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시아 Jan 16. 2023

집안일이 너무 싫다!!

2023.01.15

집안일이 너무 싫어서 쓰는 글.


어제는 토요일이라 느즈막히 일어났다. 일어나자마자 배가 고파서 오후 약속에 나가기 전 간단히 뭐라고 챙겨먹으려고 부엌에 갔다. 아... 설거지를 안 하고 그냥 잔 걸 잊어버렸다. 지난 주에는 바빠서 집을 계속 비웠더니 설거지가 안 그래도 쌓여있었다. 와이프가 밤참을 만들었는데 그 잔해도 그대로 남아있었다. 에어프라이어 철망에 덕지덕지 모짜렐라 치즈가 붙어 있었고, 기름도 온 데 튀어 있었다. 진짜 한숨 밖에 안 나오는 처참한 상황... 간단히 뭘 만들 입장이 아니라 설거지부터 해야했다. 온 힘을 쓰면서 철망을 닦고 나니 밥맛은 뚝 떨어지고 샤워나 해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샤워를 하려고 화장실에 들어가니 또 치울 게 보인다. 변기도 닦아야하고, 거울도 닦아야하고, 욕조도 닦아야한다. 샤워하면서 나름 깨끗이 정리하려고 하는 데 청소하는 것과는 또 다르다. 미국 화장실은 바닥에 하수구가 없어서 욕조 밖 바닥은 샤워기로 청소를 할 수도 없다. 틈이 많은 데 그걸 물걸레로 닦으려니 너무 짜증이 나고 피곤하다. 먼지는 또 왜 이렇게 자주 쌓이는지. 물때는 왜 이렇게 자주 끼는지. 머리카락은 또 왜 이렇게 많이 빠지는지.


나는 진짜 집안일이 너무너무 싫다. 일단 반복되는 단조로움이 제일 싫다. 오늘 하루종일 다 치우고 나가도 저녁 때되면 또 청소할 것이 보인다. 먼지를 아무리 열심히 털어도 돌아보면 또 먼지가 쌓여있다. 집이 작아서 다행이지, 청소기 돌리는 것도 조금만 더 넓은 집이었고 너무 싫을 것 같다. 


빨래도 너무 싫다. 특히 우리 아파트는 공용 세탁기/건조기를 써야해서, 빨래를 하려면 일단 밖에 나가야한다. 세탁물을 들고 낑낑 계단을 내려가는 게 너무 싫다. 바리바리 들고 세탁실에 가면 고장난 기계도 너무 많고 더럽게 쓰는 사람들도 너무 많다. 가끔 비닐장갑과 물티슈를 가져와 일단 세탁기를 닦고 세탁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그럴 정도로 부지런하지 않지만 그런 모습을 보면 나도 그래야하나? 세탁기가 더러워서 빨래가 의미가 없나? 생각이 든다. 타이머가 끝났을 때 자기 빨래를 안 챙겨가는 사람도 싫고, 나는 나름 시간을 맞춰 갔는데 5~10분 늦었다고 내 빨래를 아무데나 던져버리는 사람도 싫다. 


지난 주는 정말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서 빨래를 했는데 돌아와보니 또 빨래통이 꽉 찼다. 하. 어릴 때는 누가 빨래를 해주니까 이게 힘든 일인 줄 몰랐던 것 같다. 옛날에는 한번 입고 생각없이 빨래통에 던져넣었을 옷을 여러 번 입는데도 빨래는 끝도 없이 새로 생겨난다. 


밥하는 것도 너무 싫다. 요리도 시간과 준비는 엄청 오래 걸리는 데 먹는 건 너무 금방이다. 3~40분 걸려서 만들어도 5~10분이면 다 먹는다. 나는 내가 한 음식은 또 무조건 맛이 없는 것 같다. 똑같은 음식도 냉장고에 넣어뒀다가 전자레인지에 돌려 먹으면 맛있는데 요리를 하자마자 먹으면 짜증이 앞서 내가 뭘 먹는건지 모르겠다. 


뭐 먹지? 맨날 고민해야하는 것도 싫다. 주말에 열심히 머리를 굴려 일주일 식단을 짜도 계획은 틀어지기 마련이며 음식이 상하는 건 순식간이다. 냉장고에서 상한 음식을 버리는 일은 진짜 스트레스다. 우리가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고, 인플레 때문에 장을 볼 때마다 눈이 휘둥그레 해지는데. 환경을 생각해서라도 이렇게 음식을 낭비하기 싫은데.


이런 매일 해야하는 집안일 말고도 어쩌다 한 번 해야하는 일은 참 많다. 그 일도 얼마나 자주 돌아오는지. 한달에 한 번 공기청정기 필터를 갈아야하는데, 생각만한지 한참된 것 같다. 청소기를 돌릴 때마다 부품을 한 번 다 씻어야할텐데 생각한다. 오늘도 식기세척기를 열면서 필터를 닦아야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나중에. 일단 오늘 씻어야 할 그릇이 한 가득이니까. 화장실 캐비닛도 정리해야하는데, 벌써 몇 달째 생각만 하고 있다. 열기도 싫어서 부엌에서 핸드워시가 떨어졌을 때 좀 갖고 와 달라고 와이프한테 부탁했다. 내가 잊고 있는, 아니면 알지도 못하는 집안일이 또 어딘가 숨어있겠지 생각하면 무시무시하다. 나중에 일반주택으로 이사라도 가면 또 얼마나 집안일이 늘어날까.


집안일이 너무 싫은 이유 중 하나는 나 혼자서만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인 것 같다. 물론 학생인 나와 다르게 와이프는 풀타임이다. 집에 많이 있는 내가 이런저런 정리를 하는 건 당연한 것 같다. 또 와이프가 도맡아하는 집안일도 있다. 고양이 화장실 치우기랑 쓰레기 비우기는 거의 와이프가 도맡아서 한다. (최근에는 내가 해달라고 부탁해야하는 경우가 많지만;;) 하지만 온종일 집을 돌아다니면서 바닥에 떨어진 사탕 껍질을 주워 버리고 온 집안에 숨어 있는 컵을 싱크대에 가져다 놓는 건 바로 나... 그렇다고 같이 사는 집인데 내가 원하는 잣대를 가져다대는 건 싫다. "나는 바닥에 사탕 껍질 있어도 별로 안 싫은데?" 이러면 얄밉지만 맞는 말이니까.


하지만 거들어주지 않더라도 옆에서 핸드폰만 보고 있어도 집안일이 훨씬 수월한데, 내가 밥을 하거나 설거지 하는 동안 컴퓨터 앞에 앉아서 게임을 하고 있으면 짜증이 치밀어오른다... 뭘 안해도 되니까 여기서 있으면 안되냐고 매번 새로 부탁해야 하니까 그것도 지겹다. 부탁을 해야하는 일이라는 그 사실 자체가 싫다. ("도와준다"는 말에 화가 나는 것도 같은 맥락. 같이 해야하는 일이지 내 일을 '도와주는' 게 아니니까.)


내가 이렇게 불평을 하면 우리 아빠는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면 집안일이 뭐가 어렵냐고 한다. 하... 그렇게 말하면 양심의 가책이... 하지만 아빠는 불평없이 밥도 하고 설거지도 할 수 있어도 나는 그럴 수 없다!


최근에 집안일에 대한 책을 읽었다. K.C. Davis의 How to Keep House While Drowning (일에 치이면서도 집안일 하는 법) 이라는 제목의 책. 틱톡을 통해 유명해진 상담사가 쓴 책이라고 했다. 이 책의 요지는 집안일에 나를 맞추지 말고 나에게 집안일을 맞추라는 것. 집이 나를 위해 일해야지 내가 집을 위해 일하면 안된다고. 나에게 집안일을 맞추는 예시 중 하나는 세탁물을 빨래바구니에 넣으려고 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세탁물이 쌓이는 곳에 빨래바구니를 두라는 것. 말이 된다!


또, 집안일이 너무너무 싫을 때는 깨끗한 집에서 행복한 미래의 나를 상상하라고 했다. 내일 아침, 커피를 끓이러 갔을 때 반짝반짝 잘 정리된 부엌에 들어가면 기분이 좋지 않겠냐고. 맞다! 적어도 설거지가 쌓인 싱크대와 함께 아침을 시작하는 것처럼 기분이 더럽지는 않겠지. 하지만 머리로 아는 것과 마음에 아는 건 다르다...


열심히 돌아가는 식기세척기 소리에 맞춰 이 글을 쓴다. 그래 식기세척기가 있는게 어디야!

작가의 이전글 italki 후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