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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 Ellie Feb 20. 2021

천재 예술가의 독창성은 어떻게 발현되었나?

미야자키 월드

요즘 나의 화두다. '오리지널리티' 찾기.


이런 고민은 퇴사하고 제2의 인생을 살며 조금은 내려놓을 줄 알았다. 40대 중반이 되어가도록 나의 '오리지널리티' 찾기는 여전히 진행 중에 있다. 이런 생각의 흐름은 <나를 나로 만드는 것들>, <마음 챙김>, <결혼학 개론>, <미야자키 월드>를 읽으면서 정점을 찍었다. 독서를 통해 나 자신에 대한 메타인지를 키우고 배우자와 주변 가까운 사람들과의 인간관계를 돌아보게 된다. 나를 둘러싼 접점으로부터 연결 고리를 만들고 나의 세계관을 확장해 나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한다. 그 동안 쌓아온 커리어, 레드 오션인 분야에서 프리랜서로 강사 생활을 하면서 타인에게 내어줄 수 있는 나만의 강점이 무엇인가? 자신에게 묻는다. 


글을 쓸 때도 뭔가 막히는 기분이 든다거나 세상 밖에 내 생각을 드러내 보이는 일이 가끔 두려운 것을 보면 아직도 마음 챙김이 많이 부족하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미야자키가 말한 '누구나 가지고 있다는 삶의 상처'를 직면하고 수용 하는 과정을 충실히 행할 수 있다면 글쓰기와 성장도 한 발자국 더 내딛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천재 애니메이터라고 생각했던 미야자키 하야오도 나와 크게 다른 사람은 아니었구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내가 하고 있는 고민들에 대한 답이 될 수 있는 생각들을 그의 작품 속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미야자키가 어떻게 독창성을 발휘하며 예술가로 거듭날 수 있게 되었는가에 대한 생각을 짧게 정리해 보고자 한다.


나 자신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 인내와 수용

키키의 구원자는 우르술라다. 그는 키키가 나는 능력을 다시 찾을 수 있게 도와줄 뿐 아니라 자신도 그림을 그릴 수 없는 '예술가의 고비'로 괴로워했었다고 털어놓으며 위로해준다. 키키가 그림을 그리지 못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묻자 우르술라는 별일 아니라는 듯 "낮잠을 자거나 산책이나 하면 되지."라고 답한다. 우르술라는 심각한 트라우마가 될 수 있는 상황에 유연하고 침착하게 대처하는 법을 몸소 보여준다. 마음을 편하게 가지라는 우르술라의 조언으로 키키가 곧바로 초능력을 회복하진 않지만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운다.

P.245, 8장, 마녀의 도시

수잔 네이피어가 분석한 글을 통해 미야자키가 얼마나 깊이 있게 본인을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인가?를 깨닫게 된다. 미야자키는 자신에 대한 메타인지가 높다. 내면의 상처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바라보고 때로는 작품 속 주인공들의 목소리를 통해 관객과 자신을 위로한다. 마녀 배달부 키키에서 키키의 조언가 역할을 하는 우르술라에게 미야자키는 자신의 자아를 투영했으며, <마녀 배달부 키키>를 통해 스튜디오 지브리는 새로운 단계에 진입하게 된다. 할리우드 영화만이 히트작을 만들 수 있다는 통념을 깨면서 일본 영화도 관객을 끌어모을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그다음 10년 동안 미야자키는 작품 속 키키처럼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 세계 무대에 오르며 감독의 전성기를 맞게 된다.

까마귀를 그리는 우르술라, 마녀 배달부 키키
미야자키는 예술 활동이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이즈미 미스 나리가 쓴 전기를 보면  미야자키는 자신이 트라우마를 겪지 않았다고 확신한다. "난 내가 정신적 상처를 지녔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그런 상처라 내 영화나 만화의 주제인 적도 없다." 미야자키는 트라우마가 보편적인 현상이라고 주장한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있다. 있는 그대로 소중히 간직할 수도 있고 다른 형태로 변했을 수도 있다"  미야자키는 트라우마보다는 인내의 미덕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상처를 지울 수 있냐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아니오'다. "견디는 수밖에 없다. 치유할 방법은 없다." 그는 감정의 상처가 "인간 존재의 기본 요소"이므로 "그저 감내해야" 한다고 말한다.

P35, 1장, 하메츠

내면의 상처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자신을 바라보는 것은 나를 둘러싼 관계로부터의 확장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임을 깨닫게 된다. 미야자키의 초기작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부터 가장 최근 작품 <바람이 분다>에 이르기까지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에 담긴 인내와 수용은 미야자키 세계의 가장 중요한 주제이다.


인생의 고난과 시련은 독창성의 재료


그는 자신이 트라우마를 겪지 않았다고 회고했지만 트라우마는 미야자키 작품에서 여실하게 드러나 있음을 알 수 있다.  트라우마의 인내와 수용을 통해 작품으로 그만의 '오리지널리티'를 구축하고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미야자키는 작품 속 숨이 멎을 듯 아름답게 연출한 자연을 그린 장면으로부터 폐허가 된 상실의 장면까지 감각적으로 연출한다.

미야자키가 어린 시절 전쟁 동안 파괴된 시골집의 잔해를 본 기억을 떠올리면서 한 말은 보임의 주장을 소름 돋을 만큼 그대로 재현한다. "어렸을 때 수풀 사이에서 본 건 전쟁 전 사람들이 추구했던 문명적 삶의 잔해였다... 모두 녹슬고 쓰러지고 썩고 여기저기 구멍이 나 있었다.

P.118, 4장, 상승과 하강

주변에서 본 성공 스토리를 내놓는 사람들의 삶은 대게 고난과 고통의 역사가 함께 였다. 작품 속에 드러난 미야자키의 세계는 그가 태어나고 자란 시대적 상황, 2차 세계 대전 직전과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 전쟁 동안 미야자키 가족은 여유 있는 삶을 누렸다. 전시 속에서 유년 시절 목격한 장면, 누군가로부터의 도움의 손길을 뿌리친 기억으로 그는 평생 동안 부채감에 시달린다. 그가 세상에 내놓은 작품들은 그의 삶을 대변하고 투영한다.

<붉은 돼지>는 개인적 차원의 트라우마와 함께 정치적 차원의 트라우마도 담고 있다. 정치적인 차원은 동유럽권이던 유고슬라비아가 무너지기 시작한 1992년 미야자키가 받은 충격이다. [그는 직접 영어로 버디 블로우'body blow'라고 표현했다.] 유고 슬라비아는 냉전 동안 독립적이고 계몽된 사회주의의 모범으로 여겨졌지만, 한 순간에 붕괴했고 이후 강간과 살상이 난무하다가 인종 청소까지 벌어졌다. 그는 유고 슬라비아의 분쟁을 보며 제1차 세계대전과 그 이전의 대학살들을 떠올렸다.

P262, 9장, 미야자키의 세계의 새로운 길


일본의 특수성 - 지진이 일상, 신에 대한 숭배


역사적 배경 때문에 일본을 좋아하진 않지만 일본을 방문했을 때 느꼈던 일본인의 생활 방식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하루 걸러 지진으로 불안이 일상이 되어 버린 나라, 공공이 사용하는 개수대의 물도 절약하는 것은 물론 일회용품도 쉽사리 쓰지 않는 일본인들, 미니멀한 생활 면면에서 지진으로부터의 위험에 준비된 일본인들의 삶의 방식을 느낄 수 있었다. 거대한 산업화의 표본인 도쿄도 있지만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이 넘치는 교토는 절제된 미학과 옛 것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교토의 아름다운 자연은 토토로 숲의 녹나무와 같은 짙은 푸르름을 떠올리게 한다. 주택가 곳곳에 자리 잡은 사당, 일상과 밀접한 신에 대한 숭배는 지진이라는 자연재해를 크고 빈번하게 겪으면서 체화된 일본인들의 삶의 양식의 일부이다. 미야자키 작품 속 토토로의 숲의 정령, 나우시카 속 애니미즘 관점: 모든 종이 공생하고 어떤 종도 다른 종들보다 우수하지 않다. 즉, 자연과 인간을 동등하게 바라보는 일본인들의 관점은 자연을 바라보는 겸허함에서 비롯된 세계관이라고 할 수 있다. 미야자키의 심리적인 깊이로 빚어진 판타지 속에서 이런 지리적 특수성과 종교적 색채가 잘 구현되어 나타난 점이 그를 천재 애니메이터로 만들 수 있었던 비결인 것 같다.

<모노노케 히메>는 자연을 의인화하는 기존의 관습을 경계하며 자연과의 교감을 그린다. 미야자키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야쿠시마에서 2,000살이 넘는 삼나무 숲을 여행한 경험을 바탕으로 투명한 연못, 반짝이는 나비, 강렬한 에메랄드 빛 거목이 있는 사슴 신의 숲을 만들었다.

 P.329, 11장. 경계를 초월하는


사람들이 미야자키 작품에 열광하는 이유는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이다. 미야자키의 많은 작품과 함께한 음악가 히사이시 조의 음악에 감도는 웅장한 서사와 한 줄기 희망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미야자키는 작품을 통해 긍정, 희망, 사랑, 포용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훈계나 설교가 아닌 판타지, 모험, 다채롭고 일상에서 마주할 수 있는 평범한 캐릭터, 아이들의 눈으로 투영된 세상이 그려진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마녀의 저주로 노파가 된 소녀 소피는 노화의 고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도 노화와 죽음에 대한 공포를 긍정적인 방식으로 보여준다.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살아야 한다"는 미야자키 자신에게 들려주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미야자키는 고통이 아닌 회복을 끊임없이 강조해 왔다. 삶을 살아오면서 크고 작은 상처를 직면하고 수용하는 과정, 마음 챙김을 충실히 이행하는 것이 말처럼 쉽진 않다. 하지만 반드시 해야 할 이유를 찾았으니 올해에는 좀 더 즐거운 마음으로 깊이 있게 나를 알아가고 이해하는 시간들을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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