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의 정신분석학자이자 분석심리학자인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 1875-1961)은 “사람은 자신의 내면세계를 들여다 볼 수 있을 때, 내면에서 새로운 지혜들이 생겨난다”고 했습니다.
인간의 본성은 내면으로부터의 울림을 통해 내면의 성찰을 하게 된다는 것이 칼 융의 주장입니다. 그래서 칼 융은 “밖을 보면 꿈을 꾸게 되지만, 자신의 내면을 보면 스스로 깨어나게 될 것이다”라고 했어요. 바꾸어 말하면, 내면(內面)의 통찰(洞察)이라고 할 수 있죠.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고 꿰뚫어 볼 수 있는 힘이 생기면 스스로 깨어날 수 있는 것이지요.
관심법(觀心法)이라고 들어보셨나요? 한 때 사극의 영향으로 태봉국의 궁예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능력을 관심법이라고 해서 많은 국민들의 유행어가 되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관심법은 타인의 마음을 들여다 보는 것이 아니라 불교에서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는 수행법을 관심법(觀心法)이라고 합니다. 이런 면에서 정신분석학자인 융의 주장과 관심법은 일맥상통 한다고 보아야 되겠지요
칼 융은 인간의 본성은 내면으로부터의 울림을 통해 내면의 성찰을 하게 된다고 했는데요.
그러면 여러분! 자신의 내면을 깨우는 한 방법으로 글쓰기는 어떨까요? 글은 한 사람의 생각과 정신이나 철학의 깊이를 고스란히 담고 있잖아요. 그래서 글은 한 줄만으로도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는 게 아닐까요?
여러분 혹시 매일 매일 일기를 쓰시나요? 사실 일기는 제일 쉬운 하루의 기록이면서 내면을 성찰하는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글쓰기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성찰하고 깨어나게 할 수 있는 훌륭한 수단이 되겠네요. 그래서 인간의 가장 창의적인 생각과 사고의 핵심은 다 글로 기록되고 전파되는 것이지요. 책을 통한 깨달음! 실마리가 풀리시죠.
창의적인 글쓰기의 원천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요? 일상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관찰하고, 생각하고, 경험한 모든 것입니다. 여기에 본인의 상상력과 주관이 보태지면 글쓰기의 원천은 충분히 마련된 셈이지요.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글쓰기를 잘할수 있을까요?
첫째, 일상적으로 만나는 주변 대상 사물들을 잘 살펴보는 일입니다.
그러면 사물(事物)의 인상(印象), 이미지, 느낌을 잘 포착할 수 있겠지요. 그래서 주변 대상과 사물을 파악하는 중요한 힘이 되는 안목(眼目)을 기를 수 있게 됩니다. 외형적으로 드러나는 생김새나 이미지를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면의 성질과 구조를 꿰뚫어 보는 안목이 더욱 필요해지는 이유입니다.
둘째, 여러분 마음속에 숨어있는 상상력(想像力)을 깨워야 합니다.
하루에 천리를 가는 천리마는 정말 뛰어난 말이겠지요. 그런데 똑똑한 파리 한 마리가 저 말이 하루에 천리를 갈 수 있는 천리마구나! 라는 것을 대번에 알아봤어요. 그렇다면 그 파리는 천리마에 바짝 들러붙어서 힘 하나 안들이고 천리를 갈 수 있겠지요. 하루에 천리를 갈 수 있는 파리의 안목(眼目)이 더 위대한 상상력인 것이지요. 천리마의 고사가 아니더라도 상상력은 세상을 변화 시킬 수 있는 최상의 무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안목(眼目)은 눈 안(眼), 눈 목(目)으로 구성된 단어입니다. 보통은 같은 뜻을 말하는 중의어(重 )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잘 쓰지 않지요. 그런데 우리 조상님들이 중의어를 왜 쓰셨을까요?
눈 안(眼)은 물리적으로 빛의 반사에 의해서 사물의 이미지를 보게 되는 것인 반면, 눈 목(目)은 사물이나 대상의 내면의 구조를 파악할 줄 아는 마음의 눈인 것입니다. 똑같은 눈이지만 외부(外部)와 내부(內部)를 지향하는 점이 다릅니다. 눈 안(眼)과 눈 목(目)이 합쳐질 때 비로소 사물을 바라보는 눈이 생길 수 있습니다.
상상력(想像力)은 현실에 발을 디디고 있으면서 현실이 아닌 것을 꿈꾸며, 현실로 만들 수 있는 재능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누구나 마음속에서 상상의 나래를 펴 보신 적이 있으실 것입니다. 자기 마음속의 자유롭고 창조적인 상상력이야말로 글쓰기의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셋째, 유명작가의 글을 통째로 베껴 쓰면서 배우는 것입니다.
자신의 수준에 맞고 마음에 드는 글이라면 짧고 긴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통째로 베껴 쓰는 일은 힘들고 지루할 수 밖에 없습니다.
통째로 베껴 쓰는 것은 읽으면서 배우는 것하고는 근본적으로 느낌부터 다른 것입니다. 내공이 뛰어난 무술사범의 시범을 옆에서 보고 똑 같이 따라 배우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내가 실제 무술사범이고 작가인 것처럼. 처음 베껴 쓸 때에는 좀 엉성하고 낯설 수도 있겠죠. 그러나 곧 부분 동작에서 연결동작을 따라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머지않아 실전 무술사범의 진정한 내공을 느낄 수 있게 되는 것과 같은 경험을 베껴 쓰면서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유명작가가 된 것처럼 말입니다.
손으로 직접 베껴 쓰다 보면, 속도는 느리지만 독서를 하면서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문장의 구조, 표현, 문체, 글의 이면에 숨어 있는 작가의 의도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게 되는 것이죠. 게다가 덤으로 맞춤법, 띄어쓰기는 물론 쉼표 하나하나 까지도 파악할 수 있게 해줍니다.
그러다 보면 글의 전체적인 구조는 물론 행간의 뜾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글쓰기 방법은 베끼면서만 배울 수 있는 방법입니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듯이 여러분도 유명작가의 글을 통째로 베껴 써보신다면, 지루함을 넘어서는 귀한 배움의 깨달음을 얻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넷째, 독서와 글쓰기는 동전의 앞뒷면처럼 상호보완의 양면 관계입니다.
의사 선생님들이 하시는 말씀 중에 “밥을 먹을 때는 천천히 꼭꼭 씹어서 드세요” 합니다. 건강하게 장수하시는 분들의 식사습관은 밥을 아주 천천히 꼭꼭 씹어서 드십니다.
천천히 꼭꼭 씹으면 침샘에서 많은 타액이 분비 되겠죠. 또한 음식물을 아주 잘게 부숴주니까 위장에서도 소화가 잘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책을 읽을 때나 글을 쓸 때도 자신이 관찰하고 경험하고 느끼고 생각한 것은 밥을 천천히 꼭꼭 씹듯이 정독을 하먼서 읽거나 글을 쓸 수 있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섯째, 여러분은 자신의 오감(五感)을 활용해 보세요.
인간의 오감(五感)은 눈, 귀, 코, 혀, 피부를 말합니다. 우리 몸과 마음은 감관(感官)을 통해서 외부 대상을 인식하고 내면의 의식으로 이어집니다. 오감(五感)은 교감(交感)을 전제로 한다는 사실입니다. 모든 의식 활동을 통해서 주변세계와 소통하는 것이 교감(交感)인데요. 사람은 누구나 뛰어난 교감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오감(五感)을 통한 교감(交感)으로 글쓰기를 시작해보세요. 오감을 통한 교감이 원활할수록 글쓰기는 훨씬 재미있어 질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매일 집으로 돌아오듯이 책방, 서점이라는 책 집을 내 집이라고 생각하고 습관처럼 자주 들러 보세요. 처음에는 낯설지만 차츰 익숙해지면 자신이 늘 가야하는 마실 방처럼 느껴지게 됩니다. 그러면서 천천히 글쓰기를 할 수 있는 생각이라는 자료의 곳간이 비로소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유럽이나 일본에 가게 되면 가장 부러운 것은 크고 작은 서점, 즉 책 집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선진국의 지표 중 하나가 국민 일 인당 독서량이죠. 크고 작은 책 집들을 쉽게 볼 수 있는 것 또한 선진국들의 공통된 특징인 것 같습니다.
우리도 동네 책 집이든, 시내의 대형 책 집에서든 책 집에 들르는 일이 마실 방 찾는 습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요즘은 우리나라도 책 집이 책 뿐 만 아니라 다양한 휴게공간과 개성 넘치는 문화상품들로 인해 덤으로 재미있는 핫스팟인 된 좋은 세상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