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엘리 Ellie Feb 17. 2021

파란 약 믿어도 되나요?

블루 드림스

올해도 어김없이 건강 검진을 받았다. 작년과 달리 올해는 퇴사자의 신분이라 배우자의 건강 검진까지 챙겨주는 남편네 회사로부터 받은 은혜로운 혜택이긴 하다. 매년 건강 검진을 이유로  X-ray 앞에 서서 내 몸에 방사능을 노출하는 것이 과연 이로운가? 를 두고 건강검진의 득과 실을 고민하게 된다. 유증상도 없는데 모니터링의 이유로 불필요한 방사선 노출량을 이렇게 매년 쌓아가는 게 검진 센터 배 불리는 일만 시키고 있는 거 아닌가 X-ray 앞에 선 짧은 순간에도 여러 가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간다.


현대 의학도 거대한 자본 시스템의 한 축이라 생각하기에 의사의 진단, 처방, 약물 복용 및 수술 전 과정에 대해 의사 말을 맹신하기보다는 한 번쯤 의구심을 갖고 생각해 보는 태도가 바람직하다는 것 한 가지는 40년 넘게 살아온 삶의 경험으로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의학 공부를 수년간 하고 임상을 꾸준히 지켜본 의사라 할지라도 내가 어떤 생활 패턴으로 살아왔는지, 어떤 섭생을 하였는지, 어떤 스트레스에 노출되었는지, 어떤 환경에서 살아왔는가? 는 의사가 아닌 나 자신이 제일 잘 알기 때문이다.


정신과 약물은 아니지만 내가 약을 싫어하게 된 계기는 직장 생활 중 복용하게 된 피부과 약에 대한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학창 시절 내내 매끈함을 자랑하던 피부는 당시 무엇 때문에 밸런스가 깨졌는지, 성인 여드름 때문에 한 동안 고생하게 되었는데 피부과 의사가 소염제, 항생제가 더 이상 약발이 먹히질 않자 이후 스테로이드 성 약물, 마지막으로는 피지 조절제, 로아큐탄이라는 약제를 내게 처방했다. 십 수년 전 일이기에 요즘도 피부과가 이러한 형태의 처방을 진행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당시 유명하다는 강남 바닥 일대 대부분의 피부과들이 이러한 형태의 진료 결과를 내놓았다.


로아큐탄이라는 약물은  x 등급으로 6개월간 피임하지 않으면 기형아를 출산할 수 있다는 어마 무시한 약물이다. 처방전을 받으면 약의 효능과 부작용부터 들여다보는 나는 부작용이 너무 무서워 받은 약을 그대로 쓰레기통에 버렸다. 소염제와 항생제로 원인이 아닌 증상을 다스리면서부터 내 몸은 점점 약해져만 갔다. 특히 위장이 문제였다. 항생제를 복용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위장이 탈이 나기 시작했고 장 내 환경도 망가지기 시작했다. 이후 스테로이드 성 약물을 먹고 나니 하루 만에 드라마틱하게 좋아지는 내  피부를 보면서 아 '이건 먹어서는 안 되는 약'이라는 자각을 하게 되면서부터 내 의지로 약을 끊게 되었다.


이후 스테로이드로 인한 '리바운드'(약 복용 이전보다 더 심하게 상태가 악화되는 현상)를 경험하면서 약에 대한 의존을 벗어나기 위해 생활 패턴 모든 것을 바꾸어 나갔고 더 심해진 상태를 견뎌내야 했다. 내 몸에 일어난 심각한 피부 증상을 해결하기 위해 해외 논문까지 혼자 찾아 읽던 차에 '프로스타 글란딘'이라는 호르몬의 불균형으로 인해 발생된 문제라는 걸 깨닫게 되었고 이후 몸에 좋은 지방을 섭취하기 위해 생활 습관 전반과 식이를 고쳐 나가려고 노력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내 피부 상태는 서서히 개선되어갔다. 원인이 아닌 증상을 개선하기 위해 피부과 의사가 처방한 약물과 의료적인 처치(레이저 치료)들은 내 피부 장벽을 얇게 만들었고 스킨케어 제품에 포함된 어떤 케미컬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민감성 피부로 바꾸어 놓았다.


짧게 쓴 나의 이야기는 약물 부작용으로 이후 10년 간 고통받은 내 경험을 써 내려간 것이며, 얼마나 안이하게 피부과 의사들이 이 문제를 바라보는지 말하고 싶었다. 현대 의학의 얼마나 많은 부분이 원인이 아닌 증상 개선을 위해 처방과 치료가 이루어지고 있는가? 는 반드시 생각해 볼 문제다.


심리학자로 신경 심리학, 정신과 치료에 관한 9권의 책을 출판하고 35년 동안 정신과 약을 복용한 로렌 슬레이터 박사는 <블루 드림스>에서 자신의 경험담을 통해 정신 질환 약물의 불완전성과 부작용에 대해 들려주고 있다.


그녀는 정신과 질환을 앓아 본 경험조차 없는 대다수의 의사들이 부작용은 덮고 표면에 나타난 증상 개선을 이유로 정신 질환 약물들을 처방하고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정신과 의사는 대체로 돈을 추종하는 사람들이라는 한 의사의 고백 또한 놀랍다. 또한, 처방 약물들의 기원을 따라가다 보면 정신과학 문제 해결의 연구가 아닌 다른 실험에서 나타난 의외의 효과성이 정신 질환에도 효과적으로 적용되기에 우연히 쓰이게 된 약물이 상당히 많다는 점 또한 강조하고 있다.

터프츠 대학교 의과대학 정신의학자 대니얼 칼랫은 썼다. 심리 치료를 하는 정신과 의사는 멸종 위기에 있다. 그러면서 칼랫은 이 직종에 대해 솔직한 의견을 내놓는다.

"심리 치료는 돈이 되지 않는다. 약에 집중하면 1시간에 환자를 3~4 명 까지 볼 수 있지만 그 시간에 심리 치료를 하면 1명이나 겨우 볼까 말까 하다. 수입에 차이가 생기기 때문에 우리는 여러 기술 중에서 심리 치료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 정신과 의사는 대체로 돈을 추종하는 사람들이다."

P.228~229, SSRI: 프로작의 탄생, 블루 드림스


살면서 정신질환 약물을 복용해 본 경험이 없는 내가 과연 이 문제를 논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사실 피부 문제로 정신과에 상담 가야 하나 한 적도 수 차례 있긴 하다. 시기가 결혼 전이라 날 걱정하는 엄마, 아빠, 동생 - 가족의 헌신과 사랑으로 지독했던 우울함을 견뎌냈다.  결혼 이후 찾아온 계획되지 않은 임신으로 내가 온전한 엄마로의 책임을 다할 수 있을까?라는 혼란스럽고 불안한 마음 상태와 함께 약간의 우울증이 내게도 찾아왔다. 그래서 내 발로 소위 정신 분석 심리 치료를 하고 있는 상담 센터를 방문하게 되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대학 강단도 서시고 나중에 베스트셀러 출판까지 한 유명한 의학박사이시긴 했지만, 그 당시에는 그분이 누구신지 몰랐었고 매 번 내는 너무 비싼 상담료가 아까워 나는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해 상담에 임했다. 나를 전혀 모르는 제삼자 앞에서 내 유년 시절의 삶의 궤적부터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그녀 앞에서 내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하면서 객관적으로 나를 들여다보기 시작했고 내게 없던 자신감도 자연스레 생겨났던 거 같다. 생각해 보니 그녀가 딱히 내게 해 준 건 없다. 상담하면서 손잡아 주시고 눈물 훔칠 때 내게 건넨 휴지 몇 장 정도였던 거 같다. 다만 어느 누구 앞에서도 쉽게 말할 수 없는 내 이야기를 들어준 게 그녀가 내게 해 준 전부였다. 표현력이 딸려 이렇게 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게 박사님께 왠지 죄스럽다.


몇 번의 상담 끝에 나도 좋은 엄마가 될 수 있겠구나. 하는 어떤 자신감이 갑자기 생겨난 건지. 더 이상 나는 그곳을 찾지 않게 되었고 이후 시행착오를 겪으며 어느덧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딥 하지 않은 나의 경험을 빌어 상담 치료의 효과를 믿지만 이렇게 주장 하기에 내 경험은 너무도 빈약한 거 같다.


약물 치료가 필요한 정신 질환들은 분명히 있다. 다만, 내담자들이 약물 치료를 받기 이전에 반드시 상담 치료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상담 치료가 돈이 되질 않아 실제 의사들이 상담 치료를 선호하지 않고 경증의 치료에도 프로작(SSRI)부터 손쉽게 처방한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안타깝다.

이처럼 승인 요건이 느슨하다는 사실 자체로도 충격적인데 FDA는 불과 6~8주의 임상 시험으로 프로작을 승인했다. 문제는 이 약을 약 6~8주 동안 먹은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프로작을 먹은 환자의 대부분- 어쩌면 전부-는 실험 전부터 오랜 기간 약을 먹어왔다. 많은 정신 의학자가 우울증이 재발할 때마다 환자의 뇌가 취약해지고 향후 재발할 가능성이 더 커진다는 이론에 따라 재발을 막으려면 약을 무기한 유지해야 한다고 믿는다. 일생 동안 항 우울제를 먹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6~8주에 걸친 최초의 실험은 당시의 현실을 반영하지 않았고 지금의 현실도 반영하지 않는다. 현재까지 수백만 명이 이 약을 먹었고 계속 먹고 있지만, 세로토닌 촉진제의 장기적인 부작용에 관한 연구는 많지 않다. 환자의 완쾌율과 재발률에 대한 중간 연구도 있기는 했다. 하지만 세로토닌 촉진제가 가져오는 부작용의 장기 연구는 소수에 불과하다. 왜 그런 것일까? 미국 임상 정신 약리학자 협회 회장이었던 도널드 클라인은 명쾌하게 대답한다.

" 이 산업은 장기적인 위험을 찾을까 봐 걱정하고 있습니다."

P.230~231, SSRI: 프로작의 탄생, 블루 드림스

정신과 약물은 복용하기에 앞서 기전과 부작용을 환자 스스로가 명확하게 인지할 수 있게끔 의사와 충분한 상담 후 복용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약물은 우리 몸의 항상성을 깨뜨리고 그것에 의존하게 만들며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내 정신 상태는 이전으로 돌아오기 너무나도 힘이 들기 때문이다. 더불어 프로작과 함께 우울증 수면 유도에 처방되는 졸피뎀의 자살 충동 유발은 이미 언론에서도 수 차례 언급되고 있는 부작용 중 하나다. 슬레이터 그녀가 바랬던 것처럼 부작용이 없는 약물이 세상에 출현한다면 그건 아마도 정신 의학계의 승리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작가는 35년 간의 약물 복용에 대한 경험담을 회고하며 그녀의 감정이 얼마나 힘든 상태였는가에 대한 약 복용으로 인한 심리 변화의 과정을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녀는 정신과 약 덕분에 마음으로 주변의 아름다움에 감사할 수 있으며 커리어를 쌓을 수 있었고 일상생활을 정상적으로 지속할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동시에 정신과 약 탓에 죽음을 앞 당기며 빠르게 노화되어 간다고도 말하고 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젓게 만들 정도로 약을 싫어하는 내게도 그녀의 삶의 궤적은 중증 우울증과 같은 정신 질환에 대해 약물 치료의 민낯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적절히 사용된다면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릴 수 있고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꼭 필요하겠구나라는 생각을 갖게끔 해 주었다.

이런 기분은 프로작 때문이 아니다. 아미프라민이나 다른 약 때문도 아니다. 우울증이 떠난 자리에는 감사한 마음이 남기 때문이다. 인생은 새싹, 잎사귀가 된다. 어떤 약도 이 도취감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최고의 순간이다. 가장 인간답고 가장 건강한 자신을 찾았기 때문이다. 조용히 축하하라. 앞에 나가 노래 부르라. 나는 그렇게 하고 있다. 비록 죽어가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또 하루를 마감한다.

P.277, SSRI: 프로작의 탄생, 블루 드림스

35년의 기간 동안 정신과 약을 복용한 그녀 관점에서 이 책을 이해하려고 부단히 노력했지만 그래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사이키델릭과 MDMA(엑스터시) 치료가 미래 정신 의학의 대안으로 언급되어 있는 파트였다. LSD가 사이키델릭을 유발하는 환각제쯤으로 알고 있던 나는 사이키델릭과 MDMA 치료가 필요한 영역(말기 암환자, 자폐증 외)도 존재한다라는 사실에 대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다만, LSD와 같은 환각제 복용에 따른 부작용의 폐해가 자세히 기술되어 있지 않아 전문가 적 식견이 없는 나로서는 다소 우려되는 부분도 없지 않았다.


PKM제타/ ZIP(기억이 좋아지는 약)에서 과거를 잊을까 봐 두려워하는 동시에 정신을 깨끗하게 지울 방법을 찾고 있는 현대 의학의 기억에 관한 연구는 인간의 존엄성을 해친다고 생각하기에 내겐 다가올 미래가 두렵고 무섭기까지 하다. 장장 2 페이지에 걸쳐 너무 잊고 싶은 기억들에 대해 이 수술을 하게 해 달라는 사람들의 코멘트들을 보면서 기억을 잊는다는 점에 매몰되어 기억을 잃었을 때의 위험성에 대해 인식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도 잠시 해 보았다. 나쁜 기억은 현재와 미래에 대한 나의 행동 양식을 결정하는 모멘텀이 되어 줄 수 있고 나쁜 기억 조차 인생의 한 부분이고 삶의 의미라고 생각 하기에 왠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살아온 편협한 경험만으로 완벽히 타인을 이해하기란 불가능하기에 잊고 싶은 나쁜 기억이 없도록 인생을 살아옴에 감사함 또한 느낄 수 있었다.


유년기 제1 양육자인 엄마와의 유대는 정신 분석학에 있어 출발점이 된다. 다만 슬레이터의 공허하고 불행한 유년 시절 경험은 그녀의 의지로,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는 점에 있어 참으로 안타까웠다. 이런 상황에 놓인 누군가가 온전한 '나'로 인생을 살아갈 수 있게끔 울타리가 되어 줄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은 반드시 필요하다. 더불어 한 개인이 정신 질환으로 약을 복용하게 되기까지 상담에 임하는 정신과 의사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 깨닫게 되었다. 책 속의 연구 결과에서도 드러나듯이 심리 치료사 그룹 대 온정적 성향의 대학 교수와의 상담 치료에 임한 두 집단의 치료 결과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실험에 임한 학생들은 공통적으로 자신에게 찾아온 긍정적인 변화가 온정적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치유의 힘, 따뜻함과 연결이라는 말을 들려주고 있다. 환자와 대면하는 의료 현장에 계신 치료사, 정신과 의사들이 부디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 온전한 책임을 느끼고 진료에 임할 수 있게 되길 하는 바람이다. 더불어 해결할 수 없는 마음의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누군가가 내 주변에 있다면  끊임없는 격려와 지지를 통해 따뜻함을 건네주는 존재가 되어 주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천재 예술가의 독창성은 어떻게 발현되었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