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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핌 Jul 12. 2022

아빠의 감자로 엄마의 감자전을 부쳐보자

cooking essay

'딩동'

우체국 택배가 도착했다는 알림 문자가 울렸다.

이번에는 또 무엇을 보내셨을까 퇴근 후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문 앞에 덩그러니 놓인 커다란 박스를 낑낑거리며 집안으로 가지고 들어왔다.

후드득, 박스 틈 사이로 흙이 쏟아져 내렸다.


커다란 비닐을 깔고 박스를 옮기고, 떨어진 흙을 치우며 분주하게 왔다 갔다 움직이다 보니 아직 박스는 열지도 않았는데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세수를 하고 땀에 젖은 옷가지를 빨래통에 던져 놓고는 그제야 박스를 열어볼 수 있었다.


박스 안에는 한 해 동안 아빠가 텃밭에서 정성 들여 키웠을 마늘, 감자, 양파들이 빼곡히 담겨 있었다.

선반 위에 올려 두었던 커다란 통 몇 개를 꺼내와 박스에서 뒤섞인 마늘과 감자를 종류별로 나누어 담았다. 

당장은 여기까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오늘의 할 일을 내일로 미뤘다.




은퇴를 하시고 동네 텃밭을 가꾸는 것이 취미이자 소 일거리에서 전업이 되어버린 아빠는 매년 여러 작물들을 보내주신다. 

이번에 보내온 마늘, 감자, 양파를 포함해 고구마, 옥수수, 서리태, 완두콩, 비트, 호박, 가지 등등 정말 다양한 작물들이 제주도로 날아오는데, 그 정성을 너무나 잘 알기에 하나하나 열심히 손질해서 먹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달랑 두 식구인 우리는 시장에서 사 온 야채도 다 사용하기 전에 시들어 버리기 일수라서, 아빠가 보내주시는 귀한 농작물은 상하지 않도록 특히 더 신경 써서 보관을 해야만 했다.


주말, 미뤄둔 할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 마늘 박스를 끌어당겼다.



마늘

통마늘 상태 그대로 왔기 때문에 가장 손이 많이 가는 녀석이다.

손은 많이 가지만 가장 활용도가 높고 없으면 안 되는 것 또한 마늘!

자리를 잡고 앉아 마늘을 하나씩 까기 시작했다.

한 시간이 훌쩍 허리가 아파왔다.

겨우 마늘을 모두 까고 깨끗하게 씻은 후 물기를 닦아 커다란 접시에 널어놓았다.

몇 시간 후 어느 정도 건조된 마늘을 한 알 한 알 키친타월로 깨끗이 닦아 냉동실에 넣고, 상처 난 마늘은 따로 분류하여 바로 먹을 수 있도록 꺼내 놓았다.

지난번에는 모두 다져 놓느라 신랑이 애를 먹었는데, 이번에는 먹을 때마다 조금씩 다지기로 하고 마늘 작업을 마무리했다. 냉동실에 가득한 마늘을 보니 왠지 뿌듯해졌다.


양파

한알씩 키친타월에 싸서 봉지에 넣은 후 냉장고 신선 칸에 넣어 두었다.

아빠가 보내온 양파는 왠지 더 단단하여 쉽게 무르지 않지만 그래도 다 먹기 전에 물러 버리게 되면 정말 속상하기 때문에 한알 한알 소중이 싸 놓았다.

나중에 몇 개는 양파피클을 만들 생각이다.

신랑이 맛있게 먹었다던 집밥 백선생의 양파 계란덮밥도 다시 도전해 봐야겠다.


감자

감자는 비교적 보관 기간이 길지만, 그래도 가장 최선은 빠르게 먹는 것!

작은 알감자를 골라 흙을 털어 씻고 오븐에 구웠다.

그 자리에서 3~4개를 거뜬히 먹어치웠다.


커다란 감자를 골라 채를 썰고 차가운 물에 잠시 담가 전분기를 뺀 후, 

비닐봉지에 넣어 기름에 조물조물 무친 후 에어프라이기 20분!

맛소금을 솔솔 뿌려 감자튀김을 만들었다.

한 김 식은 후 먹을 때 한 번 더 돌려주면 조금 더 바삭하게 먹을 수 있다.

목이 막혀 감자를 잘 못 먹는 신랑도 이건 맥주 안주로 딱 이라며 아주 잘 먹었다.


또 하나 감자와 양파를 채 썰어 감자채 볶음 반찬도 만들어 놓았다.

감자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아빠가 보내온 감자는 정말 맛있었다.


한참을 분류하고 손질하고 요리하고 나니 주말이 훅 지나가 버렸다.

내가 좋아하는 감자전은 다음으로 미루고 정리를 마쳤다.





감자전


어린 시절 편식이 심했던 내가 좋아하는 음식 중의 하나가 바로 감자였다.

왜 인지 모르겠지만 고구마, 단호박보다는 감자가 더 좋았다.


포슬포슬 밥솥에 찐 감자

삶아서 으깨서 마요네즈에 비벼먹는 감자

두세 개씩 신문지에 싸서 전자레인지에 구워 먹는 감자

그리고 프라이팬에 하나씩 부쳐먹는 감자전까지, 

나는 정말 감자를 좋아했다.


엄마가 감자를 사 가지고 올 때면 나는 감자전을 해주지 않을까 내심 기대를 했다.

엄마는 감자 서너 개와 양파 한 개를 꺼내 껍질을 까고 강판에 갈아 감자전을 부쳐 주셨다.

나는 감자전이 접시에 담기기 무섭게 혼자서 두세 판을 먹어치웠다.

이것저것 섞이지 않은 엄마의 감자전은 그 자체로 정말 맛있었다.


내가 어느 정도 배불리 먹은 후에야 남은 감자 반죽은 감자전이 되어 차곡차곡 접시에 쌓였고 아빠와 언니들의 저녁식사에 오를 수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엄마는 감자전의 가장 큰 역할인 강판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내가 감자전이 먹고 싶다 말하면 엄마는 잘 깎은 감자와 양파를 양푼에 담아 강판과 함께 내게 건네주셨다.

그러면 나는 완성될 감자전을 기대하며 남은 작은 조각을 다른 감자로 꾹꾹 눌러 으깬다거나, 양파가 잘 갈리도록 옆면을 공략하는 등 늘 봐 왔던 대로 강판에 감자를 열심히 갈았다.


내가 갈고 엄마가 부쳐 더 맛있었던 엄마의 감자전. 그 맛이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요즘은 각종 편리한 주방 도구가 많이 나와 있지만, 그래도 감자전만큼은 강판에 갈아야 제맛인 기분!

아빠가 보내온 감자로 이번 주말에는 엄마의 감자전을 만들어 봐야겠다.


감자전

감자 3~4알, 양파 1/2알, 부침가루 조금
강판에 감자와 양파를 간다.
부침가루 1~2스푼으로 농도를 맞춘다.
프라이팬에 노릇노릇 부친다.
간장 양념장과 함께 먹으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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