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기억할 수 있는 최대 오래전 순간부터
글을 쓰고자 하는 마음은 항상 있었는데 무엇을 쓸지가 쉽게 생각나지 않았다. 많은 양의 책을 읽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생각해 보면 항상 내 옆에는 책이 있었던 것 같다. 혼자서 글자를 읽기 어려울 정도로 어렸을 때에는 나와 동생을 같이 앉혀놓고 전래동화나 위인전, 또는 세계 명작 동화를 읽어주던 엄마의 따뜻한 품과 목소리가 책과 함께 있었다. 공부에 대한 욕심이 아주 많고 똑똑해지고 싶었던, 학원 선생님이 부모님에게 나는 아주 욕심이 많은 아이라고 말했던 그 시절에는 어떠한 책이든지 완벽하게 이해하고 암기하려고 어떤 책이든지 정리하고 외우려는 시절의 내가 있었다.
그로부터 시간이 지나 사춘기가 온 중학교 시절에는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상처를 받고 고민이 많아 책을 통해서 해답을 얻고자 하는 내가 있었다. 그것보다 더 성숙해졌다고 믿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았던 고등학교 시절에는 어느 정도의 우울이 시작되었고 책을 통해서 어떠한 목적을 찾기보다는 그 자체에서 위로를 받고 싶었던 것 같다. 나는 살면서 겪는 모든 것들을 예민하게 받아들이는데 이것을 겉으로 표현하지 못했다. 이러한 식으로 크고 작은 자극들이 마음속에서 쌓이게 되면 어느 순간 아주 힘들어지고 무기력해질 때가 왔다. 그러면 나는 학교에서 야간자습을 빠지고 버스를 타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도서관에 가서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들을 모아놓은 곳에 가서 읽었던 책, 안 읽어본 책 상관없이 무작정 여러 권의 책들을 뽑아 도서관 안에서 내가 보기에 가장 편해 보이는 자리로 갔다. 책상 앞에 그것들을 가득 쌓아놓고 읽다가 어떤 날은 너무 피로해서 그대로 잠이 들어버렸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도서관 운영 시간이 종료되었다는 종소리를 들으며 자리를 정리하고 집에 돌아갔다. 집에 돌아갈 때 탔던 버스에서 보이던 풍경이 아직도 생생하다. 바깥에는 크고 작은 다양한 자동차들이 도로 위에서 달리고 있었는데 나는 그 차들을 보면서 이렇게 한 도로 위에서 같은 순간에 달리다가 도로를 벗어나 집으로 돌아가 각각의 생활을 하며 또 다른 궤적을 그리며 살아간다는 게 신기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때까지가 나의 학창 시절까지의 삶이라면 그 이후는 또 다른 느낌이다. 어쩌면 그때를 생각하면 별 거 아닌 일에도 신경 쓰고 상처받고 고민을 하던 내가 귀엽게도 느껴지며 추억의 한 장면으로 기억이 되지만 그 이후의 삶은 어쩌면 내 인생에서 지우고 싶고 누구에게도 솔직히 다 털어놓을 수 없는 그런 삶이었던 것 같다. 그 이후로는 책을 거의 읽지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질리도록 읽었던 자기 계발서는 나의 인생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 한다고 체념하고 있었고 어떠한 글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내가 생각할 때에 나는 어떠한 순간을 기억하고 그 순간을 구슬처럼 마음에 담아 다시 꺼내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걸 꺼내보고 그것의 느낌을 글에 담는 것은 또 다른 하나의 어려운 과제이지만 나는 내가 살아오면서 느꼈던 크고 작은 느낌을 담은 구슬을 꺼내서 그 내용을 책과 연결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계속 무언가를 쓰고 싶다는 욕구가 아주 강하게 있었는데 아주 거창하게 어떤 이야기를 쓰고자 하는 것보다는 내가 살면서 조금씩 모아 왔던 구슬들을 조급해하지 않고 조금씩 꺼내보고 싶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그렇지만 나에게는 아픈 순간들도 많았고 그것이 자기에 대한 혐오로 이어져 아직까지도 나 자신에 대한 용서를 못 한 부분이 있다. 꺼내어 보는 것에서 더 바라자면 나 자신에 대한 깊은 혐오감을 일으켰던 내 삶의 부분을 다시 생각해 보고 잘 정리해서 다시 넣어보는 과정을 통해 내가 나를 더 사랑할 수 있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걸 생각하면 너무 눈물이 나지만 나는 나를 사랑하는 것이 너무나도 힘들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