 것들은 아니었다. 전망대까지 올라가는 곤돌라가 있다길래 올라가 볼까 했는데 가보니 오늘은 운행을 안 한다고 했다.  


마침 점심시간도 되고 비도 피할 겸 밥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식당을 몇 개 추천해 달라고 해서 그중의 하나를 골라 지도를 보고 걷기 시작했는데 좀처럼 식당이 나타나지 않았다. 한참을 걷다가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보니 그 사람도 모르고 해서 그럼 여기 식당 괜찮은데 어디냐고 물어서 그 사람이 가르쳐 준 곳을 찾아 들어갔다. 


식당은 한산해서 눈치 보지 않고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아 파스타를 시켰는데 맛은 좀 없었지만, 창가에서 바라보는 호수 풍경에 돈을 지불하는 셈 쳤다. 마침 식당 와이파이가 쌩쌩해서 리마 행 비행기 티켓팅에 성공했다. 호스텔 인터넷이 느려서 결제가 안되었던 모양이다.  


바릴로체에서 로타 40을 따라 멘도사 Mendoza까지 올라가서 산티아고로 넘어가도 되지만, 남태평양을 보러 가기로 했다. 그다음 목적지는 발디비아 Valdivia였고, 다시 칠레로 넘어가야 했다. 우선은 중간 기점인 오스르노 Osorno로 가야 했다. 인터넷으로 버스표 예약하는 곳을 확인한 후 식당을 나와 그곳까지 걸어가서 버스표를 예약하고 돌아오는 길에 장을 봐와서 저녁은 호스텔에서 스테이크를 해 먹었다.  


12월 21일


어제는 호수가 근처의 중심가를 돌아다녀 보았기 때문에 오늘은 시 외곽으로 나가보기로 했다. 샤오샤오 호텔을 구경하고 근처의 트레일을 가보려고 나섰다. 버스를 타면 갈 수 있다고 해서 버스를 타려고 버스표 파는 곳을 찾아서 가보니 CUBE라고 적힌 곳이 버스표를 파는 곳이었다. 어제 여러 번 보며 지나쳤는데 버스를 탈 생각을 안 해서 뭔지 몰랐던 거였다. 스페인어로는 큐브라고 발음하지 않고 ‘슈베’라고 한다. ‘Llao Llao’도 처음 봤을 때는 어떻게 발음해야 하는지 통 감이 안 왔는데 ‘L’이 두 개이면 독일어처럼 강한 “샤” 발음이 되어 샤오샤오 이렇게 발음하는 것 같다. 


카드에 오늘 쓸 정도만 충전을 해서 호텔로 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가 시 외곽으로 갈수록 한적하고 고적했다. 어제 돌아다녀보니까 딱 중심가만 휴양지스럽고 중심가를 벗어나면 개발되고 있는 도시의 어수선한 모습이었는데 차라리 개발이 안된 시 외곽이 훨씬 자연스러워서 좋았다.


샤오샤오 호텔은 멀리서 봐도 특급 호텔의 외양이었다. 호텔 앞에서 내려 호텔 구경하러 온 건 아니니까 쓱 한 번 둘러보고 내려와서 근처에 있다는 트레일로 향했다. 앞에서 이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아가씨 둘이 걸어가고 있어서 그들이 가는 대로 생각 없이 따라 걷다가 트레일 헤드를 놓치고 지나쳐서 계속 가다가 되돌아왔다. 

Llao llao Hotel


트레일 헤드를 찾아서 들어선 트레일에는 인적도 없고 풀이 무성했다. 숲길이라 경치도 볼 것이 없고 끝까지 가보아야 별게 없겠다 싶고 날도 점점 더워지는데 숲 속이라 바람도 불지 않았다. 바릴로체는 확실히 파타고니아보다 덥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숲길이면 끝까지 간다고 뭐 볼 게 있겠어 싶은 생각이 들어 중간에 돌아섰다. 되돌아오는 길에서 오는 사람들을 몇 명 만났다. 그중에 엘 찰텐에서 버스를 같이 타고 온 한국 아가씨 둘도 있었다. 


바릴로체 시내로 돌아와 어제 타려고 했던 쎄로 오토 Cerro Otto로 올라가는 곤돌라가 운행하는지 가보았는데 다행히 오늘은 운행을 해서 시간을 확인해 두고, 시내의 고풍스러운 성당 근처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음식은 어제 점심보다는 훨씬 괜찮았다. 


점심을 먹고 다시 곤돌라를 타러 갔을 때는 곤돌라 운행이 멈추어 있었다. 바람이 너무 세서 운행을 할 수 없다는 안내였다. 아까 탈 걸 그랬다 싶은 후회가 밀려왔지만, 곤돌라를 타고 올라갔으면 곤돌라가 운행을 멈추면 걸어 내려와야 하는 걸까 잠시 생각했다. 어쨌든 이 동네에서는 바람이 태클을 자주 건다. 이곳 외에도 쎄로 캄파나리오 Cerro Campanario에서도 곤돌라를 탈 수 있는데 그곳은 샤오샤오 호텔 가는 길에 있다. 오는 길에 내릴 수도 있었는데 점심 먹고 타려고 그냥 지나쳤다. 바람이 여기만 불고 거긴 안 불겠어 싶어 혹시 하고 가보는 건 안 하기로 했다. 여기서는 제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 것 같지만 그렇다고 뭐 어때… 그냥 빈둥거리는 것도 나쁘지 않아..


숙소로 돌아오니 조용하다. 여행객들은 꼭 시간 맞춰서 뭘 해야 하는 일정이 없으면 대개 늦잠을 자고 오전에 꾸물댄다. 그래서 오전의 북적대는 시간을 피하기 위해 아침식사 시작하는 시간에 가서 빨리 밥을 먹고 준비해서 나가고 쉬고 싶으면 오후에 일찍 들어간다. 일찍 체크인해서 들어오는 사람만 없으면 오후가 한적할 때가 많다. 샤워를 하고 테라스에 나가 멍 때리고 앉아 있다가 어스름해질 무렵 슬슬 걸어서 근처의 바에 가서 가볍게 맥주와 저녁을 먹었다. 바는 혼자 가서 밥을 먹어도 북적북적해서 기분이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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