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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 Ellie Mar 22. 2021

일의 기술과 감각

<일을 잘한다는 것> 정답이 과잉이고 문제가 희소한 사회에 필요한 것

오랜만에 짜릿한 책을 만났다. 일을 잘하기 위해 필요한 감각에 대해 야마구치 슈와 구스노키 겐이 나누는 대담이 수록된 책을 소개한다. 야마구치 슈는 전략 컨설턴트로 보스턴 컨설팅 그룹, AT 커니를 거쳐 콘페리 헤이그룹의 시니어 파트너를 역임, 현재는 독립 컨설팅 펌 라이프니츠 랩의 대표로 대학교수, 작가, 강연가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베스트셀러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의 저자이기도 하다. 구스노키 겐은 일본 최고의 경쟁전략 전문가로 히토쓰바시 대학 경영 대학원 교수이다.


야마구치 이력에서 유독 내 눈길을 잡아끈 건 철학과 예술에서 비즈니스에 관한 인사이트를 찾는 전략 컨설턴트로 정평이 나 있는 분이라는 점이다. 이 대목만으로도 구미가 상당히 당기면서 책을 단숨에 읽어 버렸다.



'일을 잘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일을 잘한다는 것은 성과가 있다는 뜻이다. 나에게 '일'이란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로부터 가치를 인정받는 것이다. 필라테스를 배우려는 고객 혹은 나의 동료로부터 나에게만 배우고 싶다는 찐 '팬' 들이 생겨나는 것을 의미한다.


디지털로 이행이 앞당겨진 세상에서 예전 방식으로 성과를 내는 방식을 고수하는 것은 위험하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를 어떻게 준비하고 대처해야 할까? 각자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판단 기준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두 석학의 대화를 따라가 보자.

일하는 감각을 직접적으로 키우는 교본은 있을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감각이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재능이라는 말은 결코 아니다. 감각은 키울 수는 없지만 '자라난다'. 감각은 타동사가 아니라 자동사이며, 누가 단련시켜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단련되는 것이다.

P16. 구노스키 켄, 최고의 성과를 내는 두 가지 유형


감각의 시대가 온다


2020년은 삶의 모든 분야에서 '일하는 방식'에 대한 변화가 일어난 해이다. 재택근무와 화상 미팅을 하면서 지금까지 일하던 방식을 과감히 바꿔야만 했다. 이런 변화는 온라인 기반의 비대면 환경의 변화를 가속화시켜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한 번 맛본 편리함과 새로움으로 우리는 절대 과거 낡은 방식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에게도 변화와 혁신의 해였다. 회사원에서 프리랜서로 지위로 변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라 역풍을 그대로 맞고 있을 수는 없었다. 오히려 내성적이고 협소한 인간관계 제약을 뛰어넘을 수 있는 다양한 시도가 가능했던 해이기도 했다.


온라인으로 사람들을 만나면서 다른 사람의 말을 좀 더 경청하고 다양한 생각을 접할 수 있었던 시기였다. 당장 코로나로 인해 출근할 수 없는 상황에는 불가피하게 온라인 수업을 진행해야 했다. 미처 준비되지 않은 상태였음에도 온라인으로도 필라테스 수업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온라인 수업의 작은 성과는 내게 새로운 경험에 대해 위축되기보다는 열린 마음을 갖게 해 주었다. 코로나 덕분에 시공간의 물리적인 제약을 넘어 Eric Franklin 선생님 자격증 코스도 온라인으로 들을 수 있게 되지 않았던가? 오프라인 과정이라 스위스에 가지 않으면 들을 수 없는 과정이다. 완전 땡큐다.


언택트 상황이 해소해 준 시공간의 물리적 제약이 갖는 한계를 내려놓는 순간 해결책의 공급량은 과잉 상태가 되고 문제는 희소한 상태가 되어 버린다. 해결책의 공급량은 어떤 '의미'를 만족시킬 수 있는지, 내가 가진 '콘텐츠'가 어떤 '의미'와 '가치'를 지니는지에 따라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은 기존에 구태의연한 방식으로 일 잘하는 것이 불가능한 시대가 되어버렸다.

과거에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해결책의 양을 크게 웃돌았습니다. 하지만 점점 더 해결책이 과잉 상태가 돼가면서 해결책이 양적으로 많아지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의미'를 만족시켜야 하는 오늘날에는 양적 문제보다는 질적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합니다. 과거에 해결해야 할 문제들은 누가 보더라도 똑같은 해결책이 문제였습니다. 날씨가 더우니 음식물이 상하지 않도록 저온을 유지하는 성능 좋은 냉장고가 필요하다는 식이었죠. 반면에 의미 가치를 척도로 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개인에게 의미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에서는 사람마다 관점과 기준에 따라 달리 충족되어야 하기 때문이죠.

P.37, 격차를 만드는 사람은 무엇이 다른가, 일을 잘한다는 것


감각은 상황을 만나 기회가 된다


일 잘하는 감각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구스노키는 감각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경험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내가 먼저 판단하지 않아도 된다. 고객이 나의 일과 내가 있을 자리를 결정해 준다고 말이다. 기술과 감각의 차이는 감각은 자기 경험이 나침반이 되어 주는 것, 기술과 같이 나 이외 타인이 감각에 대해 알려주기 어렵다는 말에 크게 공감했다.

감각이란 한 가지 축으로만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특정한 상황에서 굉장히 성과를 내는 감각이 있어요. 배경이나 상황에 따라 감각의 강도나 영향력이 크게 달라집니다. 자신이 그 배경에 적합한 감각을 갖고 있는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는 메타 감각 같은 게 있으면 무척 좋겠지만 아쉽게도 감각이란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지 않고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중략) 처음에는 유연한 태도로 다양한 시도를 해봐야 합니다. 그런 후에야 비로소 자신이 어떤 상황에서 감각을 발휘하는지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P.107~108, 장소와 타이밍을 고르는 판단력, 일을 잘한다는 것


앨런 가넷의 <생각이 돈이 되는 순간>을 읽으면서 스윗 스팟을 찾는 방법으로 내가 떠올렸던 글쓰기를 예를 들어보자. 나만의 콘텐츠가 필요한 세상, 그 콘텐츠가 소위 먹히는 콘텐츠인지 알아보기 위한 척도로 다양한 글을 써보는 경험은 감각을 익히기에 매우 손쉽고 훌륭한 방법이다.


요즘 같은 시대에 글쓰기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이다.


시퀀스와 스토리가 만나 전략이 된다


책에서는 예술적 경지로 심각한 경영난에 처한 IBM을 회생시킨 루이스 거스트너의 일화를 소개한다. 거스트너는 3개월 후면 현금이 바닥나는 위기 단계 속에서 비전과 인재 육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조정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면서 위기 상황을 일단락시켰다. 이후, e-비즈니스 신규 사업을 제안하여 IBM이 컨설팅, 소프트웨어 통합 솔루션 회사로 거듭날 수 있도록 했다.

P.117, 일을 잘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더 중요한 점은 일의 시간적 깊이를 이해하고 시퀀스를 보는 데에서 시너지가 나온다라는 점을 두 석학은 거듭 강조한다.

어떻게 시너지가 나오는지 그 메커니즘을 알지 못한 채 무조건 시너지를 내야 한다고 강조하는 사람이 정말 많습니다. 그런 사람은 머릿속이 모조리 조합 문제로 되어 있어요. '해야 할 일 목록' 전문가가 되는 겁니다.(중략) 장사로 말하자면 '무엇을 어떻게 팔아야 할까?'고민할 때 지금까지 전혀 없었던 혁신적인 물건, 남들과는 전혀 다른 독보적인 물건을 떠올리는 일은 거의 없죠. 진짜 일 잘하는 사람, 감각이 있는 장사꾼은 시간의 깊이를 고려해서 지금 팔면 최대의 이득을 얻을 물건을 찾아냅니다. 즉, 진짜 차이는 시간적 시퀀스를 볼 줄 아는 눈에 달려 있지요.

P.146, 일을 잘하는 사람의 생각은 어떻게 움직이는가


모든 것은 내면의 동기에서 시작된다


회사에서 일하다 보면 안 되는 일을 되게 하라 에 해당할 때 이 '인사이드 아웃 방식'이 매우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인사이드 아웃'은 개인적으로 선호하지만 조직생활을 할 때에는 이런 방식이 잘 통하지 않는다고 느꼈다. 속해있는 조직이 혁신적인지, 안정성을 추구하는지에 따라 관점이 달라질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내 논리로 무장해서 얼개를 맞춰나가고 해결책을 찾는 과정을 즐기는 성향이다. 금융 업계에 있다 보니 규제, 늘 튀어나오는 예산 문제, 윗 선에서 선호하는 방식이 아님 등등의 이유로 환경과 상황에 따라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책의 후반에도 나오지만 내가 있어야 할 곳에 대한 감각을 아는 것이 가장 우선순위이다.


일을 잘하는 사람의 감각은 어떻게 길러지는가


감각을 키우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감각 있는 대상을 보고 배우는 것이다. 본다는 의미는 부분이 아닌 전체를 보아야 함을 뜻한다. 전체를 보는 가장 쉬운 방법은 대상을 좋아하는 것이다. 대상을 좋아한다면 보는 자체만으로도 보상을 받고 지속할 수 있는 동력을 얻기에 일을 함에 있어 가장 쉬운 동기 부여 방법이기도 하다.


고객에게 건강함을 전달하기 위해 어떤 언어로 소통할 것인지, 건강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운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어떻게 동기 부여해 줄 수 있을지, 아는 만큼 볼 수 있는 필라테스 러버들이 많아질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한다. 누가 내게 어떤 보상을 해주지 않더라도 내적 동기로 지속해 나갈 수 있어 정말 다행이다.

'좋아하는 마음'이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지 않으면 감각의 연마는 시작되지 않습니다. 좋아하지 않는 일은 무슨 일이든 간에 하기가 상당히 괴로우니까요. 사후성을 극복할 수 없습니다.

P198.Everything: 부분이 아닌 전체를 보다, 일을 잘한다는 것


내가 일하는 자리가 내게 맞는 곳이라는 안도감을 느끼지 못한다면 아무리 감각이 있어도 소용이 없다. 기술은 어디서나 통용되는 반면 감각은 싸울 곳을 잘못짚으면 더없이 부정적이 되어 버리고 만다. 내가 일하는 곳이 나의 자리라는 느낌, 그리고 그 감각의 느낌까지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은 '일을 잘한다는 것'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아웃사이드 인인 사람은 '이제 어떻게 될까?를 알고 싶어 하는 반면, 인사이드 아웃인 사람은 '그것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라는 사고를 가지고 있다. 구스노키는 이렇게 말한다. 의지를 우선시하고 일관된 자신의 생각에 따라 일하는 사람을 일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그런 사람들은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고 뜻을 관철시킵니다. 자신이 즐거우면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고 싶어 지니, 점점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도 깊어질 겁니다. (중략) 그들의 사고방식이 점점 넓어져 실제로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동조하는 사람도 늘어갑니다. 스토리가 실행되어가는 것이죠. 이런 흐름의 기점에 있는 것은 개인의 의지입니다. 그것이 결과적으로 옳은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저는 그렇게 하려고 합니다. 의지란 그런 것이죠. 그런 사람의 또 한 가지 특징은 처음 단계에서 정답을 추구하지 않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어쩌면 이거 잘 되겠는걸!' 하는 마음가짐이죠.

P.234, 일을 잘하는 감각은 어떻게 길러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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