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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핌 Jun 28. 2022

누구를 위한 회식일까?

My Job

회사 단톡방에 공지가 올라왔다.

일 년 반 만에 열리는 전체 회식 공지였다.


[공지]
○월 ○○일(금) 전체 회식.
당일 최대한 일찍 업무 마감 후 회식을 진행하려고 합니다.
당일 휴무이신 분은 5시 반까지 참석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회식은 사내에서 진행할 예정입니다.
일단 바비큐를 기본으로 기타 배달 및 포장음식으로 세팅하겠습니다.
...
생략


지난 회식은 코로나 때문에 사내에서 배달음식을 시켜먹었다고 하지만, 위드 코로나 시점에 사내 바비큐에 배달음식이라니!

오랜만에 열리는 전체 회식이 그다지 달갑지 않게 느껴졌다.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는 도내외 투자 유치를 받고 벤처기업 인증도 받은 명실상부 스타트업 기업이지만, 사람들이 흔히 이야기하는 스타트업의 회사 분위기는 절대 아니다.

우리 회사를 스타트업이라고 여기는 것은 대표님과 재택근무를 하는 이사님들 뿐이지 않을까 생각을 한다.


자유로운 회사 분위기, 탄력적 출퇴근, 직원 복지, 인센티브 등등 신입사원이 올 때마다 대표님은 거창하게 포장하여 열변을 토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수당 없는 야근에 공장에서 일하는 현장 근로자들은 항상 더위와 먼지와 노동에 지쳐있고, 몇 명 안 되는 사무실에는 팀원 없는 팀장과 대기업 출신 이사들이 유령처럼 존재할 뿐이다.


공장에서 바비큐를 구워 직원들을 대접하겠다는 대표님의 생각도 가족 같은 분위기의 멋진 가든파티와는 거리가 먼, 더위와 연기와 귀찮음을 감수해야 할 불편한 식사가 될 터였다.

어찌 되었든 누군가는 굽고 누군가는 치워야 하니 말이다.


그 와중에 회사를 진정 자유롭게 여기는 한 직원이 회식에 딴지를 걸어왔다.

도내 지원사업으로 센터에서 6개월 교육 후, 3일만 출근하는 실습 프로젝트를 6개월 동안 수행하고, 1년의 취업을 보장받아 인턴쉽으로 다니고 있는 직원이었다.


경리 업무를 맡고 있는 그 직원은 다른 담당자가 회식 당일 고기 구매를 요청하자 발끈하며 하고 싶은 말을 쏟아냈다.


"

정확한 양을 알려주셔야죠!

많으면 많다, 적으면 적다 뭐라 할거 아니에요!


야채랑, 음료랑, 술도 사요?

몇 병 사야 하는지 정확히 알려주세요!


식당에서 먹지 왜 직접 구워 먹어요!

그럼 나중에 누가 다 치워요!


어차피 전 30분만 있다가 갈 거예요.

참석은 자유 아닌가요?

"


아하! 이게 요즘 MZ세대라는 거구나!


구매를 부탁했던 담당자는 난처해하며 대표님께 다시 한번 최종 확인을 하겠다고 말했다.

사무실을 나가며 나에게 작은 소리로 '회식을 해도 뭐라 하고 안 해도 뭐라 하네요.'라며 중간 입장의 고달픔을 표현했다. 왠지 그 뒷모습이 예전의 나와 겹쳐 안쓰럽게 느껴졌다.


"

요즘 누가 이렇게 회식해요!

나만 불만인가!

다들 참석 안 할걸요!

몰라요, 전 금방 갈 거예요!

"


한 번 더 못을 박는 직원이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저렇게 대놓고 당당하게 이야기를 다니 신기했다.


사내 바비큐 소식에 속으로 불만이 있었던 나지만, 대놓고 표현하는 직원은 모습은 왠지 이질적으로 다가왔다.

나도 역시 꼰대가 되어가는 걸까?




그러고 보니 그 옛날, 회사 사옥에서 바비큐를 굽던 일이 생각났다.


벤처타운에서 직원 5명으로 시작해, 경기도에 3층짜리 사옥을 지어 이사를 간 뒤 첫 회식이었을 것이다.

회사 마당에는 바비큐 그릴이 설치되고 고기가 구워졌다.


그때 내 위치가 딱 중간관리자, 대표님 이사님 다음의 팀장 자리에 있었다.

직원들의 볼맨 소리와 불만도 해소해 줘야 하고, 사측의 입장도 대변해야 하는 어중간한 입장.


그날도 불만을 토로하는 직원을 뒤로하고 이사님의 지시로 고기를 사 오고 바비큐를 굽던 일이 생생하다.

현장 직원들이 소외되지 않도록 접시마다 고기를 가득 채워 나르고, 징징거리는 20대 직원들의 멘틀을 챙기며, 대표님과 술상대를 하면서도 마무리할 때까지 정신은 똑바로 차리고 있었어야 하던 그때, 다음 날 업무를 위해 청소와 마무리까지 확인하는 것도 내 일이었다.


그때는 그게 부당하다거나, 잘못되었다거나 하는 생각보다는 당연히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여겼던 것 같다.

그래서 번아웃이 온건가?


아무튼, 모든 일을 접고 제주도로 온 뒤로는 시키는 일만, 월급 받은 만큼만 하는 게 내 신조가 되었다.

업무에 있어서는 최선을 다하지만, 그 외 적인 것은 되도록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무늬만 스타트업인 회사에서 가장 요구하는 것이 무엇이던가!

그 외의 것을 알아서 다 해주세요! 아니던가!


여전히 이중적인 세상 속에서 나 역시 라때와 부당함이 혼재되어 복합적인 심정이 되어 버렸다.


고기를 굽던 배달을 시키던 식당을 가던 관여하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로 나는 두 직원의 대화를 남의 일 바라보듯 하며 그 논쟁에서 쏙 빠져나왔다.


며칠 뒤 다시 울린 단톡방에서는 회식장소가 무한리필 고깃집으로 바뀌었다는 공지가 올라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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