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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레네 Mar 09. 2021

버스 승강장 의자가 따뜻하다.

소도시 숨은 복지 칭찬해

오랜만에 버스를 타고 시내 나들이를 했다.

하루 세 번 오는 마을버스는 7시 20분, 2시 20분, 6시 20분이다.

남편은 외출하고 오전내내 집에서 빈둥거리다가 하루가 이렇게 가겠구나 싶어서 2시 10분 탈출(외출)을 감행했다.

후다닥 준비해서 골목을 뛰어내려 갈 때 이때가 제일 신나고 스릴 있다.


< 멀리서 볼 때 더 아름다운 것도 있다 >

목적지는 미정. 무작정 시내 가는 버스를 탔다. 골짜기마다 서다 보니 시내까지 40분이 족히 넘는다. 나는 뚜벅이니까 버스가 귀한 시골에서는 통 외출할 엄두가 안 났었다. 귀찮았다는 게 맞는 말이겠지.


하루 종일 집안에 있으면 답답하겠다 싶어 사람 구경하러 시내에 간 것이다.


돌아오는 버스시간은 막차 5시 45분.

놓치면 집에 가는 길이 어려워진다.

버스에서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가 딱히 갈 데가 없었다.

미용실을 가자니 머리도 안 감았고(사실 지난번 미용도 거울보고 셀프로 했다)

딱히 눈여겨 볼 사람이 없으니 무신경한 편이다.

그래. 도서관이나 가자 싶어 시청 정류장에 내려 걷기 시작했다. 가던 길에 안경점에 들르고 시민회관 화장실도 이용했다.

이번 주말시민대상 천원 영화를 상영한다고 한다. 가까우면 자주 올 텐데.


 중략 : 다이소 들어갔다가 신나서 한시간이상 쇼핑, 늦은 점심-나들이 김밥, 동물병원


건전지 사라는 심부름을 추가하는 바람에 그 옆에 동물병원도 기웃거리고 시간 보는 것을 잠시 잊어버렸다. 시간을 착각해서 열심히 뛰었지만 놓치고 말았다.


플랜 B가 필요했다.

다른 버스를 타고 집 근처까지 가야 한다.

다행히 15분 후에 차가 있었다.


숨을 고르고 승강장 의자에 앉았는데 엉덩이가 따뜻해졌다. 방금 앉았던 사람이 온기를 남겼나 해서 신기했는데 갈수록 따끈 것이 아래를 내려봤더니 전기가 달려 있었다.

다른 사람은 이미 아는 건가?

나만 처음 보는 건가?

< 심지어 세계 최초라는 데 >


'오, 신기하다.'

사실 시골 살면 추운 게 일상인데 가끔 공공기관 화장실에 설치된 따뜻한 비데의자에 감동하곤 했었다.

한참 따뜻함을 즐기다가 10분쯤 지나니 화상 날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 피부는 약한가 보다. 찜질방도 견디기 힘들긴 하다.


역시 잠시 기다리는 용도인가 보다.

바람도 쌀쌀하고 추웠고 때마침 따뜻한 의자가 감동이어서 갑자기 글을 쓰고 싶을 정도였다.

작은 소도시지만 숨은 복지가 잘되어 있는  해서 기분이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도서관도 근사하다.


버스에  타서 조차 좀전의 온기가 아련히 남았다. 얼마나 뜨거웠으면. '사람이 없을  자동으로 꺼지는 기능은 될까?' 괜히 전기가 낭비될까 걱정이 됐다. 편리함도 중요하지만  에너지를 많이 쓰면 지구가 아프니까.



이래저래 3시간 동안 콧바람을 쐬고 돌아가는 길이 홀가분하다. 잠시 여행이라도 다녀온 듯이. 도시에선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길가며 마주치는 사람들이 유독 반갑다. 마치 오랜 방학 끝에 친구 만나러 학교 가는 기분-시내 나들이.


시골엔 겨울에 사람 구경이 힘들다. 추우니까 갈 데도 없고 다니는 사람도 거의 없다.

공기는 좋지만 반대로 사회에서 멀어진 느낌도 있다. 아마도 내가 도시서 오래 살았고 아직은 시골 평균나이보단 어린 편이고 기동력도 없는 이유일 것 같다.


버스정류장에서  글을 써보기는 처음이다.

그래도 에너지 충전돼서 좋다.

다음에 또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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