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3개월 12일차, 멘탈이 살짝 바스러질 때
바사삭
멘탈이 살짝 바스러질 때 결국 일기를 쓰러 오게 되는 걸 보면, 무언가를 쓸 때 스트레스가 풀리는 편인가 보다.
예비창업패키지를 참여하고, 사업자 등록을 한 지 3개월 12일이 지났다. 그냥 사업자등록을 했다고 그 날을 창업일로 정해도 되나 싶고 아직 나의 입장에서는 여전히 준비 중인 것만 같은 느낌이 있다. 그치만 언제까지 준비중일 순 없으니 그 날을 창업일이라고 받아들여야겠다.
3개월 12일은 앞으로 나아가기보단 끊임없이 뚫려 있는 나 자신과 일을 메꾸느라 바쁜 느낌이다. 스스로의 부족을 계속해서 마주하고 어떻게 해나갈 것인가 연속의 과업을 마주하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일하는 것도 처음, 아무 것도 없어보이는 것에서 무언가 할 것들을 스스로 만들고 이게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해야만 한다는 것 자체가 나를 정신없게 만들었다.
당연히 나도 안정적인 게 좋지만, 다른 사람에 비해 불안정한 상태도 잘 버티는 편인 것 같다. 다음 달엔 돈이 나올지, 과연 이 일이 성공할지 어쩔지를 아무 것도 모르지만 일단 하고 보자는 것이 가능한 걸 보면.
정신없이 휘둘리는 구간이다. 누구 말이 맞는지 여기 저기서 쏟아지는 정보와 이야기 속에서 나는 선택을 해야만 한다. 폭우가 쏟아지는데 우산은 없고 앞을 보고 있는 느낌이랄까. 어떻게 해서든 앞을 보고 길을 찾아서 걸어! 라고 생각은 하지만 눈 앞은 폭우가 내려서 잘 보이진 않는.
멘탈이 살짝 바스라지긴 하지만 꽤나 즐기고 있다. 좀 이상한 말인가.
점점 단호해져 가는 나를 보기도 하고, 한계까지 찼을 때 나는 어떻게 행동하는가. 스스로를 관찰하는 맛이 있다. 나에 대해서 확실히 전보다 더 관심갖게 된다.
얼마 전 본 영상에서 자존감이란 무엇인가를 설명하는 어느 교수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자존감이란 "난 다 잘해. 난 멋져."그냥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고 했다. 내가 부족한 점도, 잘 하는 점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 자체가 자존감이라고 말했다. 나는 내가 부족한 점을 많이 알긴 하지만 그 점으로 상처받진 않으려 한다. 누군가 너 이런 점 부족하다고 말했을 때 당연히 기분이 좋진 않지만 그렇군 할 수 있다. 난 당연히 완벽하진 않으니까. 자존감이 낮진 않나보다 했다.
그렇군이라 말했다고 그 점을 내가 온전히 받아들이는 게 아니다. 너는 그렇군. 받아들일 지 말 지는 내가 판단하게 되었다. 간단한 거면 먼저 그 행동이나 습관을 바꿔본다. 시도해보고 전보다 나아지면 문제가 맞았군 하는 것이다. 바뀔 수 없는 것에 대한 지적은 가볍게 무시하면 된다. 내 문제를 남 문제처럼 보고 정말 그냥 컴퓨터에 에러가 난 것처럼 해결해야할 것으로 바라보면 그다지 기분 나쁠 것으로 볼 필욘 없다는 걸 알았다.
이런 습관이 창업을 하면서 생긴 것 같다. 창업을 한 이후로 변한 점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이다. 감정적으로 너무 심하게 전이를 느끼거나, 너무 이입하거나, 휘둘리는 것들이 참 많았는데 그러지 않을 수 있다. 언젠가 한번은 감정이 메마른 듯 하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꼭 그렇진 않다.
또 생긴 변화가 뭐가 있을까.
위기 의식을 곧잘 느끼곤 하는데, 그걸로 스트레스받진 않는다. 이래선 안되는데, 뭔가를 더 갖춰야 하는데, 또는 노력해야하는데 등등. 이런 생각이 들 땐 막연히 불안하기만 했는데 지금은 뭔가를 해야 할 신호로 받아들인다. 내가 그게 부족했나보구나. 마치 배터리가 별로 없을 때 뜨는 충전이 필요하다는 알림처럼. 그럼 충전한다.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걸 나에게 준다.
대체적으로 전엔 상상해서 위기를 느끼는 게 많았는데, 지금은 확인하고 위기를 느끼는 게 많아졌다. 스스로 생각하기엔 전보다 훨씬 건강한 위기의식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한발짝을 앞으로 가면 낭떠러지인데 위험이나 불안을 느끼지 않으면 생존력이 떨어지는 것처럼. 위기 의식은 어떻게 보면 매우 생존하려는 나의 신호이기도 하다. 그러니 나를 지켜주는 소중한 신호기도 하다. 다만 중요한 건 위기라고 생각했을 때 생각만 한다면 결국 경고등은 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위험하오니 한 발짝 뒤로 가주십시오. 뒤로 가지 않으면 경고음은 계속해서 나온다. 그러다보면 익숙해진다. 마치 원래 있는 풍경 속 하나처럼. 나의 위기 경고등을 고장나지 않게 하려면 신호를 절대 무시해선 안된다.
다만 좀 피곤한 건 자주 켜진다는 것 뿐.
그럴 수밖에 없는 때란 걸 안다. 어쩔 수 없지. 그냥 해야지 뭐. 어쩌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