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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원상 Jun 25. 2023

인공지능, 지난 10년과 다음 10년

허접한 논문과 2014년 '튜링 테스트' 통과, 2023년 챗GPT

2050년

내가 기후변화에 대한 위기감을 갖게 된 것 2020년 전후다. 인류가 기후변화의 비탈길에서 멈춰 서고 생존을 위해 온실가스 문명에서 지속가능한 시스템으로 전환하기까지 주어진 시간은 2050년까지 탄소중립이다. 2015년 전 세계 정상들이 파리에 모여 마지노선이 무엇인지 정의했고, 공통의 거대한 목표에 대한 합의를 내렸다. 반면 전 인류가 탄소배출을 감소추세로 들어서고 순 0으로 이르는 긴 과정을 고려하면 사실상 2050년보다 5~10년 앞서야 한다는 목소리와 자발적인 움직임도 있다.


라떼는 이 소식이 대박이었는데...

2014년

기후의 특이점이 대두하기 전에 과학기술에서 특이점은 이미 있었다. 내가 기후위기를 인식한 것보다 6년 앞선 2014년, 그 위기의식의 대상은 인공지능이었다.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영화나 소설을 통해 인류 종말을 선고할 유력한 후보이자 충분히 상상 가능한 잠재적 위협요인이었다. 컴퓨터 과학자 레이 커즈와일은 ‘기술적 특이점’을 확립하는 이 시기를 2045년으로 예측했다. 이때가 되면 비생물학적 지능의 총합이 생물학적 지능의 총합을 넘어서며 인간이 기술을 이해하거나 따라잡지 못한다. 바깥에서는 블랙홀 너머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사건의 지평선' 같은 특이점이 2045년이라는 것. 커즈와일은 그 시점이 인류에게 이로울 것이라는 낙관적 시각을 가졌지만, 인본주의를 근본으로 한 실용주의자인 내겐 다분히 아포칼립스적인 전망이다. '터미네이터' 시리즈를 너무 좋아해서 그런 걸까.


기술적 특이점을 두고 2014년이 특별했던 것은 인간인지 기계인지를 판명하기 위해 고안된 '튜링 테스트'를 처음으로 통과한 인공지능 모델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무렵 '그녀(2013)'를 비롯해 '트랜센던스(2014)', '채피(2015)', '어벤저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2015)' 등 인공지능을 차용한 영화들이 대거 쏟아지는 시기였다. 그 소식에 영향을 받았던 까닭일까 그해 철학과 친구들 2명과 함께 팀 '대머리 독수리'를 꾸려 교내 융합논문 경진대회에 나갔다. 그리곤 인공지능에 관한 허접스럽고 학부생 충만한 논문을 썼다. 논문 제목은 '인공지능의 발전 전망과 그 한계'였다. 과거의 인공지능 연구를 비판하려고 철학을 동원했고, 미래의 인공지능 연구를 내다보기 위해서 뇌 과학을 도구로 활용한 연구 방법이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과의 관계를 따져보고 앞으로 인공지능이 어떻게 무엇을 위해 기능할 것인지를 추측해 봤다.



그 논문에서 지적한 인간 지능과 인공지능의 차이 중 사례로 들만 한 건, 이율배반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여부였다. 인간은 체계 내부에서 재귀준거로만 해결이 불가능한 경우 외부준거를 가져와 활용해 해결할 수 있다. 가령 '뒷 문장은 거짓이다'와 '앞 문장은 참이다'라는 명제 2개(내부 체계)가 주어졌을 때 누구나 논리적 모순 관계(외부 체계)에 있음을 안다. 인간들은 더 나아가 이런 모순을 활용해 예술이나 유머를 창작한다. 그러나 인공지능에겐 이 과정이 어렵다. (그러나 챗GTP는 이런 이율배반을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챗GPT가 여전히 이율배반을 이해하고 있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논문을 준비하면서 뇌 과학자들, 특히 김대식 교수의 강연과 서적들을 보면서 인간 지성에 대한 무한한 측면과 함께 물리적인 한계가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김 교수는 두개골 안에 물렁물렁하고 주름진 1.4kg 남짓의 고깃덩어리가 우주를 떠올리고 수천 년 동안 문명을 발달하게 했다고 감탄한다. 김 교수는 무한한 잠재성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우리 뇌에도 한편으론 명확한 한계가 있다고 선을 긋기도 한다. 뇌는 감각기관으로 들어온 '한정된 정보'를 바탕으로 수없이 많은 뉴런들이 전기 신호를 주고받는 과정을 거치는데 거기서 효율적이지 못한 과정과 기능이 있다는 것. 시각 정보로 들어온 미가공 데이터에 이미지 프로세싱을 효율적으로 하는 동시에 최적화하다 보니 착시라는 부작용을 일으킨다. 또 효율적인 판단을 내리는 데 자연스럽게 수많은 편견을 파생한다. 기억하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만 기억하고 인지하도록 돼어 인간에게 망각과 착각을 유발한다. 뇌는 대단한 동시에 어처구니없는 존재다.


다시 튜링 테스트로 돌아오자. 2014년 튜링 테스트 통과엔 사실 거품이 꼈다. 튜링 테스트를 통과한 13살 우크라이나 출신 소년을 위시로 한 인공지능 ‘유진 구스트만’의 면면을 보면 허점이 많았다. 튜링 테스트에서 날카로운 질문을 받거나 (당시) 인공지능이 이해하기 어려운 질문이 들어오면 이상한 소리를 하거나 얘기를 돌리거나 하는 식이었다. 커즈와일 역시 여기에 참여했는데, 그가 “상자 3개 안에 구슬이 각각 2개씩 들어있으면 내가 가진 구슬이 총 몇 개야?”라고 물으면 “별로 많지는 않네요. 하지만 정확한 숫자를 알려드릴 순 없어요. 다른 얘깃거리는 없나요?”라는 식이었다. 어쨌든 유진 구스트만은 비영어권 어린 소년을 설정해 이를 요령 삼아 실험자들의 고난도 질문을 교묘하게 빠져나갔고 튜링 테스트를 통과했다.


다소간 논란이 있었지만 그동안 미증유의 튜링 테스트에 도장이 찍혔다. 튜링 테스트로 대변되는 고전적인 인공지능 혹은 약인공지능의 세계관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고작 인간을 흉내 내 인간 본유의 지적, 사회적인 기능과 역할을 모사하기에 여념이 없던 인공지능 연구는 한껏 진화했다. 인공지능 연구의 저변이 다채로워지고 넓어졌다. (인간을 모방하는 방법론은 기계가 딥 러닝을 깨치는 데 기여하기도 했으니 전연 무의미한 것만은 아니다.)


우리 논문은 뇌 과학과 인공지능의 접점으로 인공지능이 발달하며 인간이 더 큰 효용을 볼 것이라고 내다봤다. ‘공각기동대’의 전뇌처럼 기계 뇌가 인간의 두개골 안에 탑재된다거나 인간의 뇌로는 잘 못하는 작업들을 기계 뇌가 보조하는 방향으로 말이다. 인공지능은 인공지능대로 진보해 나갈 것이며, 인간은 뇌가 작동하는 방식을 더 잘 이해해 나가면서 두 학문이 시너지낼 것이라는 전망이 논문의 결론이다.


짧은 시간 모여서 논의하고 준비한 논문은 다양한 학문들을 연계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지 새롭거나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담아내진 못했다. 그러면서도 당시 인공지능에 대한 인식, 인공지능의 가능성과 역할에 대한 기대와 우려 등 인문학적인 관점에서 고찰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2023년

2023년 자연어 기반 생성형 인공지능 챗GPT가 나왔다. 아쉽게도 튜링 테스트 시즌2라고 할 수 있는 ‘중국어 방 논변’을 극복하지 못한 모델임에도 그 탁월한 유용성과 응용성으로 각광받고 있다. 2014년 그 당시 초보적인 인공지능에 한껏 우쭐했던 호모 사피엔스들이 10년이 채 되지도 않은 상황에선 챗GPT, 바드를 보며 경악하거나 경탄하는 것을 보면 썩 흥미롭다. 


챗GPT가 전 세계를 뒤흔든 만큼 대중문화 콘텐츠에서도 호응이 있으리라 기대한다. 고전적 인공지능의 틀에서 한층 더 진화한 인공지능을 묘사한 영화나 드라마가 등장할 것이다.


인공지능의 지난 10년의 발전만큼 팀 '대머리 독수리'의 진보도 흥미롭다. 논문을 같이 쓴 친구들은 각각 정보시스템과 컴퓨터공학을 공부해서 게임사와 IT기업의 개발자가 됐다. 그리고 그때나 지금이나 셋 다 게임을 좋아한다. 다음 10년 후 인공지능은 인류 사회에서 어떤 존재가 될 것이고 어떤 기능을 할진 모르겠는데~ 뭐가 됐든 그때도 우리 셋은 열심히 게임을 하고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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