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9.19 + 2022.09.28
지금 시간 새벽 3시.
아직까지 내일 오전 9시 강의 준비를 하고 있다.
나는 3년째 대학 교양강좌를 맡고 있다. <대중문화연구 입문>부터 <동서양 문학 비교>까지 주제도 난이도도 다양하다. 올해 맡은 수업은 <공상과학소설>에 대해서. 학기초에는 이제 좀 공상과학소설 가르치는데 자신감이 생기는가 했는데, 오늘은 전혀 그런 생각이 안 든다. 마음에 안드는 강의가 많아서. 내 딴에는 100을 가르치고 싶은데 10도 안 나오는 날도 너무 많아서.
지난 월요일만 해도 정말 내가 생각해도 이게 뭐지? 싶었다. 책을 제대로 안 읽은 학생이 대다수였고 (심지어 책이 없는데 엄청 당당한 학생도 있었다) 뭔가 영 대화의 핀트가 안 맞았다. 그래서 그냥 다 일찍 내보냈다. 나도 우리 학생들도 이렇게 아침에 모여서 시간을 낭비해야할 필요는 없으니까.
강의가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아마 오늘처럼 늦게까지 강의 준비를 한 다음에 가르쳐야 하는 날들이 많아서 아닐까.
내 공부 쫓아가기도 24시간이 모자란데, 거기에 남의 공부까지 시키는 건 쉽지 않은 것 같다. 게다가 내 강의는 늘 내가 해야하는 시험 공부와도, 듣고 있는 수업과도, 쓰려는 논문 주제와도 영 동떨어져 있다. 그러니까 교수님들은 자기 연구를 하는 겸 남에게 가르치는 것일테고. 그러니 선배들이 강의 준비하는 데 엄한 시간을 쓰지 말라고 조언해주시는 것 같다. 시간은 많이 들지만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고, 학계에서는 아무런 가치도 없는 무료노동이라고. 물론 새벽 3시까지 강의 준비를 하고 있는 내가 잘 듣고 있는 조언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글을 쓰기 시작한 19일 보다 오늘은 좀 보람이 있다. Philip K. Dick의 Do Androids Dream of Electric Sheep? 을 읽고 있는데, 이해가 안되던 소설의 한 부분이 이해가 되어서. 안드로이드인 레이첼은 자기와 같은 모델인 프리스를 보며 이렇게 말한다 -- 자기와 같은 안드로이드는 개인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유형의 대표일 뿐이라고. ("We are machines, stamped out like bottle caps. It’s an illusion that I – I personally – really exist; I’m just representative of a type.")
이 부분이 소설의 결말을 이해하는 열쇠가 아닐까? 레이첼은 자신과 동침한 이후로 (같은 배에 탄 이후로?) 릭이 다른 안드로이드를 죽이지 못할 것이라 예견한다. 여태까지 다른 현상금 사냥꾼들이 그랬듯이. 하지만 릭은 다르다. 릭은 레이첼과 똑같이 보이는 프리스를 아무런 어려움없이 죽인다. 그리고나서 레이첼이 틀렸음을 자긴 증명해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릭은 레이첼에게 졌다는 생각을 쉽게 떨쳐내지 못한다.
내 생각에 릭과 레이첼의 대결은 결국 추상적인 개념과 구체적인 개체 사이의 싸움이라고 생각한다. 이 소설 속 개체는 본인이 개념에 부합하는 지, 계속 스스로를 증명하거나 부정해야한다. 인간들은 인간 나름대로 세상이 정한 "인간"의 범주 안에 본인이 속할 수 있는지 증명해나가야하고, 안드로이드들은 "안드로이드"의 범주를 부정하려고 계속 노력한다. 하지만 결국 현존하는 개체 이상의 추상적인 개념은 끝도 없이 바뀌고 위협을 받는다. 위협받지 않는 것은 존재하는 것뿐. 그렇기에 마지막에 릭은 자신이 살아있다고 믿었던 두꺼비가 기계 두꺼비에 불과해도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것 아닐까. 동물이건 기계건, 지금 존재하고 있으니까.
내일 이 이야기를 잘 할 수 있을까, 걱정이다. 만약 내게 좀 더 시간이 많았다면, 소설을 다시 또 한번 읽고 모든 근거를 표로 잘 정리했을 것 같다. 참고 문헌도 읽고 요약해서 학생들에게 나눠줬을테지. 하지만 아쉽게도 시간이 없다. 이 소설을 가르치는 건 이번이 2번째이다. 내년에는 더 잘 가르칠 수 있을까? 내년에도 공상과학소설을 가르치고 있기는 할까?
좋은 선생님이 되려고 고민은 하는데, 언제쯤 되려나. 또 언제쯤 좋은 선생님인 것이 가치있는 세상이 오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