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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레네 May 24. 2021

기억 나지 않아 답답했던 유년시절

ㅡ 나의 시간여행

태어나서 학교 들어가기 전 대부분 시간이 기억나지 않는다.


시골에서 태어나 자라서 8살에 도시로 이사했다. 그리고 결혼하기 전까지 15번의 이사를 경험했다. 충청도 말씨의 느린 여자아이는 도시로 이사와서 경상도 빠른 말투의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없는 형편에 잘 씻지도 못하고 꼬질했고, 여기저기 물려받은 옷에는 내 취향은 없었다.


부모님은 시장에서 채소 노점 장사를 하셔서 늘 밤늦게나 집에 오셨다. 대가족이었지만 짐은 단촐했다. 한해를 다 채우지 못하고 이곳저곳 유랑민처럼 이사 다니기 일 쑤 였다.


우연히 책을 보다가 연탄가스를 마시고 기억을 잃게 된 작가의 사연을 읽었다.

불현듯 나도 그런 게 아닌가 싶었다.

우리 집은 늘 작은 방 두 개의 다세대주택이었고 공용화장실에 연탄보일러 집에 살았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산골에 살았다면 좋은 추억도 많았을 텐데 사진 한 장 남기지 않은 그 시절은 망각의 방 어딘가에 숨어 있는 것일까.

태어나 자란 집에서 학교를 다니고, 결혼을 하고, 자녀를 데리고 부모님을 찾는 그런 이상적인 가정은 몇이나 될까.


가난했던 시절, 시골에서 상경한 가족이 도시를 전전하며 몸으로 겪어냈던 그 찡하고 헛헛한 역사는  잊고 싶지만 번번히 꿈속에 등장한다. 



유년의 그 시골 내음과 풍경은 사라졌지만 도시서 40년을 살고 다시 찾은 농촌에서 어딘가 남아있는 내 유년시절의 채취를 다시 맡고 있다.

포슬포슬한 흙을 만지는 맨손의 촉감과 풀벌레, 개구리, 뻐꾸기 우는 정겨운 소리들과 추운 겨울 끝에 아련히 찾아오는 봄의 따스한 훈기를 이젠 알 것만 같다.


기억엔 없어도 내 오감  어딘가에 살아있을 유년의 나와 오늘도 이곳에서 만나고 있다.

하염없이 막막했던 그 기억을 다시 그려본다. 채워 본다.


그 시절의 봄을

그 시절의 향기와 온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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